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b83fa11d028313eb0d568a1e85ef2a8b7b1d72142b7c8c27821a9991cb99723ff9344c0377c22e53ab3e2f227d41ef905425a559592c0acca45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은 어떤 시적인 은유가 아니었다. 과학 전문기자인 저자의 이력에 맞게 그것은 

과학적 조사를 통한 지적인 결론이었다. 문자 그대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였던 것이다. 황당한 이 결론에

담겨있는 의미를 책을 통해 보면 섣부르지도 않고 황당하지도 않다. 책에 마지막장을 덮고 제목을 보며 

내게 드는 감정은 황당함보다 통쾌함이었고 어떤 관점이든 당연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은 나약하고 어리숙하다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목적이 처음엔 과학적 발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분기학자들이 주장했던 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저자가 새로 발견한 것도 아니고 있던 것을 개인적인 이유들로 더듬다가 도달해 찾아낸 것이다.  

저자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뚫고 나오기 위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인물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발견했고, 

인생이 마구잡이로 던져대는 모진 비극들 속에서도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꿋꿋한 의지를 인생 전반에 내비친 

이 어류학자의 삶의 비결을 찾아 구원 받고자 하는 필사적인 과정에서 얻어진 우연한 결론이었다. 


괴짜 과학자를 아버지로 둔 저자는 자신의 인생이 파탄난 근원적인 시작점을 8살때 들은 아버지의 이 말로 보았다.

"너는 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아."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에 차등이 없다는 어쩌면 정의로워 보일 수 있는 이 과학적 의견에는 우울한 물음이 들어있었다. 

"내가 중요하지 않다면 왜 살아야하는가?" 삶의 의미를 공허해지게 만드는 아버지가 심어준 아버지의 삶의 지혜는

저자를 음울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반면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사상에는 저자의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철학이 담겨있었다. 세상에는 사다리가 존재한다. 어떤 것은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이 것을 찾아나가다보면

신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저자는 데이비드를 본보기로 삼고 싶을만 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빛나는 성공과, 불굴의 의지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름표를 병에 붙여 어류를 분류해놓은 수천개의 병이 바닥에 나뒹굴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비극을 겪을 때마다 

그랬듯이 주저앉지 않고 해야할 일은 곧바로 실행했다.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인 그는 제자들을 시켜 낮이나 밤이나 나뒹구는 물고기에 호스로 물을 뿌리게 하고 

에탄올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병에 붙인 이름표를 이번엔 물고기 배에다 찔러넣어 

다시는 이름이 따로 나뒹굴게 하지 않게 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도 (다시 아내를 구하고) 자식들 중

가장 사랑하던 딸이 죽었을 때도 동료와 제자들의 사고로 죽었을 때도 그는 곧 바다로 나갔다. 



그가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일이 그에겐 엄청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꽃이나 식물의 이름이나 알려고 한 그는 그 일이 재밌었지만 어머니의 말씀대로

시간 낭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멘토인 루이 아가시를 만나 분류학에 의미, 

모든 것에 차등이 있다는 이 사다리에 신의 의도가 있다는 이 가슴 벅찬 의미를 자신의 좋아하는 일에 갖다대자

그의 삶의 방향표는 굳건해졌다. 



구도자가 구원자를 찾아 깨달음을 얻고 위안 받았다면 이 책은 평범한 책들 속에 얌전히 파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삶처럼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들로 휘몰아쳤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저자의 

롤모델로서의 자격 검증이 차곡차곡 쌓이는 가운데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를 학장자리에서 내쫒으려던 스탠퍼드 설립자인 노부인의 의문사, 혐의가 많아보이는 그의 행적과 기록, 

그리고 우생학으로 발전하는 그의 철학 등이 결국 저자와 읽는 나에게 혐오감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알프스의 아오스타라는 마을은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카톡릭교회가 주거와 음식을 제공한 곳이다. 그는 이 곳을 다녀와 이렇게 말했다. 


"거위보다 지능이 낮고 돼지보다 품위가 떨어지는", "피조물들"이 들끓는 "진정한 공포의 공간"


열광적인 우생학자가 된 그는 우생학적 불임화의 합법화를 주장했고 미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1907년 블루밍턴에서 법제화 되었다. 우생학자들로 인한 수용소와 불임화 등 피해들은 상당했다.

가까스로 찾은 삶의 구원의 실마리가 혐오의 대상이 되버리자 저자는 그가 일생동안 어류를 분류하며

쌓은 성공들과 불굴의 의지로 살다간 그의 삶에 우주적 정의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에겐 더 큰 벌이 내려져야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굳건한 삶의 방향표, 분류학. 그가 트로피처럼 모은 수 많은 어류

우리가 알던 그 익숙한 비늘을 벗기면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생태학적 발견은 과학적 지식이라 설명을 잘 못하겠습니다.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일생을 바쳐 지구에 존재하는 물고기의 5분1을 찾아 분류한 

어류학자이자 우생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과업이 헛짓이었다는 것이 

우주적 정의의 실현처럼 보였다. 


우생학처럼 과격하지는 않더라도 세계에는 다양한 질서가 존재한다. 

그 질서는 결국 인간의 잣대이니 완전하지 않다. 


"너는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아."


괴짜 과학자인 저자의 아버지의 이 말은 딸의 삶을 공허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딸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보도록 경계를 허물고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라는 

애정어린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