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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이 들어 써봅니다... 제 작문 실력이 안 좋은 터라 이번 기회로 개선하고 싶은데 고칠 점 많이 지적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개인적으로 문장 마무리를 지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했다. 인것이다. 했다. 이다. 뭐 이런 것밖에 머리에 떠오르질 않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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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남지 않는 책들, 배울 것 없는 읽을 거리는 나를 언제나 망설이게 했다. 그렇기에 나는 문학 소설을 멀리 하고 방법론적인 책을 찾아다녔다. 나는 <총, 균, 쇠>를 문화사대주의에 맞설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읽었고, 많은 뇌과학책들을 정독하면서 어떻게 효율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일상에 적용하며 실험하고 탐구했다. 또한 풍랑에 시달려 방향을 잃은 범선의 선장이 빗물 속에서 나침반에 매달리듯 나는 철학을 길잡이로 삼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용성을 향한 나의 강박으로 문학 작품에서 이로움을 얻을 기회를 분명 난 놓치고 있던 것이다.
그랬던 나이기에 소설을 읽는다면 중간에 몰입이 자주 끊기고 이윽고 지루함을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이 책은 읽는 내내 나를 묘하게 계속 끌어당겨 그런 일이 없도록 했다. 번역의 질이 좋아 막힘없이 읽혀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선호해서도 아니었다. 나는 주인공의 방어기제가 가득한 논리에 비로소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책의 주인공, 홀든(Holden) 콜필드는 기숙학교의 반항아로 세상의 위선에 몸부림치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작품 초반부터 영화가 싫고, 그의 룸메이트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각하며, 학교 생활은 낙제에 결국은 퇴학까지 당한다. 그러면서 집에 그 사실을 알리기 싫은지 뉴욕의 술집과 호텔, 박물관 등을 전전하며 추한 행보를 보인다. 솔직하자면 나는 도저히 주인공에게 정이 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책을 반납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홀든 콜필드에서 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작중 내내 부정으로서 자신을 정의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고등학생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주인공은 사회로부터의 반발로 변화의 추진력을 얻고자 한다. 배우들의 거짓 연기가 담긴 영화, 입에 발린 예의상의 말들, 룸메이트의 문란한 여성 관계 모두가 그에겐 비난할 거리이다. 하지만 만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그조차도 정작 완벽하고 꼼꼼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무차별 부정난사를 감당하지 못하며 표리부동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감당하지 못하여 계속해서 되새김질하며 정당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회에서 고립되어 대화하고 의지할 사람을 찾지 못해 매춘부에게 돈을 내고 대화를 시도하는 부분에선 불쌍할 지경이었는데, 뒤따라온 포주에게 얻어맞고 돈을 빼앗기며 눈물을 흘리는 건 정말 비참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상황 회상이 끝난 작품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또 자기가 혐오했던 인간들 전부를 그리워하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는 주인공의 마음이 여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미성숙한 판단 잣대를 가진 영락없는 사춘기 학생이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요인들이었다.
주인공이 내 자신과 닮았다고 이 소설을 좋아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나를 보려면 나 안에서 자아성찰을 하면 되지 왜 타인의 작품에서 나를 찾겠는가? 나는,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방황하는 주인공이 피비라는 여동생을 만나 감화되고 구원을 얻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피비(Phoebe)는 홀든의 여동생으로, 영리한데다가 홀든의 심리를 정말 잘 읽으며 어린애라고는 믿기지 않을 사려깊은 모습을 보여준다. 부정으로 일관하는 홀든에게 사회는 사막으로 변했다. 사람들로부터 안정을 찾을 수 없게 된 그는 안식처를 갈망하며 방황했다. 처음 만난 매춘부에게서 대화를 구걸할 정도로 그는 절박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피비는 사회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는 홀든을 포용했으며 그에게 구원으로 작용한다.
나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감정을 이 소설에서 갖게 되었다. 중세, 판타지, 모험 소설은 나에게 이런 기분을 주지 못했고, 그랬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연애 소설이나 기타 비슷한 장르들을 땔감 취급하며 경멸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작품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처럼 부정과 혐오로서 추진력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아직도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구원을 얻지 못한 듯하다. 그렇기에 난 주인공이 자신을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하는 구절이 정말 인상깊었다. 그것이 진정 내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잘썼네
그래도 아쉬웟던점있으면... 막억지로까주세용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다시 경험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책을 통한 자아성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가 미처 보지 못 했던, 혹은 흘려보냈던 나의 순간을 남의 삶으로 다시 읽어내는 것. 저도 부정으로 힘을 얻는 인간인 건지,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난 그렇게까지 공감은 못하고 마지막 문장에서 유일하게 향수를 느낌
글 잘 읽었어요. 까달라니까 까자면 글에 '나'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문체가 번역체 느낌이 강하기도 하고요. 저도 님처럼 글에 나를 많이 집어넣고 번역체를 많이 쓰는 사람이라 이런 게 더 잘 보였던 거 같네요. 호밀밭의 파수꾼이 좋았다면, 순수함 그 자체를 다루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도 추천해요.
정말고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