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에 끊어지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마지막 요약만 봐도 괜찮음.
먼저 마담 보바리를 읽기 전에 알아두어야 하는 사실이 있음.
바로 마담 보바리는 소설이라는 사실임.
잠시만 우리 소설이 무엇인지 한번 고찰해보자.
소설은 예술이란 큰 범위, 나아가 문학이라는 작은 범위 아래 정의 될 수 있음.
예술이란 특수한 소재, 수단, 형식에 의하여 기교를 구사해서 아름다움을 창조 및 표현하려고 하는 인간 활동 혹은 작품임.
문학이란 삶의 가치 있는 경험을 상상력을 토대로 언어로 짜임새있게 표현한 예술임.
소설은 인간의 삶에 있을 법한 사건을 작가의 상상에 의해 가공적으로 꾸며 내어 산문으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임.
그래서 소설을 집필하는 '소설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에서 집중한 것은 과연 불륜이었을까?
우선 플로베르는 심리학자가 아니었음, 더군다나 사회학자도 아니었고... 그는 소설가이자 작가였음.
작가로서 그는 문학(소설)의 정수를 창조하기 위해 달려나갔고, 그의 어마무시한 상상력과 필력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그야말로 플로베르적인) 언어 세계를 창조해버림.
A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B 형식, C 기술, D 기법, E 기교 중 무엇이 A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가? 무(無)에 관한 책, 외부의 접점이 하나도 없는 책(레퍼런스가 하등 필요 없는 책), 작품의 내적인 힘만으로 지탱하는 아름다운 책을 과연 창조할 수 있을까?
마담 보바리는 플로베르가 '소설은 주제가 거창할 필요 없이, 오로지 문학적 스타일만으로도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쓴 책임.
그리고 마담 보바리는 플로베르가 무려 4년 반이란 시간동안 위 질문을 답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작품이기도 함.
아주 평범한 줄거리/인물 내면 심리 묘사/완성도 높은 표현력까지 그야말로 현대 문학의 시작이자 소설을 시(언어 실험의 극한)의 위치로 끌어올린 19세기 문학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지.
플로베르의 여러가지 기법, 형식의 고민들을 짧게나마 설명하자면 우선 시점:
마담 보바리가 시점에 있어서 얼마나 유연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지 1부 1장 5페이지 정도만 읽어 봐도 알 수 있음.
"우리"라는 1인칭 복수형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서 독자와 작가가 한 공간안에서 샤를르 보바리를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어있음.
저녁때 자습실에서 그는 사무용 소매 커버를 책상에서 꺼내어 낀 다음 자질구레한 자기 물건들을 정리했고 종이에 정성스럽게 줄을 그었다. 우리는 그가 단어를 하나씩 사전에서 찾으면서 몹시 힘드여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그가 보여준 이 같은 성실성 덕분이었는지 그는 아래 학년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문법은 그런대로 이해를 했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도무지 세련된 데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의 부모가 돈을 아끼느라고 될 수 있는 한 늦게까지 학교엘 보내지 않았으므로 마을 본당 신부가 그에게 라틴어 초보를 가르쳐주었었다.
작가가 고안한 시점의 변화를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위해 플로베르는 악을 썼는데 위 단락은 그 예시 중 하나로 1부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직접적인 현재의 인상을 표현하다가 '그의 부모가 돈을 아끼느라고 될 수 있는 한 늦게까지 학교엘 보내지 않았으므로 마을 본당 신부가 그에게 라틴어 초보를 가르쳐주었었다.' 이후로 샤를르 보바리의 삶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서술한 시점을 독자는 마주하게 됨.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순식간에 눈치채기가 굉장히 어려움.
내가 위에서 설명한 단순한 시점의 변화외에도 샤를르가 바라본 엠마의 모습(1부 5장), 엠마와 로돌프의 첫만남(2부 7장), 농업박람회 장면(2부 8장)**, 기타 등등의 장면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완성도 높은 시점의 구조가 나타남.
**볼드체는 꼭 읽어라 두번 읽어라.
두번째로 구조: 그
ㅈㄴ 귀찮네...
요약: 마담 보바리를 단순한 불륜 스토리(줄거리) 이해를 목적으로 잡고 읽기보다 언어적 형식 및 문체(스타일) 파악, 작가가 창조한 세계(상상력) 관찰 위주로 보면 굉장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가끔 몇몇 사람들이 서사 지적도 하던데 마담 보바리의 서사는 19세기 소설 서사 중 가장 현대적이고 자연스러운 서사를 지니고 있는 소설이다. 근거는? 조이스체호프나보코프프루스트를 읽어보면 안다.
