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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눈 뜨고 일어나면 세상이 변하는 시대에 한결같은 사람은 게으르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진보는 변화이며, 변화는 최선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으로 비추어진다. 그에 반해, 보수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인 전통, 수구, 고집불통 등은 한눈에 봐도 썩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서슬 퍼런 악의 철옹성'에 대항했던 익명의 1,2,3은 마치 영웅 같았다. 실제로 그 시절 그들은 멋있었다. 하지만 어느새부터 진보는 멋지지 않다.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채 맞이한 설날은 진풍경을 연출했다. 평소 정치 성향이 좌우로 갈리던 청년층과 장년층이 처음으로, 어쩌면 다시는 없을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들을 돌아서게 한 진보의 진짜 얼굴은 무엇이며 보수의 진정한 가치와 오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유일한 휴전국가인 만큼 우리나라의 좌우 문제는 안보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사유재산, 공동체, 양심, 교육을 비롯해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각기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 책은 보수주의의 입장을 표방하는 만큼 일면도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점을 양해 바라며 보수주의자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떤지 몇 줄 적어보고자 한다. 진보주의는 사적 재산을 공유해야 할 소유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보수주의는 입장은 다르다. 성실하게 일한 만큼 부를 축척하는 것은 경쟁을 촉진시키고 사회를 윤택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적인 부는 개인의 자유를 영속할 힘이 되어주는 가치를 지닌다. 개인은 양심에 따라 자유의지에 몸을 맡길 자유가 있고 사유재산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보수주의는 사유재산이 철폐되면 인간의 욕심은 권력으로 향할 것이라고 경계한다. 그리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부가 정부에게 양도될 때 개인은 주체성을 잃고 부를 가진 대상에 의존하게 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양분된 사회에서 피지배층은 사회의 부속물로 전락하며 개성과 다양성은 통제에 걸림돌이 되는데 진보주의는 이를 교육으로 억제하고자 한다. 현재 여당이 교과 과정에 편성한 성 평등 교육, 민주주의 교육('자유'라는 단어가 빠진)의 배후에는 모종의 목적을 품었을 공산이 크다. 이를 방지하고자 보수주의는 종교, 가족, 민간단체 등이 가진 공동체 역할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단일한 조직은 다양성을 해치고 특정 이념 및 사상이라는 획일화된 교육 방식을 세뇌시킬 여지가 크다. 한번 자유를 잃어버린 사회가 다시 자유를 찾는 것은 그 반대보다 더욱 고될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 평등, 질서는 자연상태로 존재했던 개념이 아닌 처절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산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배운 책이다. 특히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대두되는 페미니즘 운동과 그로 인한 전통적 가족주의의 해체 그리고 비혼주의 열풍은 오로지 경제 문제라고 치부되기에는 괴랄할 정도로 거세다. 앞서 말했듯이 진보주의가 평등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보수주의는 자유의 가치에 우위에 둔다. 타고난 재능과 성별로 인한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기회는 평등하게 제공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는 것이 보수주의 정신이다. 만인의 평등은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만인의 평등은 개인성의 상실이며 그 뒤에는 대중 또는 군중이라는 명칭밖에 남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사유재산의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 묻는 것은 지나친 판단이며 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복지의 범위와 정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더 이상 공명정대한 부의 축적은 자본주의의 낙원 만큼 멀어졌으리라. 그렇다고 그 대안이 진보주의가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한 발자국 물러나겠다. 이 책의 저자 러셀 커크는 보수주의를 '이념의 부정'이라고 말한다. '-주의'로 점철된 사회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현실에 불만족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는 수 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던 전통과 가치를 인정하고 그 기틀을 유지한 채 변화를 모색하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유토피아에 다다를 수 없으며 그 유토피아가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다. 약간의 비약을 덧대어 말하면 아무런 변화도 취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최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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