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희곡 역사상 가장 걸작 중 하나고, 오늘날 읽어도 개쩌는 비극이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을 낳은 비극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도 이 '오이디푸스 '왕''란 번역은 조금 미묘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왕'이 희랍어에서 다 같은 왕이 아니기에 그럼
오이디푸스 왕이 아닌 제목으로 흔히 알려진 것은 '오이디푸스 렉스'인데, '렉스'는 라틴어로 왕을 의미해서 딱히 차이는 없다.
문제는, 소포클레스가 쓴 원본은 '오이디푸스 튀라누스'란 점에서 언제나 마음에 거슬렀다는 점이다.
잼민이들의 영원한 우상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어원이기도 한 '튀라누스'는 흔히 폭군, 혹은 참주로 번역된다.
그리스어에서 정당한 왕을 표현하려면 바실레우스 등 다른 단어가 충분히 있는 상황에서 소포클레스는 굳이 '튀라누스'를 택한다.
고대 그리스 역사를 조금 파보면 알겠지만, 이 '참주'는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으레 쓰이는 의미는, 적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통치하는 왕을 의미하고, 조금 더 넓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폭군도 포함된다.
이런 생각은 당연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했다. 그런 의미로 흥미로운 글이 있다.
소포클레스의 제목을 의도하듯,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줄곧 오이디푸스를 '튀라누스', 혹은 참주라고 표현한다.
이는 단순히 폭군이라는 뜻은 아니다.
적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통치하는 왕이라는 뜻을 포함하듯, 본래 오이디푸스는 '튀라누스,' 참주가 맞다. 왜냐고?
사람들이 알기론, 그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나서 테베에서 왕으로 추대되었듯,
본래 왕이 되어야할 혈통도 아닌, 그저 테베에 도움이 되었기에 적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오른 참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혈통 등으로 올바르게 오른 왕, 바실레우스로 오이디푸스를 표현하는 때는 언제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의 아들인 왕자이자 어머니와 결혼했음이 밝혀졌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적법한 테베의 왕자이자 왕으로 밝혀지고, 파멸한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가 '참주-튀라누스'가 아닌, 적법한 혈통으로의 왕 바실레우스였음에서 오며 비극은 극대화된다.
불명예스러운 튀라누스에서 정당한 바실레우스로 밝혀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는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두 눈으로 빛을 볼 수 없으며 가장 끔찍한 죄를 저지른 죄인이 된다.
이러한 미묘한 단어의 차이에서 오는 복선, 혹은 내용의 의미심장한 강조는 번역의 불가능성을 논하기 좋은 예시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들도 즐비하고, 오이디푸스 왕 또한 그런 작품이니, 함께 즐기는 것은 어떨까?
오이디푸스 왕 예이츠 번안본은 좀 낯설었음
오 대박이다
오호
WA!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개추
씨팔 티라노가 좇으로 보여???
오우...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