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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제외하면 노인의 것은 하나같이 노쇠해 있었다.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 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


바다는 생명의 산실이고 생동감 넘치는 대자연이다. 자연 속에서는 삶이 곧 투쟁과도 같다. 한 노인은 그 바다에 조각배 한 척을 끌고 가 처절하고도 고귀한 투쟁을 벌인다. 주인공 노인 산티아고는 자연에 가까운 인물이고 자연의 방식을 몸에 익힌 사람이다. <노인과 바다>의 초장에 언급되듯이 그의 눈에는 바다가 담기어 있다. 그는 나침반 없이도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고, 구름만 보고도 날씨를 알아맞히며 깊은 바다 밑 원하는 곳에 정확히 낚싯줄을 드리울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 타고난 싸움꾼이기도 하다. 낚시를 할 때의 산티아고는 사자를 닮은 맹수이고 포식자이며, 어쩌면 그가 꿈속에서 보는 해안가의 사자들은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진면모일 수도 있다.


아마 나라면 그걸 참아 내지 못할 거야. 싸움닭처럼 한쪽 눈이나 심지어 양쪽 눈이 다 빠지면서까지 계속 싸우지는 못할 거야. 이런 대단한 새나 짐승과 비교해 보면 인간이란 그리 대단한 게 못 돼.


어쩌면 산티아고는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일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마초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두 번의 세계대전에 앞장서 참여하려 하는 등 투쟁 상황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투쟁은 인간으로의 허물이 없는, 생명이 벌이는 투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산티아고의 투쟁은 사흘 밤낮이 지나도록 오랜 시간 계속된다. 그의 목적은 물고기를 죽이는 것이지만 그는 물고기를 증오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부로서 그래야 하기 때문에 투쟁하고 죽이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그는 적수인 물고기를 자신의 친구로 여기며 유대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산티아고의 투쟁은 처절하지만 고귀하다. 소년 마놀린이 고기를 잘 잡는 어부는 많이 있고, 또 아주 뛰어난 어부도 더러 있죠. 하지만 할아버지에 비길 만한 사람은 없어요.” 라며 말하듯 그는 어부로서, 더욱이 인간으로서 훌륭하다.


하지만 이토록 훌륭한 어부인 산티아고조차 자신이 처절히 파멸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뼈다귀 뿐이다. 그는 연신 되뇌인다. “아무것도 없어. 다만 너는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팔십 사 일 동안 단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했던 산티아고는 그동안의 불운을 뛰어넘는 결실을 깊이 바랐다. 그 욕심은 그가 유일하게 자연의 법칙을 인간으로서 거스른 부분일 것이다. 욕심대로 그는 커다란 청새치를 낚아 올렸지만 자연은 그 살코기를 도로 앗아가 버렸다.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인간은 끝내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 노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외침 소리는 다른 어떤 말로도 옮겨 놓을 수 없었다. 손바닥을 뚫고 널빤지에 못이 박히는 것을 느낄 때 무의식적으로 지르는 그런 소리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그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산티아고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겪는 일련의 고난들은 마치 예수가 겪은 고난들처럼 그려진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자세처럼 양팔을 펴고 상흔을 드러내며 잠을 잔다. 산티아고는 헤밍웨이가 보는 새로운 시대의 예수이며, 파멸에서 부활한 불굴의 인간상이다. 그는 아무런 살코기도 남기지 못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처절한 투쟁의 고결함을 보였다. 비록 그들이 청새치를 상어로 착각했다 해도, 그 뼈다귀가 곧 해류에 휩쓸려 떠내려갈지라도. 그리고 그는 또다시 바다로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