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아마도 그 분노가 정서적으로 무분별하게 '적'으로 규정되어지는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지. 파괴의 필요 최소한을 추구하는지에 따라 이상적인 혁명 담론이 가능할 것 같은데.
내 주 관심사인 이 분야의 예시를 들자면,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살포, 찰스 맨슨의 다중 살해 사건, 그 단어 자체 만으로 참혹한 문화대혁명, 나치의 홀로코스트, 중공의 티벳 등 소수민족 홀로코스트, 이런 남성이 주로 행사하는 폭력 외에도
여성적 폭력 (언어적 폭력 사회적인 고립시키기 등 간접 살인.)
{이 불성실한 분류는 사회심리학의 공격성 챕터를 출처로 함, 책은 잘 분류되어 있음.}
등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자체도 이런 집단적 폭력에 의해 구성된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나?
트로츠키 주의자(토니 클리프)의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회적 약자층이었던 여성을 끌어들여 극단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어떤 세력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남 네오나치였나?),
그는 자기가 속한 단체가 앞서 사회적 약자: 여성을 지원함으로서 사회적 약자 계층의 극단주의화를 막을 수 있었다고 회고함.
그리고 위에 나열한 무분별한 집단적 폭력의 사례들은 대부분 막말로 존나 먹고 살기 힘든 경우에 일어난 경우인데, 그런 전체주의를 먹고 자라난 정권이 자행하는 경우는 성격이 다른 부분도 있음.
사회심리학을 희미한 기억으로 발췌하자면, 이집단적 혐오와 폭력은 먹고 살기 힘든 환경에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심리학 편견 챕터)
핸드폰으로 써서 지금 호기심의 논점이 좀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대충 정리하면
챕터 1. 짧은 생각의 정리.
1. 집단적인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2. 내가 생각하는 비판받아야 하는 집단적 폭력의 사례
3-1. (2)에서 언급한 집단적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 해결책 중 하나를 제시.
3-2.추가: 현대 민주 사회 형성에 있어 집단적 폭력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4. (2)에서 언급한 사례들이 어째서 (3-1)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사례 발생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분석의 불완전한 부분적인 인용.
5.추가: (4) 자체 만으로도 인류에 대한 집단적 폭력은 필연적일 수도 있음
6.추가: 집단 적인 폭력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의문점
(이걸 스스로 캐치를 너무 늦게 함)
챕터 2. 비교적 긴 생각.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래의 (24), (40)을 먼저 읽어주기를 부탁드림>
핵심 의문점은,
1.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분명히 집단적 폭력: 혁명에 일부 수혜를 누린 바 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 등.
2. (가설)그러한 혁명 자체는 당시 체제의 정부가 (4)로 대중을 진정시킬 수 있을 만한 수단이 부재했으며, 그러한 수단의 부재(권력의 상실)은 다른 계층의 권력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다른 계층(읽은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남)과 광기에 가까운 대중적 분노에 의해 일어났다.
혁명이 필요로 하는 2가지 요소.
내부에서의 혁명일 때와 외부가 개입하는 형태는 다르다.
그리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안됌.
나는 현재의 (2)에서는 내부에서의 혁명 만을 논함
3. 광복군
내 가설에 따르면, 혁명으로서 충족될 수 있는 요건 중 하나: 투쟁 대상의 권력 상실과 권력 이동이 내부로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을 주체로 한 실질적인 '혁명' 시도는 불발된 것이다.
4. 간디의 비폭력 운동
이게 내 호기심의 핵심 키워드인 거 같은데, 자세히 알아보지 못해 언젠가 읽어보게 될 듯, 이를 잘 다룬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림.
(기억이 흐릿하지만, 국부론에 의하면 인도를 식민지 화하는 국부의 소모가, 간디가 일으킨 비폭력 투쟁에 의해서 영국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워졌으리라는 가설.
국부론에서는 아직 인도와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 상태였음. 국부론의 식민지에 대한 핵심적 주장..을 논하기에 앞서, 국부론에 따르면 인도는 동인도 회사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이런 독점 현상에 의한 폐단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 내내 존나 까는 것 중에 하나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진행이 있었을 것.)
5. (1)을 부정, 사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집단적 학살과 억압에 기반한 것이다. '유형, 무형한 다양한 형태의 힘의 논리'의 투쟁.
