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독서를 하는 이들이 독서하는 목적을 보면, 의견을 주장하려고 할 때 근거를 삼기 위해 다독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오로지 책 내용만을 인용하면 분쟁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본다. 권위없는 내 의견이 아니라 권위가진 학자 누군가의 합의된 내용을 제시하면서 반박할 누군가를 입다물게 하고 도처 어딘가에서 일어날 분쟁으로 만들어지는 쓸모없는 에너지소비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과연 그러면 나 자신의 사고를 확장할 계기는 지닐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책은 책 그대로 읽으며 정보를 획득할 수도 있지만, 자기자신은 주체적으로 의식하며 사회문제를 지적하거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며 살 수도 있고, 여러 생각을 지켜나가며 산다. 그러면 책은 지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의식을 보충해주기 위해 다가올 수도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크게 '뭉탱이'로 이뤄진 것 같다. '춘잣!'하면 누구나 같이 '두두두두두' 하며 따라가야 하고, 그와 반대되면 법회가 열리면서 정말 죽어버리는 수가 있다.
조금만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면 조선족이니 페미니스트니 무지성으로 불려야 하는 이들을 볼 때,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분간할 능력 자체가 있긴 한걸까? 생각이 든다. 무지성으로 논리없이 커진 '뭉탱이' 담론을 각자가 의식하며 '유링게슝'할 때 그것은 해체되고 집단이 아니라 개인만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 때 부터 진지한 논의가 시작된다. 뭉탱이를 유링게슝 할 수 있어야 세세한것을 보기 귀찮아하는 게으름부터 탈출할 수 있고 정말로 바꿔야하는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깐 텍스트는 자기 시선과 의식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읽자. 언제나 자기만의 특별한 의견과 소신은 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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