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와 다자이의 동질성과 대칭성에 관해서 근시일 내에
정말 진지하게 다뤄보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저번에 쓴 댓글을 저장해놨었다.
(당시에 불안이 꽤 심해서 원글 작성자에게 실례되는 언행과, 장문의 댓글충으로서도 영 만족스럽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씨바(미안합니다.) 아뿔싸.
아까 미시마가 다자이를 까는 글(작성자에게는 진정한 인간적 호의만을 품고 있음을 밝힌다.)을 보고 미시마와 다자이의 신체조건(미시마는 163cm, 다자이는 175cm)을 찾아내고, 그 후 여성 관계를 비교하려고 구글링을 하는 순간
.
나랑 너무나 유사한 논조의 허지웅의 글을 봐버린 것이다. 존나 분했다. 이 씨발.
그리고 내가 깔끔히 포기한 지점은 나는 저렇게 보기 좋게 쓸 의지도 평론적인 열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 글을 쓸거야' 라는 정신 승리를 해보며,
이 분한 마음을 대충 두 글을 아예 한꺼번에 올리는 식으로 풀기로 결정했다.
내용에 있어 몇 가지 공유점이 있을 뿐, 성의와 노력, 목적의 차원에서 나와 허지웅 님의 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다자이와 미시마를 사랑하는 독갤러들에게 그 어떤 공격의 의도도 없음을 또한 알린다.
어쩌면 다자이와 미시마의 유사 대칭성을 다들 당연히 눈치 채고 있는데, 나만 눈치 없이 이런 글을 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독갤에 머물면서 이것을 지적하는 글을 보지 못했기에 얼굴에 철면피를 두르고서 등록 버튼을 누른다.
1.
미시마의 다자이에 대한 감정은 그냥 자기혐오에 불과하다.
서로 똑같은 패배자면서 거울마냥 오른손 왼손 방향만 바뀌어서 자신의 모습이 비치니까 미시마는 그게 싫고 싫었던 것이다.
미시마와 다자이의 최후 또한 보이는 겉모습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결국 서로는 유사하다.
2.
이 모든 대칭성은 다자이는 자기혐오에 기반한 자기연민이고, 미시마는 자기연민에 기반한 자기 혐오라는 동일한 구성물의 상반되는 감수성-(타고난 테마)에서 기인한다.
(음. 금각사를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지만 금각사에는 이상하리만치 죄의식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너무 언급이 없어서 차라리 회피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음. 이 회피되어지는 죄의식이 타인에 대한 어떤 기이한 공격성으로 표출이 되는데 그 지점에서 얼마 못 가 하차함)
(인상 비평에 불과하지만, 인간실격에서의 자기 연민적인 타락은 속죄에 대한 갈망과 근원적인 죄의식에서 비롯됐던 거 같음)
3.
패배자라는 필생의 테마를 공유하는 입장에서
자기가 벗어나려고 그렇게 발버둥치는 패배자 모양새에서 더 깊숙히 들어가서 앉아있는 다자이 감수성이 미시마는 견딜 수가 없었으리라.
자신이 극도로 회피하고자 하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니까
(추가 뇌피셜로, 결국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는 걸 보면 미시마는 패배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 치고 패배자의 감수성을 지닌 다자이를 혐오했지만,. 단 한 순간도 패배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왠지 생각이 듬)
4.
'미시마 유키오 '부도덕교육강좌'를 인용한 작성자의 본문' 인용
"다자이 오사무라는 소설가인데 그는 약하다는것을 최대의 재산으로 여기고 심약한 젊은이들의 동정과 공감을 얻어내어 끝내는 '강한쪽이 나쁘다' 는 잘못된 열등감까지 심어주는 수많은 악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약하다는것>: 미시마의 트라우마인 동시에 다자이와 공유함.
<강한쪽이 나쁘다: 미시마의 다자이 비판 발언>: 강한 쪽이 좋은거다 라는 미시마의 '체념'적 가치관에 반대되는 사고방식.
둘 다 체념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그렇게 결국 무너졌다.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보면 미시마가 패전 후 일본에서 인기가 많고, 서로의 독자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게 이해가 감.
5.
미시마가 '약한 것'을 부정하고, 저주하고, 혐오하는 모습들은 허세에 가깝다. 부자연스럽고 과잉되어 있다.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우울증이 악화되면 조울증으로 심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파괴된 자아상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가진 자아상을 회복하기 위해
조증 때는 굉장히 과잉되고 공격적이고 활동적인 양상을 보인다.
울증 때는 그 반대로, 축 쳐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어렸을 때 찾아본 정보라 출처도 없고 부정확할 것이다. 뉘앙스만 읽어주시기를.
