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최후는 때론 기묘해서 사실 그 최후 자체만으로도 회자되는 경우가 꽤나 잦다.


인터넷 유머 글로 떠돌기도 하는, 그리스 비극 3대장의 첫번째 아이스퀼로스만 하더라도, 대머리인데 독수리가 반짝이는 대머리를 돌로 착각해서 그 위로 거북이를 떨어뜨렸다가 맞아죽었다는 야사가 떠돌기도 했고.


물론 어디까지나 야사이긴 하다.


하지만 작가들은 여러 이유로 죽는다. 천수를 누리기도 하지만, 사실 러시아에선 기묘한 죽음들이 많다. 


푸슈킨이나 레르몬토프처럼 결투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죽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기묘한 러시아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유례 없는 방식으로 비극적 삶을 맞이한 이는 역시나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일 것이다.



그게 누군데 씹덕아? 라고 외칠 수도 있겠으나 사실 러시아 문학사, 그것도 러시아 희곡 역사에선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이 안경쟁이가 바로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다. 딱 봐도 깐깐한 관료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실제로 관료였다. 러시아에서 유능한 외교관이라서 페르시아 외교관으로 줄곧 활동했다. 이 인간은 푸슈킨과 동시대 사람이었고, 실제로 푸슈킨과도 친했다.


데카브리스트 등의 혁명가들과도 엮였는데 운 좋게 무죄로 방면되는 등 적절한 운까지 따랐다.


작곡도 하긴 했지만, 오늘날 러시아 문학사에서 이름을 남긴 요인은 역시나 연극 때문이다.


그가 남긴 '지혜의 슬픔'은 오늘날까지도 러시아 극장가에서 줄곧 상영되는, 한 마디로 러시아 연극의 고전으로 길이 남겨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그리보예도프 운하라 불리는 도시 상당부분을 관통하는 운하가 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을 따서 불린다. 그 만큼 러시아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사실 체호프 등장 이전에 폰비진 같은 선조들이 존재했고, 그리보예도프가 있었으며 그 다음으론 러시아 셰익스피어로 추앙받는 오스트롭스키가 나타나면서 체호프 같은 이들도 뛸 수 있게 러시아 연극계가 발전한다.


물론 당시 러시아 문학들이 그렇듯, 검열된 채 사후 출간되었다가 수십 년이 흐른 후에야 완전판이 출판된다.


문제가 있다면, 그리보예도프의 대표작이자 거의 유일한 걸작이 바로 이 풍자극이기도 한 '지혜의 슬픔'이다. 그렇다면 원작품 원툴 아닌가?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이 사후 출간이란 점이 중요하다.


요절했다.


34살에 요절했다. 그래서 이 대표작 외의 남긴 것도 거의 없다. 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러시아 연극의 고전으로 남았다.



사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대문호들은 제법 흔하다. 푸슈킨처럼 결투로 뜬금없이 죽는 것만 아니더라도 병이나 자살로 요절하는 경우는 흔한데 그리보예도프는 아마 문학 역사상 가장 유례 없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앞서 말했듯 이 인간의 본업은 외교관이다. 페르시아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가 살던 당시 러시아는 다른 열강들처럼 제국주의 열풍으로 땅을 넓히기 위해 충돌이 잦았고, 페르시아의 이슬람인들은 러시아를 증오하였다.


그 결과, 폭동이 일어나서 대사관이 습격당했고, 그리보예도프를 비롯한 러시아 대사관 인원들 대부분이 폭도들에게 살해당한다.


그리보예도프의 경우도 참수 당하고 시체가 저잣거리에 굴러다니던 것을, 젊은 시절 결투를 한 흔적이 몸에 남아있어서 그 흔적으로 가까스로 사후 시신을 수습한다.


이 습겨 자체가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영국이 비밀리에 공작을 했다는 설도 있으나 사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극작가가 될 이의 끔찍한 최후엔 아무래도 좋은 사실일 것이다.


최후 이후도 비극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시신이 수습되어 카프카스 산맥 방면으로 마차에 실린 채 가던 도중, 때마침 공교롭게도 이 지방을 여행 온 푸슈킨이 이 마차를 발견하곤, 무슨 마차냐고 물었다.


살해된 러시아 대사의 시신이라고 옮기는 이들은 말했고, 러시아 대사의 시신을 옮기는 중이란 답변을 듣는다.


야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절묘한 만남이었지만 아마 실제로 일어났을 것이다.


오늘날엔 이 자리에 그 끔찍한 만남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있고, 그리보예도프의 시신은 근처에 묻혔다.




우리에게 안타까운 점은, 이 '지혜의 슬픔' 한국어역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영역 등을 읽으면 되나 여간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요즘 러시아 형식주의자 유리 티냐노프의 '바지르-무크타르의 죽음' 영역을 읽는 중인데 이 소설이 바로 그리보예도프의 죽음을 다룬 형식주의 소설이라서 그냥 썼다.



폰비진 대표작들도 번역한 걸 보면 역시 지만지 밖에 '지혜의 슬픔'을 내놓을 출판사가 없을 듯하다.


얼른 러시아 대표 희곡 번역을 한국어로 읽을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