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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럽다"라는 말이 어떻게 우리에게 익숙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는 책이다. 모두 알다시피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는 과거와는 너무나 심하게 단절되어 있어서, 사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사회상만 하더라도 지금의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못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도 그렇지만, <전후 유럽>을 읽자니 그게 딱히 한국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사실상 이 유럽스러움이 생겨나게 된 과정은 어떤 의미로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의 현재와 미래의 편린을 미리 내다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유럽 시민들은 두 번에 연이은 세계 대전 후로 모든 가능성을 잃어버렸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열정 끝에 다다를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라면 어떤 사상도, 어떤 성장도 사실 큰 의미는 없을 테다. 게다가 전후의 극심한 생활고까지 더해졌으니, 다른 복잡한 문제를 전부 치워놓고 어떻게든 먹고 사는 데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이 "모두"라는 말이 상정하는 바가 꽤나 크다. 왜냐면 기존의 근대 국가들은 솔직히 "모두" 따위엔 딱히 큰 신경을 안 썼으니까.
영국의 빈민 수용소 등의 노골적인 착취 및 배제 정책까지 가지 않더라도, 전국민에게 베푸는 포괄적인 복지라는 것은 그 전까지만 해도 딱히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는 국가로 존재하고, 시민은 시민으로 존재할 뿐, 딱히 국가가 그 이상 뭘 해주겠는가? 그만큼 국가에 속한다는 게 당연했고, 국가를 어느 정도 사랑한다는 것도 당연했으니까. 허나 전후 유럽은 그 사랑을 잃었고, 다시 사람들이 국가라는 기획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선, 결국 시민들에게 국가가 왜 필요해야만 하는가를 납득시켜야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끈적거리고 달콤한 돈이 나온다. 미국은 소련이라는 거대한 대항 세력 앞에서 유럽을 어떻게든 되살리고 부흥시키거나 최소한 결집시켜야 했고, 미국적인 삶을 단 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던 유럽 시민들은 최소한 이 국가를 위한 아교로라도 미국의 꿀을 덕지덕지 발라야 했다. 마셜 플랜, 베를린 봉쇄 등의 사건들과 함께 사람들은 빠르게 전쟁 이후의 삶과 세계의 구도에 대해 익숙해졌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꿀 아래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전쟁의 피가 모두에게 잊힌 채 조용히 메말라갔다.
허나 유럽은 정말로 미국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주성의 표출과 반미는 사실상 동의어가 되어갔다. 흥미롭게도 "서"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은 미국 자본주의를 유럽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았고, 소련 공산주의가 최소한 그 대항마 정도의 위치에는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미국의 식민지 운영 경력이 있다곤 하지만 당시 루즈벨트 등이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복구 시도를 막아세웠던 걸 감안하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떠넘기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마침내 각국이 자립할 수 있을 만한 국력을 회복했을 때쯤, 유럽 사람들은 이미 냉전으로부터 자기들이 한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쯤 집어삼켜진 유럽의 나머지 반절에 속한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유럽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는 그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었던 듯싶다. 비록 수많은 문학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대조하고, 나폴레옹이 유럽 연합의 꿈을 꾸는 등 그 개념의 근본이 얕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거부감이 가득한 개념이었다. (흥미롭게도, 나치 치하의 유럽은 유럽 연합에 준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이 시절의 국가 간의 빠른 소통 및 무역이 이후 유럽 연합의 가치를 생각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뒤에도 쭉, 연합이 생기고 난 뒤에도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도 했다. 유럽 연합은 정작 유럽 시민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어느새 사람들의 머리 위에 턱, 하고 걸터앉아 있었다.
경제 위기의 물결로부터 몸을 묶어둘 말뚝과 유럽으로부터 쫓겨난 국가들로부터 자기들을 따로 묶을 끈의 필요성. 이 앞에서 프랑스는 독일을 유럽 전체를 관리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의 엉거주춤한 동참과 더불어 기존까지 부분적 무역 면세를 위한 조약 등으로만 연결되었던 서유럽 국가들이 확실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묶인 후에도 제각기 다른 국가들이었지만, 하나만은 동일했다. 이 연합 국가들의 삶은 미국적인 삶보다는 더 낫고 또 다른 삶이어야 할 것이다.
이 배타성은 소련의 붕괴 이후로 훨씬 두드러졌는데, 이 연합 속에서 어느 정도 정의된 국가의 공통점들이 이후에는 유럽에 편입될 국가들을 평가하고 배제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단순히 재정적인 문제만이라고 보기에는 독일보다 프랑스의 반대가 훨씬 더 심했던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유럽 연합은 단지 미국스러움과는 다른 유럽스러움 이상으로, 유럽이라 함은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규범을 제시하는 역할이 되어 있었다. (그 규범에는 병적일 정도의 나약함 역시 포함되어 있기는 했다.)
P. S.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과는 별개로 흥미로웠던 점들이 여럿 있었지만, 한국의 과거나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서 흥미로웠던 점들이기에 어딘가에 기록해두기엔 너무나 민감하다. 개인적으로는 국가 및 민족의 정체성으로 가르치는 과거사나 천 년 이상의 과거부터 현재로부터 그리 가깝지도 않은 시대까지를 두루뭉술하게 다루는 세계사보다 세계 근현대사가 개인에게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로 비판적인 의미에서.
P. S. S. 이후 개정판에서 추가된 내용에서 다시 또 그 희생자에 대한 역사라는 키워드를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뜨거운 키워드인 걸까?
양질의 장문 서평인데 묻힐 뻔했누 잘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