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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레르몬토프는 푸슈킨과 러시아문학 선구자격인 인물. 그리고 푸슈킨과 함께 이단아이자 난봉꾼이였다. 그 때 귀족들 사이에서 난봉이 미덕이였는지. 톨스토이 소설에서도 그런 류의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은 난봉꾼 보고 가정교육이 안됐다고 하지만 제정 러시아시절 난봉꾼은 가정교육만 받고, 일반적인 학교에서 공교육을 안받았다. 학교 기능을 사회성이라고 부르고, 집단생활에서 남을 배려하는 정신을 높이 사는데, 그런거 못받아서 그런지. 어그로 기질이 다분하다.
러시아 귀족 문학은 어그로기질에서 시작된걸지도 모른다. 러시아 프랑스 문화에 경도되어 자유주의 기풍이 유행하고, 문학 따위 예술도 받아들였다해도, 교양 이상 창작에서 그게 전통적인 귀족의 업무는 아니다. 귀족들 업은 군대나 관료사회에서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세우는 데 있지. 예술가로서 성공은 아니다. 기껏해야 동아시아 시서화 처럼 아마추어 수준이지. 귀족이 관료생활보다 그것에 우선하여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다면 의무도 제대로 이행 안하고 가산이나 탕진하는 놈팽이라고 경멸받기 십상이다. 동아시아 문인세계에선 아예 관직이랑 거리가 멀거나, 고위관직 역임하다 정적에게 모함받고 좌천이나 유배 당하거나 그런 류로 나뉘는데,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는 관료나 군대 커리어 초기 부터 젊은 혈기에 분탕 저지르다 정부에 찍혀서 요주의 인물로 지목 받은 출세랑 담 쌓은 어그로 기질이 있었다. 그런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톨스토이처럼 촌에 박혀서 전문작가로 빛을 발한 작가가 있었을수도 있다.
우리시대의 영웅에서 영웅이라고 지칭하는 페초린도 딱잘라 말하여 그저 난봉꾼이다. 그 때 귀족들이 난봉꾼 기질을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고, 오늘날로 치면 사회성 떨어지고, 교만하다는 악덕이 있을지 몰라도, 오늘날도 교만함에서는 욕할처지가 안된다. 오늘날도 자본가로서 교만함이 있고, 다수파로서 교만함이 있다. 그 안하무인적 태도는 19세기 귀족의 교만함과 비교하여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다. 작품에서 교만함은 일관성이 있어서, 약한놈 쎈놈 따지지를 않는다. 결투라는 관습법이 있어서 비겁함에서 현대와 비교를 불가한다. 레르몬토프와 푸슈킨 둘다 결투로 사망했다. 농노한테나 보여줘야할 교만함은 귀족사회에서도 멈추지 않아서 겸손함이나 떨고 쭈구려 안있다가 결국 죽어버렸다. 오늘 뭐 자본가로서나 다수파로서 교만함이 어떤 위험요소를 껴안고 있는가? 법을 자기들 편으로 만들고, 아무 위험요소도 없이, 강약약강에 한결더 비겁하고 책임감이 없다.
안하무인적으로 교만한데다 비겁하면, 성찰과 반성이 결여되어서, 내로남불과 자기기만, 일관성 없는 태세전환이 이뤄진다. 난봉꾼이 겉으로 변덕스러워보여도 속으로는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사물의 본질을 보는 통찰력이 있다. 사물을 똑바로 응시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문명에 발전이 정체되고 쇠락하면 쫄보기질이 있기 때문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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