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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야의 대중문화 연구자 "제임스초이스"이다.



필자가 보기에, 니체는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정신의 소유자들 중 하나인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니체의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천재적인 철학자와 2류 예술가의 결합이다.



이 결합이 매우 흥미로운 까닭은, 대부분의 위대한 철학자들에게는 예술적 재능이 거의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오랑이 이야기했듯, <위대한 철학자>들이란 얼마나 악문으로써 악명 높은 존재들인가. 쇼펜하우어 정도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니체 속에 있는 2류 예술가의 자아는 철학자로서의 니체의 천재성을 폭발시켜줌과 동시에, 그 폭발에 한계를 규정하였던 듯하다.



니체는 여러 면에서 매우 예민한 힙스터의 취향을 보여준다.



니체 시대 사람이 스탕달과 클라이스트,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진가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우리의 통념 이상으로 대단한 안목인 것이다.



니체보다 55년 뒤에 태어난 나보코프만 해도 스탕달을 '하녀들이 읽는 소설'이라고 혹평했지 않은가?



(그런데 니체는 다소 애매한 시대에 태어난 탓에 도스토예프스키를 깊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딘가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스탕달보다도 더욱 귀중한 행운'이라고 부르며 그를 최고의 심리학자로 찬미하는데,



여기서 그가 꼽고 있는 작품은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저자가 '범죄자들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치를 인정하는데,



사실 이러한 칭찬은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소 비본질적이며 엉뚱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필자는 위에서 니체의 취향을 힙스터적이라고 정의했는데,



필자가 보기에 힙스터적인 취향이란, 매우 예민하고 민감한 동시에 피상성을 띈 취향이다.



일례로, 니체는 하이네를 찬양하며 자기 문체의 '가벼움'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데, 니체의 이러한 '가벼움'에 대한 추구는 기묘한 것이다.



어째서 그는 '가벼움'을 추구하는가? 니체가 주장하기를, 가벼운 '비행'이 긴장된 '비상'보다 낫기 때문이다.



니체는 높은 곳을 날며 땅을 내려다보는 여유로운 '비행'을 위버멘쉬다운 행위로,



근육이 날아오르기 위해 최대로 긴장하는 찰나인 '비상'을 시인다운 행위로 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러한 비유에는 니체의 정신적 한계가 드러나 있다.



'비상'의 포착이야말로 정신의 극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숭고'에 대한 니체의 관점은 매우 흥미로운 미학적 주제이다. - <카르멘>을 그토록 찬양했던 그의 야릇한 '취향'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감각적 긴장의 한계, 숭고의 한계는 어느 정도였을까?



또한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비극 정신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보여주었으나, 클라이스트만큼 비극 정신을 실존적 위기로서 체험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의 이해는 비교적 이론적인 차원에 국한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의 디오니소스의 미학사적 가치 이면에 있는, 기이한 미학적 빈약함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시인으로서의 니체는 후하게 평가해도 2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그의 이분법은 대단히 훌륭한 것인 동시에, 그의 영향을 받은 이후의 세대들을 도식성의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위에서 니체 속의 예술가를 계속 비판했긴 하지만, 니체의 천재성은 그 이후의 미학자들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기는 하다.



비록 아마추어 예술가였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고전 문화를 그것의 일부로서 살아낼 수 있었던 전설적인 시대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천재 철학자와 2류 예술가의 결합이라는 정신 구조를 염두에 둘 때 니체를 보다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