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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정신없이 퇴고도 제대로 안 하고 쓰는 거 양해 바람)


북유럽의 환상을 깨부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린 것도 이 책의 긍정적 역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아직도 북유럽 복지국가에 환상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한시라도 빨리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지지하고 싶어도 뭘 알고 지지했으면 바란다.

역으로 말하자면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체제 중심의 독재 운영 방식이 먹힐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유럽에서 무슬림에 의한 성범죄가 심각하나 여성 단체는 이럴 때는 침묵한다. 백인 남성 등 주류 세력이 저지르면 가차 없이 공격하면서 말이다. 역겨운 이중성이다. 이래도 스윗 양남이란 소리가 나오나? 여성 인권 문제가 은폐되는 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스웨덴의 다문화 정책은 인도주의적인 방식의 인종 분리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남아공에서 시행했던 아파르트헤이트의 새로운 버전이다. 사실을 말하면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고 사회에서 매장당한다. 그런데도 서구권을 본받자는 한국의 PC주의자들이 한심하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문제의 언급조차 꺼린다. 소수자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금기시한다.

얼마 전, 전체주의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비판한 소설을 썼는데 현실은 어째 소설보다 더한 것 같다. 소설에서나 볼 법한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이렇게 보니 서구권보다 PC주의 물이 그나마 덜한 한국이 오히려 선진국으로 보인다. 위기의 서구권이 한국을 보고 배워야 할 지경이다. PC주의가 자유와 질서, 전통을 모조리 파괴한다.

저자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스웨덴이야말로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모를 아름다운 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역시 픽션은 논픽션을 이길 수 없다. 헛웃음만 나온다.

저자가 북유럽 같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좌파 체제를 비판하는데 난 개인적으로 자유가 줄어도 좋으니 큰 정부를 지향하는 입장이다. PC주의에는 반대하나 정부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레온 트로츠키가 국가가 유일한 고용주인 나라에서 국가에 맞서는 자는 천천히 굶어 죽는다. 복종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을 남겼다는데 솔직히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설레는 문장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들이 지배하는 체제라면 얼마든지 복종이 가능하다.

좌우도 문화나 개인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절대적인 해답은 없다. 누군가에겐 유토피아가 누군가에겐 디스토피아가 된다. 나는 안정된 큰 정부를 소망한다.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유를 희생해도 좋으니 체제에 의존하며 삶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

올더스 헉슬리의 정말로 효율적인 전체주의 국가는 무소불위의 통치력을 휘두르는 정치 권력층과 대규모 관료들이 국민을 완벽하게 조종해 예속 상태를 즐기게 만듦으로써 복종을 강요할 필요도 없는 국가다.”라는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가장 우려하면서 동시에 방향만 잘 잡으면 그 어떤 체제보다 탄탄하고 완벽한 양날의 칼이라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좌파의 관계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저자의 설명이 씁쓸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이토록 위험한 요소로 취급받다니.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치사상에만 얽매이는 것이 안타깝다고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을 초월한 개념이어야 한다.

혹시나 했는데 결말부에서 저자가 한국의 중국 문제도 거론한다. 서구의 이슬람 다문화 문제를 보며 중국이 계속 떠올랐는데 역시나 저자도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확실한 건, 표현의 자유는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혐오 발언이라며 금지하는 건 탄압이다. 빅브라더는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닌 현실에 버젓이 존재한다.

하버드를 예시로 들며 똑똑함과 지혜로움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지적한다. 많은 이들이 이를 구분할 줄 모른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을 읽어보니 매카시즘의 열풍이 괜히 분 건 아닌 것 같다. 반공주의를 무조건 옹호하는 건 아니나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다만 저자의 지나친 미국 찬양은 부담스럽다. 저자도 노골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하긴 그런 인물이니 이런 책을 썼겠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해봤거나 지금도 공산주의가 현재진행형인 나라들은 PC주의 등 신좌파의 물결에서 벗어나 대응을 잘하는 중이라고 한다. 마치 마약을 파는 범죄 조직이 내부에서 약쟁이를 조직원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알고 있으니까 더 주의하는 것 같다.

결국, 자신들 고유의 것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다문화란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싸움의 해답은 개개인이 모인 집단에 달려 있을 듯하다.

창작에 꽤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누구든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 다만 저자와 사상, 성향이 맞지 않는다면 읽기 거북할 책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자의 의도와 달리 북유럽과 사회주의가 나와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나는 미국식 자유주의가 불편하다. 안정된 통제 안에서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지상 낙원일 수 있다. 미국처럼 모든 걸 자신이 책임지고 자유에는 그 대가가 뒤따르는 사회가 더 불편하다.

이슬람교 사회도 그렇다. 누군가에겐 이슬람식 보수적인 종교 지배 체제가 체질에 맞을 수 있다. 미국 흑인들의 폭력적인 하위문화가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냥 본인에게 맞는 세상에서 사는 게 가장 좋을 듯싶다. 이거야말로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저자가 그런 의미에서 다양성과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본다. 한계가 드러나는 책이었다.




간만에 긴 감상문 써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