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용을 잠깐 보면
중국이 관료제와 중앙집권을 통한 강력한 단일국가 건설을
인도가 종교계급과 지역사회가 국가권력에 우위에 있음으로써 만들어진 약한고리의 국가를 만들었어.
마지막으로 국가발전을 살펴볼곳은 여기 중동+서구야.
우선 중동부터 보자면
지금의 아라비아 지도를 보면 큼직한 나라들이 있지만 사실상 여러 부족의 연합체라고 봐야 하는데 위 지도처럼 엄청나게 많은 부족이 있어.
앞에서 살펴봤 듯 춘추전국시대 또한 엄청 많은 국가정치체가 있었는데 그들은 국가로 합쳐지고 아랍은 그러지 못한 이유가 뭘까?
우선 살펴봐야 할건 초기 이슬람의 확장이야.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있던 아랍 또한 유목+부족제의 약한 국가였는데
강력한 카리스마와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쉽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슬람은 크게 확장했어. 그러나 이렇게 종교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정치체제는 불안정했는데
무함마드 사후 정통 칼리프 시대까지 이란,이집트,시리아,레바논 대부분을 손에 넣은 이 신흥종교세력은 아직 유목적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점령지는 1/n 그리고 1/5는 칼리프 몫으로 수도에 보냈어.
그러나 점령된 이란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이집트로 대표되는 전 비잔티움의 영토들은 정주민의 땅이었고 기존 아랍의 부족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방법이 필요했는데
이에 대한 해법으로 나온게 맘루크,즉 군사 노예야.
9세기경 아바스 왕조는 궁정과 도시의 화려함과 그 토대가 되는 지방의 부족사회의 간극이 넓어졌고 이러한 부족기반의 군대를 개혁하기 위해 외국의 노예를 군인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나왔어.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오기 시작한 투르크계를 개종시켜서 노예친위대로 썼는데 기록에 의하면 기존 아랍군대와 규율,전투력 모두 월등했다고 해.
그러나 아바스왕조가 찾은 해법은 너무 늦어버렸고 스페인,이집트, 아라비아 차례차례 독립을 시작해 버렸어.
제국은 무너졌지만 노예군사체제는 남아서 십자군을 막은 살라딘의 아이유브왕조, 몽골을 막은 맘루크왕조로 넘어가는데
이 맘루크 왕조는 시작부터가 캅차크계 투르크인으로 노예로 팔려다니다가 군인이 된 바이바르스에 의해 만들어져.
이 바이바르스는 1250년 십자군과 싸워 프랑스의 루이9세를 사로잡을때 부터 1277년 사망할때까지 계속 십자군,몽골과 싸우는데 이런 강화된 군사노예의 힘으로 이슬람은 살아남게 된거야.
이 맘루크왕조의 계승방법은 아주 특이해.
물론 세습으로 권력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진짜로 체르케스,중앙아시아에서 납치되어 군대로 길러진 장군이 귀족인 에미르들에 의해 술탄에 오르는 경우가 훨씬 잦았어.
이런 군사 노예제도를 극한으로 끌어 올린게
그 유명한 오스만의 예니체리야. 예니체리들은 오스만이 점령한 발칸의 이교도들을 징발해 결혼도 못하고 세습도 되지 않아.
이 제도는 맘루크와 비슷했지만 권력구조가 훨씬 불안정한 맘루크 술탄국에 비해 오스만은 술탄의 밑으론 모두가 노예인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냈어.
이러한 방식은 확장할때는 가능했지만 빈포위의 실패 이후 새로 얻은 기독교의 땅이 없어지니까 갈수록 유입은 힘들고 경제적인 문제까지 더해져서 예니체리들은 승계직이 되버렸고 결국 19세기 이후로 군사개혁을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지.
여기까지 이슬람의 군사노예제도를 살펴봤는데 이 과정은 중국의 과거제와 비교할수 있어.
중국과 이슬람 모두 가산제에 위에 국가를 두고 싶어했는데 중국은 과거제도라는 시험제도를 통해 이슬람은 군사노예라는 시스템을 통해 가족에 대한 충성이 아닌 개인의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만들어 냈어.
결국 과거제는 현대에도 한국의 수능,공시 미국의 SAT등의 시스템으로 남았지만 군사노예제도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확장과 노예의 유입이라는 시스템이 무너졌다는걸 알수 있지.
노예제도는 서구에도 분명 존재했고 동양권,인도 할것없이 모두 존재했는데 그런 계층을 사회제도 꼭대기에 올리는 방식을 채택한건 굉장히 특이한거 같아.
아쉽게도 서구 까지 쓰기는 너무 길어질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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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로 안보내주지 않나?ㅋㅋ - dc App
예멘 내전 터진 이유가 있구나 좆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