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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후기에 유입된 서학에 대한 실학자들의 반응을 정리하고 연구한 책이다.
1장에서는 서학의 형성과 유입에 대해 다룬다. 조선에서 서학은 당시 중국에 체류하고 있었던 서양 선교사들이 저술한 한역서학서 등을 조선에 유입하고, 이수광이 『천주실의』 등을 소개하며, 인조 대 정두원이 서양 문물을 소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렇게 조선에 유입된 서학은 성호 이익 등의 실학자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성호 이익 등의 실학자는 서양의 발전된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졌을 뿐, 마테오 리치 등의 선교사들이 궁극적으로 중국에 선교하려고 했던 천주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이 같은 천주교, 서학 비판적 입장을 이은 인물이 신후담과 안정복이다. 신후담은 최초의 서학 비판서인 『서학변』을 저술했으며, 안정복은 「천학문답」을 저술하여, 서학(천주교)를 비판하였다.
신후담과 안정복은 서학을 비판했으나 그 방향은 조금 달랐다. 신후담은 이론적 비판이 주였다면 안정복은 실제적 측면에서 천주교를 비판하였다. 이는 신후담 때와 달리 안정복 때에는 천주교가 종교로서 조선 사회에 직접적 문제로 등장할 때였다. 따라서 안정복은 천주교의 비인륜성을 지적하며, 천주교를 따르는 후학들을 설득하려 한 것이다.
4장에서는 실학자들의 천주교 비판 논리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그들은 성리학적 이기론에 입각하여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스콜라 철학과 종교철학이 주류가 된 마테오 리치 등의 선교사의 천주교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들의 영혼설이나 세계관을 불교의 논리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이는 전제 자체가 다른 유학 및 서리학적 세계관에 천주교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억지로 천주교리를 동아시아 세계관에 맞춘 서양 선교사들과 한역서학서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실학자이기 이전에 유학자였던 이들은 서학의 논리와 한역서학서의 천주교 설명을 성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단의 논리로 받아들였다. 이는 물론 리치가 성리학적 논리를 부정하고 성리학 이전 유학의 논리로 천주교리를 설명한 탓도 있었다.
5장은 정약용과 서학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다.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인 적도 있었을 정도로 서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성호 이익의 영향을 받아 주자상대주의적인 입장을 보이며 주자의 이기론 등을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서학의 영향이 있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부록은 앞에서 설명한 『서학변』과 「천학문답」의 번역을 수록하였는데, 『서학변』의 경우, 이후에 번역된 자료가 있기에 따로 읽지 않았고, 「천학문답」의 경우, 천학(천주교)에 대한 물음에 대해 안정복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비판하는 게 그 내용이다.
여기에서 안정복을 세례 등의 천주교 의식에 대해 불교에서 행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천주교를 불교의 한 분파로 인식하였으며, 따라서 당시 천주교 신앙생활을 하는 선비들을 ‘이단에 빠진 자들’ 로 규정하며, 유학자의 본분을 찾을 것을 설득하고 있다. 당시 선비들의 천주교 신앙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었던 만큼 안정복의 이러한 천주교 인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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