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아서 신은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신을 어떤식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함.
신이란 것을 과학이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우리가 신이란 것에 관해 가지는 초월적인 관념은 어느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거 아님??
과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하면서도 우리가 신이란 것에 관해 가지는 통상적인 관념을 어떻게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함.
난 신이란 것의 의미를 보존할려면 알 수 없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어떤 압박이 느껴짐.
개똥철학 ㅈㅅㅈㅅ
신이란 것을 과학이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우리가 신이란 것에 관해 가지는 초월적인 관념은 어느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거 아님??
과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하면서도 우리가 신이란 것에 관해 가지는 통상적인 관념을 어떻게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함.
난 신이란 것의 의미를 보존할려면 알 수 없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어떤 압박이 느껴짐.
개똥철학 ㅈㅅㅈㅅ
나도 예전엔 무신론 커뮤니티 둘러보고 그랬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신이 과학이나 경험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고 일단 받아들였음. 그 뒤에, 그렇지만, 예수가 부활했느냐 안 했느냐는 완벽하게 경험적인 거 아니냐라고 반박했음.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성경 구절은 고린도전서 15장 14절.
신에 관해 얘기하면서도 그것이 정말로 “신”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모르겠음. 공허한 언어놀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중임. 우리가 “신은 존재하는가?”와 같이 묻는 것은 마치 “숫자 1은 어떤 맛이 나는가?”와 같은 터무니 없는 언어사용일 수있지 않나. 사실 잘 모르겠다. 새벽이라 감성터져서 글써봄.
꽤나 언어철학적이고 내가 쪼오끔은 말할 수 있는 주제같네. 이런 언어의 혼동 논변이면 무조건 비트겐슈타인 나오지. 비트겐이 언어놀이를 주창하면서 본질주의를 비판했지만 완전 반대인 탈주적인 면 또한 그의 길이 아니었음. 아마도 언어로 어떤 또다른 회의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을 아닌 거 같다고 본 거 같음.
라캉이 좋은 예 같음. 기표가 미끄러진다고 하면서 절대 정립할 수 없다... 와 비슷한 논의를 하잖음. 비트겐은 그정도는 아니라 하면서 거친 대지의 마찰이 있다고 봤음. 그리고 이것 때문에, "본질"이 문법에서 언표된다 말함. 이것 때문에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명제가 가능하다고 봤어 (탐구 371,373). 물론 꺼리지만 그렇게 심하게 공허하다고 보진 않았음
하지만 깊이 따져본다면 이건 비트겐의 오피니언에 불과할 뿐이겠지. 더 이상 말하면 개똥철학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