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요근래 읽었던 책 중 가장 헤비했다. 책 자체가 진도가 안나가는데다. 읽으면 피로해져서, 문학책도 잘안읽어지더라. 극단적으로 사변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 언어로만 이루어진 논리가 반증하긴 어려워도, 그렇다고 명확하게 참이라고 말하기도 모호한 성질을 띠고 있다. 흐름이 몇겹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재독해도 그 흐름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그냥 황소에 질질 끌리듯 흐름에 따라가기만 했지. 한 3~4번 이 무거운 책 반복해서 읽어야 흐름이 머릿속에 정리될 거 같다. 헤겔이 그 사변적인 논리에서 사상이 출발했을 거 같진 않다. 그 사변성은 지 스스로도 현타오고, 아무도 알아먹지도 못할말 쓰는데 회의감 느꼈을 거 같다. 오히려 결론부터 도출해놓고, 거기에 뒷받침해주고 논거를 마련해주고, 깊이감을 포장해줄 사변적 논리가 뒤따라온거 같다.
거기에 잔뼈 굵은 전문가도 알아먹기도 힘들정도로 엄청 난해한데도 생전에 어떻게 대철학자로 지목되었는가? 대충 소개나 개론에 흥미를 끄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의 강력한 비판자 쇼펜하우어는 생전에 헤겔을 권력에 아첨 떠는 소인배이고, 칸트철학을 왜곡하여 장난치는 사기꾼이라고 강하게 매도했다. 1권 끝에 인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보면 조금 그런 경향이 보이긴한다. 그렇다고 안티고네나 인간의 이기심을 부정한 게 아니라 이기심이 전체세계와 조화하는 요소로 보았다. 처음 서설 볼 때 확신과 자신감에 가득찬 어조를 보고 교수라기보단 교주같은 느낌을 받았다. 얼핏 보면 참인지 확증하기 어려운 얘기는 정신병자의 망상적 헛소리라고 공격받기 좋아보임에도 그런 자신감은 어디 믿는 구석이 있고, 내 행위가 정당화 된다는 명분이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헤겔이 오랜기간 가정교사 일을 해왔다는 데, 고용인으로서 을인 입장이고, 사회규범적인 격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으며, 자기가 가르치는 학문까지도 그런 형식적 격식에 얽매이는 버릇을 들여야한다. 그렇다면 진리의 객관성은 추구 대상이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다. 예속을 자발적으로 즐긴다면 노예근성이겠지.
쇼펜하우어가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그의 사상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객관적 의지와 정반합 변증법에서 너는 나이다라는 객관적 의지의 관조와 만인은 나이며, 내가 만인인것이다라는 정과 반의 자기동일성은 형이상학적인 얘기는 서로 겉으로는 대립되는 것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고, 둘다 너무 형이상학적이다. 그리고 주인과 노예를 끄집어내면서 주인이 쇠하고, 노예가 흥한다는 이론도 니체의 이론과 흡사했다. 조화와 통일 화해를 강조하는 것도 셰익스피어 희곡의 메세지와 유사했다. 그 자기동일성 논리가 뭐였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나고 찾아보기도 힘들다. 의식의 추상성 때문에 같다고 한거 같았는데
역사철학강의를 보면 헤겔 성향이 유럽식 군주정을 옹호했다는 사실이 보인다. 도덕규범집에 불과한 유교에서 성리학으로 형이상학화 된것도 그렇고, 헤겔식 인륜이나 질서를 옹호하는 발언도 그렇고, 권력이 선재하고 다음에 형이상학적 이론이 따르더라. 형이상학적 이론은 일종의 방어구와 같아서 그게 권위를 획득한다면 반권위적 움직임은 그 권위부터 파괴시켜야할 것이다. 사변성은 참이라고 부르기도, 거짓이라고 명확하게 부르기도 애매함은 진흙탕 싸움으로 이끌고, 논리는 논리로, 언어는 언어로 공격해야하는데, 형이상학은 일종의 언어감옥과 같아서 그 감옥과 죽쇄를 뿌수기가 힘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