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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이 쓴 소설인데 역시나 인종차별과 피해의식을 소재로 써먹는다. 정서적으로 좀 불안정한 고민이 담긴 작품이였다. 그들 피해의식이 너무 지나치다고, 극복하지 않고 태만하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미국 흑인이나 원주민들이 빈민들 천지에 지금 동아시아 교포보다 못사는 걸 그들 무능력탓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그들이 성장한다면 보복성 공격이 있을 수 밖에 고의적 견제나 차별에 방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커뮤니티 봐도 아무 접점도 없는 흑인들 깔보고 업신여기면서 욕하면서 재미들린 병신들 많긴하다. 무슨 심리일까 화이트트래쉬, 일1베충과 같이 아웃사이더는 싫어서 똥구멍 빨면서 소속감은 유지하면서 사회밑바닥에 힘겹게 생존하면서 불만과 낮아진 자존감을 자기 소속 외에 대상을 하대할 때 만큼은 자기가 뭐라도 된 느낌을 받는 거 같다. 있잖아 한국에서도 흔하게 성별 갈등이나 지역 갈등 같은거 심지어는 스포츠팬끼리 싸운다거나 문이과 갈등도 있다. 고2때 체크 하나만 한거 가지고 상대진영 깔 때는 지가 아인슈타인이라도 빙의된것처럼 군다. 욕할 때만큼은 자기가 용꼬리라도 된것 처럼 군다.


문학적으로 그리 훌륭하다고 보긴 힘든 작품이였다. 82년생 김지영 처럼 너무 자의식과잉에 매몰되었고, 고뇌는 중학생 처럼 미성숙한 느낌이였다. 그래도 미국 흑인 문학가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미국 흑인 문학가가 왜이렇게 적은가? 고전문학에서 적은 만큼. 서구고전음악에서도 적다. 흑인공동체 내에서 고상한 백인문화를 하는 것을 백인 흉내 낸다고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진짜 증오하는 대상이라면 그 대상을 연상시키는 사물은 다 싫은 법이다. 미국흑인 스테레오 타입처럼 범죄, 예체능 이런 분야에만 빠지게 만든다. 작품에서 중학생 같은 불안정함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같다. 아직 뿌리가 안정되게 깊이 박히지 않은 류와 같다.


피해의식으로 인한 흑인들의 증오범죄 행위도 묘사가 나오긴하던데 쉬쉬 넘어가서 그렇지 다수파의 소수파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따돌림 따위 인권유린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하지만 그것은 인륜상 범죄보단 심판의 영역에 가깝다. 매스컴도 힘있는 놈들을 함부로 비판하지 못한다. 국제사회로 치면 한중관계와 같은데,중국 매스컴은 트집거리 잡히면 한국탓하고, 한국 매스컴은 조심스레 눈치 살펴가며 반중을 한다.   상대적 소수로서 다수파의 횡포에 당하고 있다. 으름장과 거드름이 얼마나 좆같은지 당해보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당하는 게 꼬시다는 생각도 든다. 국제사회 매스컴이 아니라 국가내에 매스컴에서는 극소수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학창시절 사회성까지 다 들춰내고, 일반사회에 융화되지 못하는 성격을 강조하고 도덕적 우월감에 심취한다. 중국과 비교하면 한민족은 소수민족에 불과하다. 대가릿수가 많으면 개개인 뇌는 퇴화하고 중화사상과 같은 교만하게 중심이라고 믿는 사상이 싹트나보다. 사실상 맥락상 과정을 따지고보면 인도에 수드라계급이 탄생한 과정과 별 다를바가 없다. 근데 결과만 놓고보면 바퀴벌레 처럼 번식만 많이 했다는 이점을 살려 갑질을 한다. 난 툭 까놓고 말해서 다수파가 싫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럽다.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