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소설가의 휴가(小説家の休暇)> 신초문고 19~21P

약간 덥다. 흐리다. 4~5명의 손님과 만나다.

○군은, 내가 다자이 오사무를 경멸하지 않고, 좀 더 친절한 태도로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내가 다자이 오사무 문학에 대해 품고 있는 혐오는, 일종의 맹렬한 혐오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사람의 얼굴이 싫다. 둘째로, 이 사람의 시골 출신자의 하이칼라 취미가 싫다. 셋째로, 이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역할을 연기한 것이 싫다. 여자와 동반자살하거나 하는 소설가는, 조금 더 엄숙한 풍모를 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조차, 작가에게 있어서 약점만이 최대의 강점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약점을 그대로 강점으로 가져가려는 듯한 행동은, 내게는 자기기만으로 생각된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저런 점에서 인간으로서 분수에 지나친 일이다. 하물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데에야!

다자이가 가진 성격적 결함은, 적어도 그 반쯤은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나 규칙적인 생활로 고쳐질 수 있을 터였다. 생활에서 해결해야만 할 것으로 예술을 번잡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낫고 싶어하지 않는 병자 따위에게 병자로서의 자격은 없다.

내게는 문학도 실생활도, 가치의 차원이 다르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문학에서도 강한 문체는 약한 문체보다 아름답다. 도대체 동물의 세계에서, 약한 사자가 강한 사자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일 따위가 있을 수 있을까. 강함은 약함보다 좋고, 공고한 의지는 우유부단함보다 좋고, 독립성은 누군가에게 기댐보다 좋으며, 정복자는 어릿광대보다 좋다.

다자이의 문학에 접할 때마다, 그 불구자같은 약해빠진 문체에 접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강대한 세속적 덕목에 대해 금새 수난의 표정을 띄워 보이는 이 남자의 교활함이다.

이 남자에게는, 세속적인 것은 예술가를 상처입히기는커녕 예술가에게 아무것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피부에 상처를 주고, 호소해오는 인간과 같은 면이 있었다.

피해망상이라는 것은, 적의 강대함에 대한 상상력을 강하게 하기는커녕 도리어 약화시키는 것이다. 상상력을 고무하기 위해서는 똑바로 봐야만 한다. 그의 피해망상은 눈앞의 바위를 화물로 보이게 했다. 그러니까 그것에 머리를 부딪히면 (그것이) 사라져서 없어진다고 생각하여 머리를 부딪혀, 도리어 자신의 머리를 깨뜨려 버렸다.

돈 키호테는 작중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가 아니었다. 어째서 일본의 어떤 종류의 소설가는, 작중 인물이 되고자하는 기묘한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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