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들 책 고르는 기준 들이 있겠지만,

한 주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그 주제에 관련된 여러 관점들을 한꺼번에 습득하는게 좋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다 하면,

희랍비극들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것들 위주로 시작하고

거기서 좀 더 고대 그리스에 관심이 생기면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시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런 걸 세트로 다 보면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주제가 진화생물학인데,

다위부터 시작해서 한국에서 과대평가 받고 있는 도킨스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굴드도 좋다

진화발생생물학 쪽으로 파다가, 굴드 같이 특정 학자 위주로 번역된 걸 막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대신 좀 폭 넓은 시야를 가지려면 좀 안 맞더라도 억지로 한 두번씩 도킨스도 읽으면서 반박 논리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여러 출처를 인용하는 책들의 사고 경로를 따라가보는 것도 좋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after virtue 같은 경우는 제인에어, 니체, 희랍비극, 희랍윤리학, 디드로, 이런 것들이 망라 돼 있는데

관심 있는 주제를 어차피 매킨타이어 선생이 한번 해설을 했으니까 그 해설의 본 내용을 살펴본다는 기분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책을 읽는다' 라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간접 경험이지만, 인간은 언어로 밖에 사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높은 수준에서 사고한 사람들, 오래도록 그 사고의 방식들이 유효한 사람들이 말하고 쓴 건,

바꿔 말하면 내가 그 틀을 내면화 하면 그만큼 높은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거나 오래도록 유효한 언어들. 기획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도 되지


그냥 정보만 획득하는 걸로도 의미가 있지만, 정보 그 자체는 누구나 찾아낼 수 있는 거라 별로 의미가 없는데

그 정보들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 다른 사람을 설득할지,

그 정보들을 내 체계 안에 담아서 어떤 종류의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적 도구로 활용할 지 등에 다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에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세상을 더 폭넓게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예컨대 진화생물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면, 내 척추뼈가 사실은 가재 외피에 있는 외벽이 변한 거라는 걸,

무슨 곤충들과 새우가 멀지 않은 친적이란 걸, 내 눈을 만든 유전자나 파리 눈 만드는 유전자랑 근본적인 기전이 같다는 걸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농담 같은 말이지만 이런 생각들이 막 점프를 해서 장자가 말하는 상대적 관점을 취하게 하거나, 다른 한편으로 생태학적 겸손함 이런 것들이랑도 연결이 될 수 있어

이런 러셀 아저씨랑 약간 비슷한 듯 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