이 조울증의 두 양상이 다자이와 미시마가 보여주는 대칭성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6.
자신이 약하다는 자각 혹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약함에 매몰(다자이)되는 인간과, 자신의 약함을 필사적으로 부정(미시마)하려고 하는 인간이다.
약함을 부정하는 자아는 다자이류 인간이나, 미시마류 인간이나 마찬가지지만,
해결점이 서로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에서 나온 것이다.
아마 '약함'이라는 언어적 테마를 서로 공유하더라도 타고난 성질이나 유년기 시절의 경험 등
내면적 언어의 의미를 구축하는 시작점부터가 아마 대척되는 지점에서 형성되지 않았을까 예상하는데, 나는 거기까지 찾아볼 만한 동기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마무리한다.
7.
유키오는 모여든 자위관들과 언론인들을 상대로 30분간 연설을 하겠다고 나서서 발코니로 나가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가 궐기할 것을 주장하는 일장 연설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위대 간부들과 조사들은 "자위대하고 상관도 없는 일개 작가가 나대느냐"라고 불만을 터트리거나 일부는 "왜 점심 때 쳐들어와가지고 밥도 못 먹게 난리냐", "비겁하게 총감님을 인질로 잡느냐"라는 등 미시마의 연설에 온갖 비난과 야유를 터트렸다. 유키오의 연설 내용 자체에 동감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서[1] 일부에선 "머리 좀 식히쇼!"라고 한다든지 바보라고 디스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더군다나 헬리콥터 소리까지 겹쳐서 30분을 연설하겠다던 유키오는 결국 7분 만에 연설을 접었다
ㆍ
패배자에서 벗어나려고 평생을 개지랄하면서 몸부림쳤는데, 결국 그 모든 시도는 실패하고, 패배자들에게조차 배척받는, 패배자들의 패배자로써 생을 마감한 미시마 유키오. 존나게 문학적이고 존나 좋다
지금부터는 허지웅의 글이다.
네가 싫은 건, 네가 나라서야
다자이 오사무는 자기 안으로 후퇴하고 침식되다 죽음을 선택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대의에 매료되어 뜬구름 잡는 뜨거움을 주장하다가 허황된 죽음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를 서로 완전히 상반된 두개의 이미지로 비교한다. 그러나 나는 저 둘이 서로 완전한 닮은꼴이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 사람은 자기 존재가 버거워 그것을 감싸 안으며 안으로 끝없이 파고들어갔다. 다른 하나 역시 자신을 버거워했으나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천황과 일본의 무장을 핑계로 '극기'와 '남자다움' 따위에 한없이 매료되었다.
By
허지웅
작가
2016년 12월 15일 12시 42분 KST | Updated 12월 16, 2017
[허지웅의 설거1지 ]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의 삶과 죽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쓰고 다자이 오사무는 죽었다. 애인과의 동반자살이었다. 시신은 그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에 발견되었다. 평생에 걸쳐 네 번의 자살기도를 했다. 다섯 번째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세 번은 애인과 동반한 자살기도였다. 두 번째에는 애인만 죽고 다자이는 살아남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언젠가 여자친구에게 그에 대해 심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죽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간, 심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은 그녀가 언제나 끼고 있었던 '인간실격'에 질투를 느껴 실제보다 조금 더 부풀려 심한 말을 한 것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언급하게 될 때면 늘 그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평가하는 건 거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내막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죽은 사람뿐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자살한 것이다. 그런 결함들은 냉수 목욕이나 기계 체조와 같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만으로 충분히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미시마 유키오는 훗날 자살했다. 할복자살이었다. 우익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방패회라는 무장투쟁조직을 결성했다. 천황의 완전무결한 숭고함을 물질문명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장투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방패회 조직원들과 함께 '우수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자위대 동부 총감과 면담하던 중 일본도를 꺼내들어 위협하며 인질극을 벌였다. 그리고 총감의 방 발코니에서 천황을 지키기 위해 자위대가 당장 분연히 일어나 쿠데타를 실행해야 한다는 연설을 했다. 연설은 주변 소음 때문에 거의 들리지도 않았고 자위대원들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이 자리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계획한 대로 방패회 멤버와 함께 할복자살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할복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명민하기 이를 데 없고 천재성으로는 따를 자가 없었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괴상한 자살은 세계적인 가십이 되었다. 그는 소설 '우국'에서 천황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할복을 아름답기 짝이 없게 묘사한 바 있었고 자신의 할복 또한 그럴 것이라 예상했으나 현실의 그것은 소란스럽고 끔찍한 난장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기 안으로 후퇴하고 침식되다 죽음을 선택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대의에 매료되어 뜬구름 잡는 뜨거움을 주장하다가 허황된 죽음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를 서로 완전히 상반된 두개의 이미지로 비교한다. 그러나 나는 저 둘이 서로 완전한 닮은꼴이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 사람은 자기 존재가 버거워 그것을 감싸 안으며 안으로 끝없이 파고들어갔다. 다른 하나 역시 자신을 버거워했으나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천황과 일본의 무장을 핑계로 '극기'와 '남자다움' 따위에 한없이 매료되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저 위의 말 이외에도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나는 우선 이 인간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인간의 촌스러운 하이칼라 취미도 싫다. 마지막으로 이 인간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 또한 싫다."
