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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렴풋이 아는 브라질 제정의 이미지란
문명 5나 6와 같은 매체에서 나오는 노예제를 폐지하려는 성군 이미지랑 겹쳐져서, 훌륭한 황제가 농장주들에게 밀려서 쫓겨났다…
이정도로 인식됐는데, 막상 이 책에서는 노예제랑은 별개로 제정사회의 모순점을 많이 설명해주더라..
일단 첫 번째로 “제국 체제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도 않았고, 황제는 전제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것”
1824년에 제정된 브라질 제국의 헌법에선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그냥 없었음. 내각제는 페드루 2세가 성인식을 치룬 이후인 1847년에 ‘각료회의’의 의장직에 대해 규정된 법률이 제정되면서 시작됨.
근데 문제는 황제가 총리라 할 수 있는 각료회의 의장을 임명할 권한 외에도 황제는 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 이 조정권을 통해 언제든지 국가자문회의의 자문을 거친 뒤 하원을 해산할 수 있었음. 그 후에 치뤄질 총선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내각 혹은 자신의 내각과 조화를 맞는 의회를 만들 수 있었음.
그러다보니 제정시기 고작 50년간 무려 36개의 내각이 들어섬. 1년 3개월에 한 번 꼴로 황제가 자기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내각을 꾸리기 위해 조정권을 행사했다는 의미임. 이는 곧 의회정치가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말하는거고.
역설적으로 이게 또 장점이 있었는데, 다른 남미 국가에서는 정권을 누가 잡느냐를 놓고 엄청난 갈등이 있었지만, 브라질은 어차피 여당이 얼마 못 가서 짤리고 야당이 등용될테니까 정권교체를 위해 무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
그 후 1880년엔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해방노예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졌음. 근데 여기서 더 아이러니한 점은 보통 참정권 대상을 늘리면 투표권자가 늘어나지만, 당시 개정된 선거법에선 문맹자의 투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권자가 1872년 선거에선 인구의 10.8%였는데, 반대로 1886년 선거에서는 0.8%로 급감함.
이러한 요소들이 결국 다른 남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후진적인 체제로 보였고, 황제는 말이 좋아 성군이지 사실은 의회와 민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전제군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 나옴.
두 번째로는 “공화주의 운동의 시작”이였음
일단 이 책에서는 그동안 통념처럼 여겨졌던 “노예제의 폐지가 제정의 폐지를 불러왔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있음. 그게 논란거리긴 했다만, 군주제의 종말을 가져올 수준은 절대 아니였다고 단언함. 실제로 노예쩨 폐지가 논란이 됐을 때는 1886년의 노예제 폐지가 아닌, 1871년의 ‘태내자유법’ 발의에서 시작되었음. 그리고 이 법은 자유당이 아니라 보수당 내각에서 통과된 법이였기 때문에 황제가 주도해서 통과시켰다는 합리적 가설이 수립되기도 함. 무엇보다 노예제가 폐지되는 1886년에는 리우의 농장주들만 노예제를 찬성했고, 이들은 그 시점에선 정치적 영향력을 잃은 상태였음. 고로 노예제가 제정 폐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힘들다는 결론으로 이어짐.
그리고 1870년대 전후로 리우와 상파울루에서 공화주의 운동이 시작됐는데, 리우에서는 인권 등의 요소를 중시했다면, 상파울루는 그냥 연방제 자체에 초점을 맞춤. 이는 정부와 의회에 상파울루 출신 인사가 적었다는 것에 대한 소외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함.
그 무렵 군부에서도 공화주의가 퍼져나감. 사관학교에서는 본 목적대로면 군사기술을 가르쳐야 하지만, 실제로는 수학 철학 문학 등 온갖 학문을 다 가르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은 곧 군주제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갔음. 이 과정에서 군부에서도 공화주의가 형성됨. 정부는 군부에게 탈주노예를 잡아오는 일을 시켰고, 군인의 정치적 발언마저 제한하려 했기 때문에 군부에서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체도 결성하게 됨. 그 과정에서 상파울루와 리우의 공화주의자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군주제의 마지막 해였던 1889년, 황제가 자유주의 내각을 결성했고, 그 내각에서 하필이면 군부에서 싫어하는 인사를 히우그란지두술 주의 총독으로 앉힘.
이 결과 군인들은 일단 내각은 뒤집고 보자고 결심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며칠도 안 지나 황실이 망명한 것으로 제정이 끝.
과정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존나 머리아프기도 하고, 온갖 이권싸움이 이어진 끝에 결국 황제가 쫓겨나는 결말이 됐지만, 확실했던 건 당시 브라질 사회가 가졌던 여러 모순점은, 언제든 군주제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음을 보여줌.
결과적으로야 브라질 사회가 존나 혼란스러워졌으니 제정이 옳고, 황제가 성군인데 백성들이 이를 몰라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음. 하지만 당시 아메리카 유일의 군주국이였던 브라질에서 황제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 황제가 가진 조정권을 비롯한 강력한 권한들이 그 당시에는 국민의 의견마저 무시하는 전제군주로 비칠 여지가 있었다는 점. 어쨌거나 주변은 전부 공화국이였으니까.
이제 공화정 파트로 넘어갈 차례네 히히
지 애비는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아들만 남아 딴살림 차린 게 이유가 뭐였더라? 포르투갈-브라질사는 잘 몰라서 - dc App
우루과이 독립전쟁에서 브라질이 개같이 털리니까 애비가 세살짜리 아들한테 제위 양도하고 자기는 본국으로 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빤스런 클라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