6. 그렇다면 이런 집단적 폭력에 정서적인 충격을 동기로 하는 의문 자체가 필연적인 현상에 어긋날 수 밖에 없는 이상론자의 견해일 뿐인가.
(이건 분명히 저서가 많을텐데 제대로 설명한 저서는 분명 희소하리라 생각함. 왜냐면 지금도 버젓이 발생하고 있으니까)
7. 사실 집단 간 투쟁과 지배, 폭력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나는 마치 채식주의자들처럼 자연스러운 섭식 행위를 거부하겠다는 꼴이 아닌가?
8.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나의 견해: 자본주의적 경쟁으로 인간이 너무 많아졌고 인간은 생물적, 비생물적 자원의 신성함을 잃어버림. 이미 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체함으로 우리는 그 신성성 상실을 직시하기도 어려움.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긍정과 반대를 지금 논할 필요는 없다.
9. 이런 반 자본주의 혹은 자연주의적인 견해에 있어, 인간의 인권 개념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 아닌가.
바로 먹고 살 만 해져서. 자원의 풍족함 개념.
10. 인간의 인권 개념은 풍족함을 뒷받침하는 기계의 개발, 즉 자원을 목적으로 한 환경의 파괴와 자연의 신성함을 훼손함으로 생겨난 개념이다. (이는 직관적인 사고실험의 사례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작품들을 제시하고 싶다)
11. 인간이 자연과 자원을 풍족할 만큼 착취할 수 없는 이러한 환경(이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에서 인간은 진화론적인 형태의 이기성과 이집단성을 보여준다.
12. 이러한 이기성과 이집단성을 논함에 있어, 이집단성과 인권 개념을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13. 그러나 이집단성을 떠나 타인을 돕는 행위는 개인의 자아상을 향상시키거나 유지시키고, 사회심리학 저서에 나오듯이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접하거나, 타인과의 유사성을 경험하는 행위 등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심리학 이타심 챕터.
14. 근본적으로 이집단을 초월한 지구적인 인권 개념이란 본질적으로 자연의 파괴와 자원의 소모를 필연적으로 (인류의 사회적 진화와 그로 인한 기술적 발달)로 엄청난 규모로(지속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수반해야 생성되어질 수 있는 개념이다.
15. 이러한 가설에 의해 생각해보면 WEIRD 문화권과 다른 문화권의 도덕 관념이 다른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일이며, 그 차이 자체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소모하는 에너지와 나머지 나라들이 소모하는 자원의 차이에 대한 제러미 리프킨의 연구 또한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1980년대 책이라 지금과는 차이가 있다.)
/WEIRD 문화권에 대한 연구는 바른 마음 외에도 다른 저서에도 자주 언급됌.
16. 그렇다면 인류가 이집단적 폭력을 통한 경쟁적 발전 행위가 수반하는 자원에 대한 광폭한 소모 행위를 바탕으로, 인권, 여성권, 동물권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17.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필딩 오그번의 저서에 처음 등장하는 문화 지체의 개념은 오히려 어떤 화제에 있어서는 모순되는 것이다.
18. 문화 자체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하고, 문화가 기술의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 조차 종과 생물, 비생물을 막론하는 무수한 학살과 착취를 바탕으로 기술에게 선물받은 혜택인 것이다.
19. 집단적인 폭력을 비판하는 현상 자체가 그 스스로가 비판 대상으로 여기는 과거의 집단적인 폭력이 아니라 현재의 더 심화된 집단적인 폭력을 통해 생성된다는 모순에 도달하고 말았다.
20. 이 현재의 집단적인 폭력이란 인류와 비인류적인 전부에 대한 것으로 정의한다.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권이라는 개념을 지켜야 하지 않는가?
22. 그러나 이 전지구적인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집단적 학살을 바탕으로 형성된다는 모순에 도달하지않았는가?
23. 인권의 원죄: 풍요를 위한 집단적 학살
인권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다시 이기심과 이집단의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 원죄를 우리는 품고 있지 않은가?
24. 집단적 학살이란 무엇인가.
양자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의 일방적인 착취나 폭력 파괴 살해 행위.
25. 인간의 이집단적, 이기적인 진화론적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질들이 애초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 집단적 학살 아닌가.
26. 그렇다면 이집단성과 이기성이야말로 <아담과 이브에게 쳐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버젓이 품고 있는 에덴 동산>을 만든 기독교(천주교)적 신의 잔인한 역설이지 않은가.
