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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에 관심이 생겨서 남아공 최고의 문학가로 알려진 J.M 쿳시의 '추락'을 읽게 됐읍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황을 대략 설명해보자면, 인구의 10%가 안되는 백인들은 남아프리카의 부를 점거하고 절대 다수인 원주민들을 차별하고 격리시키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유지했음. 그런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몰락하고 넬슨 만델라를 대표로 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일축할 수 있겠다.
증오의 시대를 지나서 과연 남아공은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당시 사람들은 미래를 전혀 알 수 없었고, 퇴물 신세가 된 처지를 비관한 많은 백인들은 남아프리카에서 도피하려고 들었다. 그나마 넬슨 만델라의 관용 정책 덕분에 백인들이 본격적으로 학살당하거나 대거 강간당하는 일은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미 전세는 역전되어서 백인들은 자신들이 영원한 콩라인이 되었음을 알게 돼 버린거지
이런 혼란스런 시대에서, 쿳시는 남아공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앞으로 무엇이 추구되야할지를 두고 쓴 소설이 바로 '추락' 이지 않나 조심히 예상해 봅니다,,,
본격적으로 소설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소설은 지식인이자 유복한 백인의 전형인 데이비드 교수를 대표로 두고 당시 백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조명한다. 데이비드 교수는 편견과 고집이 세지만 현실의 파도 앞에서는 유약하고 무능하다. 데이비드는 충동적으로 성추문 사고를 일으키고 직장에서 퇴출돼 딸의 농가에서 얹혀사는 신세로 전락해버린다. 농촌에서는 딸과 그녀의 후견인 페트루스가 그녀의 일손을 거들어주고 있었는데... 나머지 이야기는 본격적인 스포라고 생각하니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이 소설 내적으로는 백인 지식인의 반성 의식에 대해서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백인들은 선조들의 잔학 행위를 인정하지만, 그뿐이다. 진짜로 그들이 박해한 원주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사과를 해야할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즉, 백인들은 굴복됐을 뿐이지 자기네 본격적으로 사죄의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증오의 연쇄는 계속되어 중상류층이었던 백인들에겐 보복적인 굴욕이 되물려져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들은 무엇을 해야할까?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동안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너희들은 존재 자체가 범죄다.' 라고 선언하고, 반대로 이젠 흑인 정권이 수립되자 설욕을 갚기 위해 흑인들도 백인들에게 똑같이 갚아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 차원에서 뜯어 말려봐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보복 심리가 이미 작용하고 있었다. 백인들은 현실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굴욕적으로 원주민들에게 사죄하게 된다. 거기엔 굴욕감만이 있다.
그러나 쿳시는 화해와 굴욕의 감내를 통해 앞으로 공존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서로 죽이고 죽는 시대와 차별과 굴욕을 넘어서서 더 나은 길, 더 개선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통해 비전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간만에 든든한 걸작 하나 읽은 기분이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와 피해자가 된 가해자, 두 민족이 과연 화해하고 단합하며 이상적인 미래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참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시적 야만성에 대한 조명도 나름대로 신선했다.
'여긴 어차피 남아프리카다' 라는 대사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 아프리카라는 터전을 아무리 가꾸고 백인들을 바다 건너에서 데리고 와도, 어차피 이곳은 원시적 폭력이 지배하는 아프리카라는 회의적인 의견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백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로 하고, 현실과 타협해서 계속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흑흑.... 쿳시 선생님... 보석같은 소설이었습니다 ㅠㅠ 솔직히 쿳시 소설중에서 이만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 또 나오긴 어려울 것 같아서 나머지 작품은 남아공 뽕 찰때마다 천천히 읽어볼까 싶네
리빙포인트) 남아공 뽕을 채우고 싶을땐 디스트릭트 9을 보면 아주 좋다
대체 이 십색기 3년후에 돌아온다면서 언제 돌아옴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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