생긴 것도 싫고 취미도 싫고 하고 다니는 것도 싫다니 누군가가 싫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이보다 더 노골적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 자체가 머리를 짜내 싫어하는 이유를 늘어놓아 봤자 결국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무튼 당대에 인터넷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태도가 결국 자기혐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 두 소설가는 나약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꼴이었다. 우리 모두가 나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나약한 부분을 동반자처럼 짊어지고 그것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인정하지 않고 고약한 위악을 내뿜는 사람도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후자였다. 그는 그걸 용납하기 어려웠다.
일찍이 미시마 유키오는 감기를 결핵으로 속여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초기작 '가면의 고백'은 잠재적인 동성애자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다. 실제 그가 자기부정형의 게이였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진다.(그의 애인이라고 주장하는 후쿠시마 지로 또한 소설을 통해 고백한 바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병역을 부정하게 면제받았던 일과 성적 정체성, 그리고 나약한 신체에 대해 매우 창피하게 생각했다. 피트니스 운동과 우익 활동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맥락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운동으로 다져진 몸으로 일본도를 들고 우익 머리띠를 두른 채 찍은 화보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조금 슬퍼진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거의 벌거벗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거기에 실제 그 자신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자이에게서 지우고 싶은 본래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미시마는 몸서리를 쳤다.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나를 발견했을 때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듯이, 그림자는 그것을 부정할수록 더욱더 커진다. 미시마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육체적인 단련을 통해 극기에 탐닉했다. 또한 천황을 향한 무사도에 투신하는 자신이야말로 진짜 자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극단으로 달음박질하다가 끝내 붕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는 거의 동일한 인격체가 서로 완전히 양극단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도달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끝은 똑같은 자살이었다. 이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찌됐든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다자이이기도, 또한 미시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본래의 타고난 부분에 순응해 살아가고, 가끔씩은 그것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놀라운 성취를 거두기도 한다. 한편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본성이나 실수 앞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현실을 뒤틀어 재구성해버리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왜곡과 거짓, 고통과 외면의 기억 또한 잘 정돈된 예술의 토대 위에 쌓아올리는 데 성공한다.
내 안에 다자이와 미시마의 비율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본 일이 있다. 아무래도 미시마 쪽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저 두 가지 사이에서 근사한 비율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그게 세월에서 얻어지는 한줌의 지혜와는 별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나와 다투고, 또다시 친구가 되기를 반복한다. 지치는 일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될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 거리 위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슬퍼 보인다. 예민함은 더 많은 것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만 꼭 그만큼 공연한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는 다자이와는 더욱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내 안의 어딘가에 다자이와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분발해서 그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미시마 유키오의 고백이다. 나는 이 고백이 굉장하다고 생각해왔다. 니체는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어둠 안에 머물며 심연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던 사람은 마침내 심연의 눈 안에 비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미시마 유키오는 어느 순간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 나도 그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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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동족혐오에 가까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미시마도 누구보다 컴플렉스가 많았던 인물이고, 그걸 보디빌딩이라던가 천황 숭배라거나 하는 것으로 자아를 과대하게 불려 극복하려 들었지만 결국 채워지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어 - dc App
본문에도 썼듯이 조울증의 조증기 환자들이 주로 보이는 양상이기도 함. - dc App
거의 일치하는 스탠스로 썼는데, 이것은 역시 나만 눈치가 없었던 게 아닐까 강하게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 dc App
"나는 다자이와는 더욱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내 안의 어딘가에 다자이와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분발해서 그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못 봤긴 한데 그걸 미시마가 부정했다고 볼 수 있나? 어디 인터뷰에서도 인간은 너무 약하기에 자신보다 큰 것인 대의라는 것이 필요하고, 자유민주주의는 이 대의가 존재할 수 없기에 비판한다, 뭐 이렇게 대놓고 자기 이념은 인간이 약하다는 인식에서 옴을 말하던데. 이래서는 수동적 허무주의와 능동적 허무주의 - dc App
가 어차피 다 같은 허무주의니 그게 그거라는 식의 논리가 되지 않을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