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그러한 당시의 내게도 한 가지뿐이지만, 한국에 관한 선명한 기억이 있다.


1979년 10월 27일, 토요일 저녁. 자택에서 느긋하게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석간이 배달되어왔다. 1면에 큰 박정희의 사진과 그 죽음을 알리는 큰 표제가 나란히 있었다. 더욱이, 양친에게 "'유고'가 뭐야?" 라고 불어본 기억이 있기에, TV에서였는지 모르겠으나, 한국 신문을 봤을 것이다. '유고'란, 암살 사건의 직후, 그 죽음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을 꺼린 당시의 한국 정부가 사용한 '서거'의 은폐어였던 것이다.


어쨌든 거대한 박정희의 사진이 뭔가 기분나빠서, 한국은 큰일이 많은 나라로구나 하는 것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생각해보면, 13살이었던 그 1979년은, 좀 과장스레 말하면 앞으로의 경력을 결정지을 큰 사건이 있었던 해이다. 이 해에는 우선, 원단에 미중 양국의 국교 수립이 있었고, 1월 중순에는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붕괴하여, 세계는 제 2차 석유 파동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에게 무엇보다 충격을 주었던 것은 2월에 시작된 중월분쟁, 중국에 의한 베트남 침공이었다. 그때까지 중소대립이나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등, 사회주의권 내부의 대립은 알고 있었지만, 수년전까지 미국에 대항해 함께 싸워왔을 터인 중월 양국이, 대규모의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동서 양진영의 대립으로 되어 있다. - 단순한 도식으로 이해하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생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신문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도착한 신문 속에서, 국제관계 기사를 '스크랩'하여, 전용 노트에 붙여두어, 그 전개를 알 수 있도록 정리하여 둔 것이다. 12월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그 결과 그때까지 호의적으로 '아카하타(일본 공산당 기관지)'를 읽고 있던 나의 사회주의에 대한 의식은, 알기 쉽게 일변했다.


이와 같은 세계가 크게 움직이고 있던 시기에, 한국에서도 큰 움직임이 존재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가 암살당한 이후, 전두환 등에 의한 권력탈취의 '숙군 쿠데타(12.12.사태)'로부터 '서울의 봄'이라 불린 민주화에의 움직임. 더욱이 이듬해 1980년 5월, 반정부 민중봉기와 무력 진압에 의한 다수의 사망자를 낸 광주사건에 이르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움직임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민주화에의 움직임은, 일본 미디어가 크게 보도하고 있던 것도 있어서, 13세의 나도 알고는 있었다. 그렇다 해도 서울의 봄이 그대로 성공하여 한국이 민주화되리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66년에 태어난 내게 있어서의 한국이란, 태어날 때부터 군사정권하에 있는 나라로, 김대중 납치사건(1973년 도쿄에서 한국중앙정보부에 납치되어 서울에 연행되었다.)나 문세광 사건(1974년에 재일한국인 문세광이 박정희의 처를 사살한 사건)으로 대표되는 사건이 빈발하는, 어두운 이미지의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더해, 남베트남이 붕괴하고, 대만이 국제사회로부터 버려지고 있었던 1970년대 말, 같은 동아시아의 분단국가였던 한국의 갈 길은 풍전등화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봄이라는 이름은, 1968년의 '프라하의 봄'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운동도 결국은 실패로 끝났던 것을, 머리로부터 중학생이 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광주사건이 보도되었던 때에도 '아아, 역시'라는 생각이 강했다. 시대는 앞서 말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한, 서방 여러 나라에 의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라디오에서는 서방진영을 맹렬히 비판하는 모스크바 방송의 프로파간다를 내보내고 있었다. 기대하고 있었던 모스크바 올림픽은 결국 '절반'의 불완전한 대회로 끝나, 나는 급속히 사회주의에의 관심을 잃고 있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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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저자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처럼 여겨지던 한국이 가까운데다 언어구조도 비슷해서 한국어도 배우기 쉬울 것이고, 아직 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이 없는 미답지라 자기가 먼저 연구하면 자리 차지하기 쉽겠다는 아주 단순한 의도였음.


그나저나 1960~1980년대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란 어차피 저 정도였겠구나 싶다는 인식이 서문을 읽으니 확실히 느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