트위터에서 불륜녀 혼내주기 소설이라도라
아름다운 묘사가-눈앞에 펼쳐지듯-자연스럽게 '계속' 연결됩니다. 아니라고? 독해 능력, 상상력, 기억력,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탓하세요^^
음악 자체보다 스타일에 치중하는 k팝도 비슷한 방향 같네. 뮤비 보면 멋지고 아름다운 묘사가 자연스럽게 계속 연결됨
반대, 플로베르는 아름다움을 텍스트로 어떻게 전달할까에 치중(문학적o)한거고 k팝은 아름다움을 음악이 아닌 다른 요소에 집중(음악적x)한거지.
그래서 둘의 방향은 애초에 다름.
k팝은 최신 유행의 짜집기고, 플로베르는 새로운 형식과 표현을 한거고... 사적맥락을 전혀고려하지 않은 비교.
'xx는 요즘으로 치면 라노벨이네?'랑 같은 댓.
소설에서 주제는 음악에서 주 멜로디와 같음. 고로 k팝은 플로베르랑 방향이 같은거야. 둘 다 주제보다 전달에 치중한거니까
아름다움의 전달이 차이? k팝도 아름다운 외모, 아름다운 안무, 아름다운 뮤비를 어떻게 전달할까 신경씀. 본질적으로 같음
k팝도 새로운 형식과 표현임. 그렇게 맴버들 한명씩 번갈아가며 랩과 보컬과 댄스를 섞는 장르는 없었다
문학에 있어서 예술적으로 훌륭한 주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보잘 것 없는 시골 마을인 이브토를 그리건 유명한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그리건 결국은 마찬가지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그리고 새로운 형식이란 단순히 엮는 것만이 아니라 음악사에 중요한 기술을 발굴해내는 거임. 전자 사운드로 현대 클래식의 방향을 제시한 슈톡크하우젠, 록의 거의 모든 실험을 한 비틀즈, 힙합의 시작을 알린 투팍 역사에 길이남을 음악적 성취를 이루어야지 새로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거임. 뭐 k팝이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나는 과연 그럴까 의심이 감.
도끼 대심문관 같은 거대한 주제를 포착할 능력이 플로베르에게 있었다면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싶기는 함
k팝은 장르적으로 이미 독특하다고 평가받음. 더 공부해 봐. 물론 음악의 멜로디적으로는 얄팍한데 형식적으로는 새로움.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k팝임
플로베르의 소재와 주제의 거대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성 앙투안느의 유혹이나 읽고 오시길
보바리 말하는거임. 불륜하다 자살
그리고 플로베르만 말하는 것도 아니고, 현대적 소설 경향 말하는 거. 그리고 k팝 무시함? 현대 상업 음악을 종합해서 새로운 형식으로 화려하게 엮어낸다는게 해외 평가임. 애당초 1명씩 돌아가며 노래하고 랩하고 춤추는 거 본 적 있냐? 일본 아이돌만 봐도 기본적으로 때창임
ㅋㅋㅋㅋ”도끼 대심문관 같은 거대한 주제를 포착할 능력이 플로베르에게 있었다면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싶기는 함” 플로베르는 거대한 주제를 포착할 능력이 있었다고ㅋㅋㅋ 그래 k팝은 잘 모르겠으니 일단 ㅇㅈ
그럼 그 큰 주제를 다룬 책이 주저였겠지. 불륜녀 자살 이야기 말고. 별 거 없으니 안 유명한거임
도대체 플로베르가 다룬 커다란 주제가 뭔데? ㅋ
K팝에 관심도 없으면서 마치 전문가인양 왈가왈부하는 거 보면 알려주고 싶지도 않다… K팝 포스트모더니즘썰 출처 어디임?
플로베르도 프루스트도 2회독부터 재밌더라
"k팝도 새로운 형식과 표현임. 그렇게 맴버들 한명씩 번갈아가며 랩과 보컬과 댄스를 섞는 장르는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ㅉㅉ
"k팝은 장르적으로 이미 독특하다고 평가받음. 더 공부해 봐. 물론 음악의 멜로디적으로는 얄팍한데 형식적으로는 새로움.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k팝임"ㅋㅋㅋㅋㅋㅋㅋ
지랄도 풍년이네 트로트만 듣고 살았냐?
나도 k팝 잘 안 듣지만, 본격적으로 맴버 1명씩 번갈아가며 부르고 랩하고 춤추는 건 음악 역사상 첨이라고 함. 장르를 모아서 배분을 한거지. 주장을 반박을 해야지 남의 글 복붙하고 낄낄거리면 정신승리가 되냐
너 솔직히 말해봐. 맨날 탐미주의 까는 '그' 도끼악개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