27.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면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 논하는 자원 고갈, 환경 파괴로 인한 (둘은 서로 상호 순환하며 증가한다) 인류 멸망의 해결책이라는 건 헛소리에 불과하다. (헛소리에 불과하니까 아직도 쥐 죽은 거 마냥 실질적인 진행이 없는 것이기도 함)
28. 중국 같은 경우는 꽤 독특한 것 같지만, 지금까지 세운 생각에 의하면 명쾌하게 설명된다.
(2)에서 논한 혁명을 위한 2가지 요건 전부를 정부가 성공적으로 통제하여 발생하는 것을 막고 있다.
이것은 다른 독재국에도 대입해도 명쾌하게 설명되어지는 부분이다.
29. 기술의 발전이 이미 빅브라더와 첨단 감시 사회 불러온 중국 사회에서는 혁명을 위한 요건 생성(다른 계층에 권력을 빼앗기는 것, 대중적인 분노의 연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중국의 지나치게 큰 영토와 많은 인구가 전체에 상당하는 수로 연합한 형태의 대중적 분노를 저지하기에 적합하다.
30. 결론적으로 애초에 인권, 여성권, 동물권 따위의 개념은 원죄, 더 많은 원죄를 품고 있다.
31. 집단적 폭력을 통한 혁명은 2가지 요인이 전부 충족 되어져야 발생한다.
32. 집단적 폭력을 통한 혁명을 통제하는 수단.
33. 집단적 폭력을 통한 혁명을 통제하는 수단은
평화적이고 자유적인 수단과, 보다 잔인하고 억압적인
수단의 이분법을 떠올릴 수 있다.
분명 이런 이분법은 수준이 낮은 형태의 전개인데, 이것은 관련 저서를 보아야만 효율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34. 챕터 1-(1)에서 논한 집단적 폭력을 혐오하는 나의 정서는 단지 현재의 시간과 사회 체제에 한정하는 것이면서, 이미 원죄를 품고 있다.
35. 그러나 집단적 폭력의 참상을 나는 정서적으로 거부한다.
36. 나는 한계를 생각한다.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더 많은 에너지가 인간에 의해서 착취당할 때, 더 큰 집단적 폭력의 생성을 기반으로 기존에 존재했던 집단적 폭력을 반대하는 모순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37. 내가 챕터 1-(2)에서 논했던 나치, 중공 등의 유지는 단지 혁명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
38. 중국의 혁명 요건 통제는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이미 고도로 발달했다.
39. 집단적 폭력에 대한 정의를 먼저 하지 않고서 생각을 전개한 게 아쉽다.
40. 집단적 폭력이란 (36)에서 논하는 비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적 폭력과, (38)에서 논하는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적 폭력으로 나눌 수 있을텐데,
이 둘은 결국 복잡하게 상호작용 하므로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사고해서는 안된다.
41. 현대 사회의 차원에서 자유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는. 안타깝게도 이미 학살에 기반하여 생성된 것들이다.
42-1. 인간은 좆같고 오직 정서 만이 인간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것은 곧 시의 역할이다.
다른 개체의 역할 되어보기 연습.
이 또한 시의 역할이기도 하며, 인과를 공유하고 경험하는 에티카적 상담 기법이기도 함.
42-2. 사회 내부의 집단적 폭력은 사회적 약자 계층의 분노, 극단주의자들을 주도로하는 결집, 그리고 체제가 극단주의자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챙겨줄 수 없는 상황이 전부 결합되어야 발생한다.
42-3. 그러므로 현재를 한정한 사회적 내부의 극단주의자들의 주도로하는 집단적 폭력이 싫다면 저 3가지 중 하나를 제거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처음 찾고자 한 이상적인 온건 사회 발전의 형태이다.
(나는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과 집단적 폭력을 구분하고 있다.)
42-4. 그렇다고 해도 기술의 발달이나 현실적인 정치적 역학과 실제적 적용의 어려움 등 전체적인 좆망은 피할 수 없을 거 같다.
42-5. 집단적인 폭력에 대한 나의 정서적인 혐오감은 나의 자아를 형성하는 시대와 위치에 의해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다고 해서 참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시대고 어떤 위치에서건 누군가는 집단적 폭력에 대한 혐오감을 품었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팽팽한 대결도 결국에는 지옥에 불과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사회 발전의 긍정론은 대체적으로 옳다고도 볼 수 있다.
