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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이자 제단.

통영에 여행 갔을 때 통영 출신으로 고향에 50년간 돌아오지 않으셨다는 일화를 불확실하게나마 들었는데,
비겁하게나마 그 야사를 검색해서 옮겨오자면 이런 내용이었음.

박경리가 평생 통영 사람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게 한 그 일은 무엇이었을까? 혹 그 일 때문에 선생은 50년 동안이나 고향 통영을 찾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삼십대 초반, 박경리는 돌아온 고향 통영에서 충렬초등학교 음악 선생과 재혼을 했다. 총각 선생은 그녀의 딸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였다. 용화사 옆 작은 암자에서 정화 스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세간의 비난이 쏟아졌다.

짐작건대 당시에 총각 선생이란, 더구나 총각 음악 선생이란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와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처녀도 아닌 애 딸린 과부'가 총각 선생과 결혼을 했으니 무사할 수가 있었겠는가. 온갖 악소문과 질시에 시달렸고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 불의의 사고로 아들마저 죽었다. 참척(慘慽)의 슬픔을 당한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박경리는 통영을 떠났고 50년 동안 단 한 번도 통영을 찾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그 오랜 세월 고향을 등진 것은 그 일련의 사건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50년 만에 돌아온 고향 통영에서 그녀는 그 당시 일의 섭섭함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고향에 돌아왔고 고향에 묻히길 원했고 고향에 묻혔다. 고향이란 그런 곳이다. 50년 동안이나 간직한 원망도 설움도 한순간에 녹여버리는.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음.
출처: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23> 박경리와 통영, 그 애증의 세월

통영에는 그 외에 작곡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이 동인을 결성했고 화가 이중섭이 부산에 머물기 전 잠시 그 셋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하였음.
백석이 친구에게 빼앗긴 여자가 그의 시에 나오듯 명정골에 살아, 백석이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해 그 앞 충렬사 계단에서 울었다는 일화가 있기도 함.

아. 그리고 용화사로 가는 길에 전혁림 미술관과 함께 봄날의책방이라는 독립서점이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려보는 것을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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