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윤흥길 작가의 완장. 제목에서부터, 혹은 동네 건달이 저수지 완장을 차고 으스댄다는 내용만 보아도 어딜 어떻게 인용해서 쓸 지가 정해진 작품인데,
다 읽고 나서야 작가의 서문을 읽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완장을 차고 으스대는, 별 것 아닌 권력을 가지고 들떠서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옹졸한 인간상을 소설의 주인공 종술에 빗대는데, 작가는 불만이 컸다고 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소설을 인용하는 게 불쾌했던 모양인지, 아예 서문에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못박아두었습니다.
정치인들 같은 거대권력을 비판하려고 쓴 책인데, 정작 정치인들이 자기 소설로 상대를 빗대면서 자신은 아니라는 듯이 구는 게 참 보기 안 좋았다고.
그래서 이 소설은 '교과서적인 해석'과 작가의 의도가 일치하는 드문 소설이 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감상을 남기는 게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사실, 제가 느낀 감상도 결국은, 그 옹졸함에 대한 얘기라.
문학에 정답은 없다지만 모범답안은 있는 지라.
하여튼 작가들이 답을 정해둔 소설은, 독자들이 알아서 입을 닫기 때문에 다른 감상이 있어도 보이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좋은 텍스트는 한 해석만 둔 채 다른 해석을 차단하지 않는다. 좋은, 정말 좋은 텍스트는 해석의 수가 증가되게끔 한다. 이 말을 상대주의로 해석하는 사람은 안타깝다. 그건 데리다뿐 아니라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관점이기 때문이다. - 릭 로더릭이란 철학자가 데리다를 설명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