43. 이것은 개인적인 결론과 독서법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목적성을 가진 통합적 독후감이라는 것이다.
한 번 읽어보고 내가 생각하기에 삭제하고 싶다면 삭제함.
책 얘기는 떠오르는 것들로는 에티카, 토니클리프, 사회심리학, 바른 마음, 엔트로피, 윌리엄 필딩 오그먼, 등등 떠오르지 않는 기타 읽었던 책들 종합함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추가. 그리고 기타 내가 읽어왔던 문학들.
이미 언급했듯이 관련해서 더 읽어야 하는데 이게 의미가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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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집단적 폭력의 정당성을 논하는게 너 말대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행하는 집단은 결국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혹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듯 말야.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것이듯. 저기서 중국의 티베트를 보면 중국 내부에선 자기들의 전략적요충지라고 볼 수 있는 티베트를 방어하는게 당연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그것이 억압을 행하는것이니 독립 해방시켜야한다는 시선이 적지않듯. 사실 내가 이 글에 댓글을 이런식으로 적어도 되는지도 모르겠음.
예시는 민감한 화제지만 본문의 난잡한 글을 읽어주고 이해한 거 같아 고마울 따름임요. 막줄은 왜 그리 느끼셨는지..? - dc App
자유민주주의 설립 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주의적 원칙의 수립 과정은 배제를 수반한다고 샹탈 무페는 강조합니다. 샹탈 무페는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별하는데, 이때 정치적인 것은 갈등과 적대 등을 본성으로 합니다. 이러한 갈등과 적대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존재론적 차원에 가깝다고 무페는 생각합니다. 롤스나 하버마스 등은 공적 이성,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기반으
기반으로 한 합리적 개인관을 이용해 보편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갈등과 적대를 해소하기보다는 배제한 결과에 가깝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보편성에서 배제된 차이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합리적 개인관은 자유민주주의의 수립에 도움을 주었으면서도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게 무페의 생각입니다.
동시에 배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도 결론 내립니다. 이러한 배제 자체가 집단적 폭력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번 적어봅니다.
저도 상탈 무페의 갈등과 적대의 본성론에 동의하는 것 같아요.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 토론이 한계를 가진다는 점도 그렇구요. - dc App
역사 쪽에 대해 더 알아야하겠지만 저는 자유민주주의 설립 자체가 이미 원죄를 가진 개념인 듯 해요. 여러가지 제국주의적인 행위들이나, 자원적인 차원에서도요. 우리가 느끼고 분개하는 자유란 제대로 된 사상이 아니라 단지 정서에 불과하다는 결론인 듯 해요. 이미 원죄를 품고 있으니까요. - dc App
본문 자체는 그냥 잠깐 새벽에 생각 정리를 한 것이고 단순한 생각 정리로서도 참 모자라다고 느껴져요. 무페는 배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면, 그 배제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제시했는지 궁금해져요. 배제를 상상하는 순간 이미 그 결과물로 도덕적인 관점보다는 힘의 논리에 기반한 행위들을 낳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 dc App
제가 아직 무페를 완벽히 공부한 것은 아닌 상황이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무페가 구체적인 배제 행위 자체를 서술하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보듯 거대 양당이 소수 정당을 무시하며 입법 절차를 수행해나간다든지, 보편이라고 생각되는 다수의 집단이 소수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상황을 떠올려볼 수는 있겠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다른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테러나 물리적 공격 등의 폭력 행위 등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적대나 갈등을 완전히 '해소', '제거'하는 것은 환상이며,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무페는 말합니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로서 폭력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공권력이 행사하는 힘도 폭력임. 사회가 행사하는 구조적 폭력은 사회유지라는 차원에서 언제나 정당화 됐었고, 사회 안에서의 개인이나 집단의 폭력은 마찬가지로 사회 유지라는 측면에서 규탄받음. - dc App
사회에서 집단이 다원적으로 존재해서 규탄과 옹호 역학이 꽤 복잡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에여 - dc App
아예 폭력의 단어적 접근 만을 보자면 저는 꽤 폭력을 선호하기도 하는 사람이거든요. 투기 같은 거 좋아하고. 제 말이 별 의미는 없죠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