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속에서 의미는 발견될 수 있다. 다만 그 의미는 저자가 작품에 부여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텍스트 속에서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찾아낸 것이다.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미결정적이어서, 독자가 능동적으로 의미를 길러낸다. 독자가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생산하는 작업은 다원적이며 끝없이 가능하다. 그리스 비극을 보자. 그리스 비극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 단어들로 짜여지기에, 캐릭터들은 서로를 각자 다르게(unilaterally) 이해한다. 그러나 각 단어를 이중성 속에서 이해해내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독자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에서 끌어 온 다중적 글쓰기들 혹은 인용들로 구성되는데, 독자는 이것들은 (어떤 손실없이) 통합해 낸다. 따라서 텍스트를 통일적으로 만드는 것, 즉 글쓰기의 완전한 존재를 밝히는 것은 ‘저자라는 기원’이 아니라 텍스트의 ‘목적지인 독자’이다.
내가싸우듯이(rhythmachine)2022-02-11 19:07
답글
뉴 크리티시즘이라 하나?
ㅁㅁ(222.106)2022-02-11 19:08
답글
맞네 롤랑 바르트
ㅁㅁ(222.106)2022-02-11 19:10
답글
아마도 롤랑바르트
내가싸우듯이(rhythmachine)2022-02-11 19:11
답글
이 댓글은 내 글의 반박이 아니라 감싸는 것 같은데?
익명(211.36)2022-02-11 19:14
답글
너의 비유대로 따지자면 사람의 외모는 보는 사람에 달렸으니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없다가 되는데
ㅁㅁ(222.106)2022-02-11 19:15
답글
보는 사람이 심장을 볼지 뼈를 볼지를 결정ㅓㅅ
ㅁㅁ(222.106)2022-02-11 19:16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보는 이가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해석하는걸 애초에 막을 방법이 없잖음. 사진 쪽에서 온거지만 푼크툼인가 뭐시기인가 그런 개념도 있고
익명(211.59)2022-02-11 19:09
창작가의 의도가 뭐였건 독자들은 읽으면서 스스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재미가 있고 작가는 그런 독자들 보는 묘미가 있고
작가 입장에서 저렇게 미화해서 어른들까지 읽어주면 개꿀인듯 ㅋㅋ
익명(211.201)2022-02-11 19:13
문학에서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의도대로만 움직이면 그게 바로 프로파간다임. 작가는 등장인물을 쫓아가는거지 소꿉장난하듯 역할극 하는게 아니라구~ 독자는 의도대로만 움직이는 등장인물에서 자연스럽게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낄수 있음
익명(211.200)2022-02-11 19:16
독자 수 만큼 해석이 있는게 맞는데 어디 시험같은데서 저자의 의도는? 하고 묻는거 병신같음
SanEscobar(first2048)2022-02-11 19:18
답글
저자의 의도를 묻는 시험이 있음? 골때리네 ㅋㅋ
익명(1.227)2022-02-11 19:19
답글
ㄹㅇ 급식때 국어 시험지가 죄다 저자의 심정, 의도 같은 거 쓰라하지 않나ㅋㅋㅋ
익명(211.201)2022-02-11 19:22
그냥 자기 소신껏 의도주의적 해석을 하면 될뿐인데, 반의도주의자를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익명(1.227)2022-02-11 19:19
그래, 다들 좋은 말이다.
익명(211.36)2022-02-11 19:21
마지막 페이지를 탈고한 순간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거임. 난 갠적으로 작가가 자기 작품에 왈가왈부 해설하는거 별로 안 좋아함
작가는 거짓말을 한다
작품 자체가 허구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것이 아닌가? 어떻게 그를 믿어
텍스트 속에서 의미는 발견될 수 있다. 다만 그 의미는 저자가 작품에 부여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텍스트 속에서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찾아낸 것이다.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미결정적이어서, 독자가 능동적으로 의미를 길러낸다. 독자가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생산하는 작업은 다원적이며 끝없이 가능하다. 그리스 비극을 보자. 그리스 비극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 단어들로 짜여지기에, 캐릭터들은 서로를 각자 다르게(unilaterally) 이해한다. 그러나 각 단어를 이중성 속에서 이해해내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독자다. 텍스트는 수많은 문화에서 끌어 온 다중적 글쓰기들 혹은 인용들로 구성되는데, 독자는 이것들은 (어떤 손실없이) 통합해 낸다. 따라서 텍스트를 통일적으로 만드는 것, 즉 글쓰기의 완전한 존재를 밝히는 것은 ‘저자라는 기원’이 아니라 텍스트의 ‘목적지인 독자’이다.
뉴 크리티시즘이라 하나?
맞네 롤랑 바르트
아마도 롤랑바르트
이 댓글은 내 글의 반박이 아니라 감싸는 것 같은데?
너의 비유대로 따지자면 사람의 외모는 보는 사람에 달렸으니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없다가 되는데
보는 사람이 심장을 볼지 뼈를 볼지를 결정ㅓㅅ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보는 이가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해석하는걸 애초에 막을 방법이 없잖음. 사진 쪽에서 온거지만 푼크툼인가 뭐시기인가 그런 개념도 있고
창작가의 의도가 뭐였건 독자들은 읽으면서 스스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재미가 있고 작가는 그런 독자들 보는 묘미가 있고 작가 입장에서 저렇게 미화해서 어른들까지 읽어주면 개꿀인듯 ㅋㅋ
문학에서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의도대로만 움직이면 그게 바로 프로파간다임. 작가는 등장인물을 쫓아가는거지 소꿉장난하듯 역할극 하는게 아니라구~ 독자는 의도대로만 움직이는 등장인물에서 자연스럽게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낄수 있음
독자 수 만큼 해석이 있는게 맞는데 어디 시험같은데서 저자의 의도는? 하고 묻는거 병신같음
저자의 의도를 묻는 시험이 있음? 골때리네 ㅋㅋ
ㄹㅇ 급식때 국어 시험지가 죄다 저자의 심정, 의도 같은 거 쓰라하지 않나ㅋㅋㅋ
그냥 자기 소신껏 의도주의적 해석을 하면 될뿐인데, 반의도주의자를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래, 다들 좋은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탈고한 순간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거임. 난 갠적으로 작가가 자기 작품에 왈가왈부 해설하는거 별로 안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