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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Q. E. D.>는 굳이 읽을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소설로 읽기에는 상당히 따분하고 너무 있는 그대로의 가십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후 역자 후기를 참고하자니 실제로 <Q. E. D.>는 스타인의 첫 글이자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습작에 가까운 레즈비언 삼각관계 연애 소설이었다. <세 명의 삶>의 <멜란차> 파트의 프로토 타입이라 볼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래도 <세 명의 삶>은, 그리고 특히 <멜란차>는 좋았다. <Q. E. D.>에서 <멜란차>로 글이 완성된 게 참 신기했는데, 이 중간 과정인 <Q. E. D.>를 읽어보자니 어떻게 실제 경험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립되고, 새로운 주형에서 굳어졌는지가 대놓고 보인 탓이다. 이 <멜란차>라는 글은 앞의 <착한 애나>나 뒤의 <상냥한 레나>보다 훨씬 더 길고, 복합적이고, 그리고 흥미롭다. 스타인의 글쓰기 스타일로 늘 나오는 말인 반복적인 돌림 노래 같은 글이 어떤 느낌인지 늘 궁금했었는데 <멜란차>를 읽으며 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타인의 희곡에서도 반복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사에서의 음악적 효과에 가깝다고 봤기에 그렇게까지 큰 감흥을 느끼진 않았다. (유튜브를 통해 실제 공연 영상을 보아서 더 그렇지만, 이런 스타일은 읽는 것보다는 듣는 데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허나 <멜란차>에서는 이를 산문 전체의 구성에서 활용한다. 인물에 대한 어떠어떠한 표현, 서술 등을 있는 그대로 갖고 오면서 살며시 이 표현이 처음 나왔던 장면과 현재의 장면 사이의 차이점을 새로 얹어서 변주하고, 몇 번이고 이를 계속 반복하면서 멜란차라는 인물의 삶을 기묘하게 반복되는 어떠한 기질의 발현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반복이 글의 끝에서 도입부와 비슷한 서술을 통해 수미상관으로 끝나며 이 푸가 같은 글쓰기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기실, 내용 자체는 사실 여전히 그리 흥미 있진 않았다. <Q. E. D.>에서의 관계를 적당히 바꾸며 이성애자 사이의 연애, 흑인의 타고난 기질에 대한 이야기로 바꿔놓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내가 로맨스 소설에 그리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탓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착한 애나>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P. S. 위에서 말한 "흑인의 타고난 기질"에 대한 부분 말인데...... <멜란차>를 읽고 있으면 그 시대의 흑인 인식에 대해서 정말 당혹스러운 감이 있다. 앞의 몇 페이지만 읽더라도 느낄 수 있는 그 농후한 분위기란.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면 "백인들의 교육을 받고 자라서 백인의 생활양식에 익숙했지만, 타고난 천성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로즈는 다른 흑인들처럼 도덕관념 따위 없이, 계획 없이, 되는 대로 인생을 살았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차암 흥미롭다...
(유 퍼킹 레이시스트 콘)
흑인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