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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으로 건진 알레산드로 보파의 비스코비츠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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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민음사에서 나온 만큼, 영문판처럼 아름다운 표지는 아니었다. 이런 껍데기였으면 만 배는 재밌게 읽혔을텐데

거지같은 모던클래식 디자인이 책 맛을 망쳤다




프롤로그까지 합쳐서 스물 한 개의 챕터가 있다. 주인공인 비스코비츠는 각 챕터마다 다른 동물이 되어 살아간다. 작가가 동물유전학 연구소에서 일을 했어서 그런지 200쪽도 안되는 짧은 책에서 정말 다양한 생물 묘사가 나온다. 그렇기에 굳이 다른 교훈을 찾으려 들지 않아도 괜찮아 보인다. 보파가 그린 동물들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사람들의 모습과 동물들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연결시켜놓아 자연스럽게 사회를 떠올리게 된다.


비스코비츠는 늘 다른 동물로 살아간다. 그의 옆에는 늘 그의 형제들, 혹은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주변에서 작은 영향력들을 행사하는 반면에, 비스코비츠의 이상향이자 영원한 사랑으로 등장하는 리우바는 비스코비츠 삶의 절반을 장악한다. 비스코비츠와 리우바는 성관계를 나누는(이거 기대했는데 묘사 없더라. 좀 허무했음) 경우도 많지만, 정신적인 교감만 나눌 때도 있다. 그래서 비스코가 어떤 동물이냐에 따라, 다르게 말하면 어떤 종류의 삶에 선택되느냐에 따라 리우바를 향한 긴장 정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예로, 달팽이가 된 비스코비츠는 아름다운 한 마리의 달팽이를 보고 죽을 힘을 다해 다가간다. 상대방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안심하면서 말이다. 도착해보니 그곳에 아름답고 탄탄한 달팽이란 없었다. 대신, 차가운 수도꼭지가 있었다. 비스코는 허무해졌다. 하지만 그곳까지 달려온 자신의 몸을 보니 아주 기가막힌 암컷-혹은 수컷 달팽이가 보였다. 그는 몸을 구부려 자위를....?한다. 자신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비스코비츠 부부는 결국 유전적 결함이 있는 달팽이를 낳는다. 자신의 이상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치밀하게 이상향을 연기하게 되어 버리는 사람의 모습과 닮이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단순히 성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할수도 있을 것 같다. 자웅동체 달팽이가 된 비스코비츠는 자신을 사랑하고, 사자가 된 비스코는 가젤을 사랑하게 되고. 그런 차이들의 원인을 분석해 보는 것이 딱히 심리학적이지는 않은 것도  좋았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는 신비주의적인 우화에 가까운 것 같다. 코엘료 상위호완이라 할 자격이 나에게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묘하게 뭉뚱그려진 결말과 본질을 위한 비유들이 나에게는 엄청 싫게 다가왔다. 또, 작가는 비극적인 마무리를 지음으로서 읽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웠다.

하지만 이런 불쾌감들이 바로 작가가 전하는 메세지인 것 같다. 비스코는 마지막으로 세균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이름(VISKOVITZ) 모양으로 분열되면서 말이다. 

솔직히 이 챕터가 끝장이었다. 여태까지 흥미진진하고 담담하게 잘 달려오다가 갑자기 세균이 웬 말이냐 싶어서 욕이 안나올수가 없다.

(2000년대 소설이다. 유행을 탄 걸까?)

비스코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듣고 소설은 끝이 난다. 인간도 죽는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우습고 위대하고 꿈같은 시간들을 영원히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비극적이다. 결국 우리는 동물이니까! 


조각케이크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술술 읽힐 것 같다. 

노골적인 주제전달이 싫다면 비추다. 고전소설 많이 읽어봤다면 새로운 이야기들이 없을 것 같다. 그냥 갖가지 통찰들 긁어다 재밌게 재가공한 느낌이 들긴 든다... 정확하게 무슨 소설들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달하는 방식만 기막히게 재밌고 새롭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내용없는 지극히 표면적인 감상 읽어줘서 고맙다. (여러 의미로)인상깊었던 부분 잘라왔다. 



엄마, 누이, 할머니의 정자가 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제기랄, 제기랄!"

나는 욕설을 퍼부었다.

내 딸도 나를 임신시켰다.

난 나 자신의 시어머니였다. 제기랄, 나 자신의 시어머니라니!

하지만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야 내 몸 안에 있는 며느리를 미워하지 않을지 모르니까. 그래야 내 불행이 결국 내게 행복을 안겨 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