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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갈 만한 근시대의 오스트리아 소설을 읽은 건 베른하르트 이후로 처음이다. 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재밌었다. 약간은 고약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재미 측면에서 <최후의 세계>는 일종의 통속적 판타지 소설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묘하게 현대스러운 고대를 배경으로, 이성의 세계에서 소실된 책을 찾아 환상의 변두리로 떠나는 화자가 어떻게 그 기괴한 풍속과 썩어가는 주변 환경들 속에서 문자 대신 세상 자체를 몸으로 하는 글을 찾아내는지가 그 핵심 플롯이고, 현대스러운 문물이 슬쩍 슬쩍 얼굴을 비추듯 신화 속에서 익숙한 인물들이 기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며 오비디우스가 <변신>을 쓰기 전에 바라본 세상이 있었다면 이랬을 것이다, 하는 현실적인 세계와, 사람이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산으로 사라지거나 언제나 방에 있던 천치가 돌로 변하는 등의 기괴한 현상들이 가득한 비현실적인 세계의 중간선을 타며 지금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피타고라스 구출작전> 등의 어린이용 소설과 같은) 교양소설과 (마찬가지로 현대화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루는 <신들의 전쟁>, <퍼시 잭슨 시리즈> 등의) 판타지 소설 사이의 간극을 메꾸고 있다.
미하일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나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등을 언급하며 함께 두는 기사들이 꽤나 있었고, 나 역시 읽으며 <크라바트> 등의 소설을 떠올렸으니 분명 판타지 소설에서 느껴지는 재미가 가득하다는 건 분명하다. 특히 화자가 점차 완전히 이성을 잃고 미쳐가며 오비디우스가 이 변경에서 완성한 올림포스 산의 세계를 발견하는 결말이 탁월한데, 예전에 존 파울스의 <마법사>를 읽었을 때 아마 내심 이런 결말을 기대했던 게 아닐까 하고 옛 기억을 되살려보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런 종류의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탐문형 판타지의 결말로 이런 것 이상의 뭔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용기사07의 <괭이갈매기 울 적에>는 딱 그런 점에 한해서 훌륭했다. 드라마 <트윈픽스> 시즌 2는 마지막화를 제외하고 그 점에서 처참했고.)
허나 단순히 이런 환상 문학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는 점이 <최후의 세계>가 재밌으면서도 고약한 점이다. 역자의 후기를 보면 오비디우스의 유배에 얽힌 사건들과 이후 이를 반동적 세력들이 아이콘으로만 활용하는 점, 시칠리아 섬의 독립 운동 등이 현대 사회의 문제를 비유하고 있다는 비평"도" 있다는 정도로만 소개했는데, 솔직히 읽으면서 이 점은 "도" 정도의 부수적인 암시가 아니라 나름대로 큰 한 축을 이루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만 넘기는 게 마치 영화 <판의 미로>를 보면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암시들을 무시하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아니라면 솔직히, 굳이 작중의 세계를 묘하게 현대스러운 고대로 그릴 필요가 그리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오비디우스의 로마에 대한 "무례"는 기실 황제 본인은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으며, 실제로 게으른 황제는 오비디우스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곧 황제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해석하는 신하들의 과잉 충성에 의해 가장 큰 형벌로 이어졌으며, 이후 오비디우스는 자신이 쓰지도 않은 글을 자신의 글이랍시고 인용하는 제국 저항 세력들의 상징이 된다. 나치 독일 생활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는 바가 있는데, 기실 이는 게으른 독재자 히틀러에게 과잉 충성하며 우리가 아는 "최종 해결책" 따위의 극단적 선택까지 이른 나치의 묘사와 비슷하다. 작중 제왕인 아우구스투스의 실제 역사보다는. (이를 증명하듯, 소설에서는 오비디우스의 유배지까지 흘러 들어온 독일인 병사의 가스 처형실에 대한 기억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최후의 세계>는 참 가볍게 휙휙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우면서도, 또 파보자면 다른 민감한 연결점들이 많이 보이는 재밌으면서도 고약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번역작인 <빙하와 어둠의 공포>를 추후 읽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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