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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굵은데 밑줄 긋는 구절은 진심 적었다. 의미심장하고, 뭔가 마음에 와닿는 임팩트 있는 구절은 적었다는 의미인거 같다.

난 보면서 근본적인거 결코 건드리지 않고 자질구레하고 부차적인 것을 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배 얘기 나와도 무엇을 분배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치중된 느낌.

사람한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가 이런 문제에선 상식적인 통념에 기대는 것 같았다.

이건 근본적인 질문 안던지는 게 철학자기보단 정치학자 같은 느낌을 받았다.

봉급쟁이 철학자의 한계인가. 봉급쟁이는 결코 자신에게 돈 주는 사장한테 공적인 자리에서 심기 거슬리도록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줄 끊는걸로 겁박 주면서 비굴하게 꿇어라고 하면 꿇어야하는 처지이다.

사장님이 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근본적인게 아니라 사장님 명분을 따지는 것이 더 근본적인 정의일것이다.

정의와 명분 뗄수 있는 관계인가?

많은 경우가 비판 한다는 것 자체가 즉 따지는 것 자체가 불경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예스해야하는 성질인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역린 건드리다가 망명을 갔었다. 어떤 위험을 감수 안하는 철학자들은 진정성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경향성이 없다는 의미에서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

경향성이란 정열과 확신을 의미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실천적 문제이다. 경향성 없는 실천이란 게 어딧는가? 정의는 관조적이거나 사변적인 대상이 아니다.

정의를 무슨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식으로 관찰하는 사물이 아니라

정의를 갈구하고 삶속에서 정의라는 목표가 체화된다면 경향성이 어찌 안띌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영향력이 막대한 것은 노동자를 위하는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사상이 삶속에 큰 의미를 부여하도록 체화된게 아니라 그저 수단적인 의미라는 느낌이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