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선생님들한테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어려운 의사소통은 으레 일본말이 튀어나왔고 교과서 외의 읽을거리는 거의 일본의 소설류 아니면 일본말로 된 번역물이었다. 나도 신문로 집에서 처음으로 문학전집을 한 질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신조사에서 나온 서른여덟 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은 내가 갖기를 꿈꾸던 책이었다.
(중략) 쿠오바디스나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것은 깨가 쏟아지게 재미가 있었지만 신곡이나 파우스트는 그런 맹목적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못 읽겠는, 난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읽은 걸 결코 잘했다고 하여튼 읽긴 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는 안 읽었고, 누가 그런 걸 좋아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알고 그럴까 열등감 반 의심 반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참고로 이 뒤에 톨스토이 전집 얘기도 나옴
이게 소위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일본을 휩쓸었던 '엔본'으로 권당 1엔씩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음.(그 당시 1엔은 지금 가치로 약 7,000원 가량)
박완서가 본 신초문고 세계문학전집은 이거고, 실제로는 57권이 전 권임.
이런 게 일본인들이 쫓겨나면서 버리고 간 것들이 헌책방에 헐값으로 풀렸고, 아마 이런 것들이 당시 한국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초 같은 문예지가 한국 젊은이들이 곧잘 읽어서 한국문학계에서 걱정하던 얘기가 나돌곤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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