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걸작 희곡 '마라/사드', 사드 후작이 샤량통 정신병자들을 데리고 장폴 마라의 암살에 대한 연극을 공연한다는 설정의 마라/사드 재간 기원.


페터 바이스의 신들린 걸작이자 잔혹극과 서사극의 완벽한 조합 그 자체이며 피터 브룩에게도 큰 영향 끼친 갓작 번역 좀 일반 출판사 재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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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사드 - 페터 바이스 中)


마라:

당신의 책들을 읽어봤소, 사드,

그대의 불멸의 작품들에서

삶의 모든 근간이 죽음이라고 주장하더군.


사드:


맞소, 마라,

하지만 인간은 죽음에게 그릇된 중요함을 부여했지.

어떤 동물이나 식물, 혹은 인간이 죽든

자연의 더미에 그저 더해져선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는 비료더미가 될 뿐이야.

죽음은 그저 과정의 일부야.

모든 죽음은, 가장 잔혹한 죽음조차

그저 자연의 크나큰 무관심함 속에 익사할 뿐이지.

자연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볼 뿐이야

설령 우리가 온 인류를 절멸시킨다한들.


나는 자연을 증오해.

저 감정 없는 관객을, 저 부술 수 없는 빙하 같은 표정을,

모든 걸 짊어지고선

우리를 더욱 더 위대하고 더 위대한 행위를 하라며 몰아넣지.

언제나 우리는 우리보다 약한 자들을 때려눕히지 않았던가?

언제나 그들의 목구멍을 우리는 찢지 않았던가,

끝없는 악행과 욕망에 뒤섞여선?

우리의 실험실에서 최종 해결책을 궁리하며

실험하지 않았던가?


다미앵의 처형에 대해 당신도 떠올려보자고.

다미앵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해봐,

그가 당한 고문에 비하면 기요틴이

얼마나 신사적이었는지 생각해보자고.

관중이 떠드는 와중에 그 고문은 4시간 넘게 진행되었지,

윗층에선 카사노바가 지켜보면서

함께 지켜보는 숙녀분들의 치마 밑을 살피던 때였지.


그의 가슴, 팔, 넓적다리 그리고 종아리가 찢기곤

녹은 납이 그 구멍 사이로 흘러내렸지.


(중략)


그건

축제였어,

오늘날 축제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런 축제.

우리의 심문조차 오늘날엔

그러한 즐거움을 주지 못하지.

우리가 이제 막 시작했다고 하여도

우리의 혁명 후 살육엔 열정이 없어.

오늘날 그건 공식적인 행위일 뿐이지.

우리는 감정 없이 죽음을 선고하지.

그리고 거기엔 어떠한 개인적으로 다루어져야하는 죽음도 없어.

그저 익명의 값싼 죽음뿐이지,

우리가 수학적인 근간 아래 

조금씩 분배하는 국가에 배분하는 그런 것뿐,

때가 오면

우리의 모든 삶은 끝장날 거야.


마라:

후작 시민 동지,

그대는 지난 9월 우리와 함께 싸우며

우리가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향해 음모를 꾸민 귀족들을 끄집어내었지만

여전히 그대는 대영주나리처럼 굴고 있군.

당신이 말하는 자연의 무심함은 

그저 당신의 연민의 부족함을 의미해.


사드:


연민이라,

이제는 마라, 당신이야말로 귀족들처럼 떠드는군,

연민은 유산 계급의 재산에 불과해,

나보다 아래에 있으면서 불쌍한 자들이

구걸할 때면

그는 경멸하며 소리치지,

그가 가진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는 감동받은 척 행동하지만

그가 거지들에게 주는 것이라곤 발로 걷어차는 것 밖에 없어.


제발, 마라,

부디 작은 감정에 대해서 말하지 말자고.

당신의 감정은 작은 게 아니야,

당신처럼, 나도 마찬가지고.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지,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행동만이 의미있을 뿐이야.


마라:

설령 내가 극단적이라도, 나는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극단적이지 않아.

자연의 침묵에 맞서서, 나는 행동해.

거대한 무심함에 대항해서 나는 의미를 발명해,'

나는 무심하게 관찰하지 않아, 나는 참견해,

그러곤 이것과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

그러며 그걸 바꾸고 고치고자 나는 일해.

중요한 것은 자신의 머리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을 뒤집어놓아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 전체를 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