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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모던아카이브의 서평 및 홍보 부탁을 받고 썼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실질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결정짓고 지금까지도 그 질서가 유지된 계기는 단연 1945년 2월의 얄타 회담과 1945년 7월의 포츠담 회담이 꼽힙니다. 이 두 회담이 가지는 중요성 때문에 해외에서는 여러 연구저작들이 있고 국내 학자들 또한 학술논문의 소재로 삼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두 회담을 단독 소재로 다루기 보다는 외교사나 제2차 세계대전사라는 큰 맥락을 다루는 서적들의 일부 지면을 통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마이클 돕스의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Six Months in 1945: FDR, Stalin, Churchill, and Truman–From World War to Cold War)은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알고 싶은 독자들의 갈등을 해소해 줄 만한 책입니다.


저자인 마이클 돕스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돕스는 소련 주재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소련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이 경험을 살려 워싱턴포스트의 동구권 전문 특파원이 되었고 나중에는 동유럽 부장까지 이릅니다. 돕스는 특파원으로서 폴란드 연대노조 파업, 천안문 사태, 그리고 소련 보수파 쿠데타와 소련의 붕괴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여 역사적 현장에 있던 언론인입니다. 하필 『하우스 오브 카드』시리즈의 작가인 마이클 돕스와 이름이 철자 하나까지 다 똑같은 바람에 동일인물로 오해를 많이 사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작가에게 가야 할 메일이 자기에게 오거나 그 반대로 와서 서로에게 수신인을 착각한 메일을 보내 준다는군요;;


자신의 생애 때문에 스스로를 "냉전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는 돕스는 논픽션 시리즈인 이른바 "냉전 3부작"의 저술을 기획했습니다. 냉전의 종결인 소련 붕괴를 다루는 Down with Big Brother: The Fall of The Soviet Empire(1997), 냉전의 절정인 쿠바 미사일 사태를 다루는 One Minute to Midnight: Kennedy, Khrushchev, and Castro on the Brink of Nuclear War(2008, 국내에서는 『0시 1분 전』으로 번역출간), 그리고 냉전의 출발점인 얄타-포츠담 회담을 다루는 이 책을 2012년에 출간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냉전의 사건을 역순으로 저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얄타 회담으로 시작해 포츠담 회담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행동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흡사 정교한 세밀화를 보여주듯 생생히 전달해 줍니다. 책의 중심인물인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트루먼의 2월부터 8월에 이르는 6개월 동안의 행적과 대화들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당대 사건들과 관련이 있던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당대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돕스의 서술은 인물의 행적 뿐만 아니라 인물이 지나가거나 머물렀던 곳들의 유래와 모양, 특성 까지 빠지지 않고 서술하며 심지어 만찬에서 뭘 먹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씁니다. 돕스는 이러한 서술기법으로 독자로 하여금 1945년 2월부터 6월의 상황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해 줍니다.


돕스가 어떤 식으로 서술하는지는 백문이 불여일견, 포츠담 회담을 다룬 일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상략)


(1945년 7월 25일) 오전 10시 45분 3거두가 세실리엔호프에 도착하자 수많은 영상촬영기사와 사진기자들이 이들을 맞았다. 등나무의자 세 개가 햇빛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각각 정확히 30센티미터 간격으로 설치됐다. 회담 의장인 트루먼이 다른 두 정상과 같은 간격을 두고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크림색 대원수 재킷을 멋지게 차려입은 스탈린은 대통령 왼쪽 의자에 앉았다. 대령 복장을 한 처칠은 의자 배열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사진기자들을 보기 위해 몸을 돌린 처칠은 자기 뒤에 있던 등나무의자를 대략 30센티미터쯤 왼쪽으로 조용히 옮겼다. 두 민주국가의 정상은 누가 봐도 분명하고 상징적으로 단합된 반면, 소련 독재자는 40센티미터쯤 떨어져 외따로 앉아있었다. 트루먼은 다시 의자를 가운데로 옮기려 했다. 체중이 실린 만큼 의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처칠은 마치 선생님에게 장난을 친 학생처럼 즐거웠다. 처칠의 의자 장난은 어찌나 재빨리 이루어졌는지 트루먼 이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스탈린은 그저 앞만 보고 있었다. (503쪽)


(하략)


이렇듯 돕스의 생생한 필체는 일반적인 통사나 외교사 서적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다소 시시콜콜해보이는 사안까지 전부 서술하면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을 1945년 2월부터 8월까지 이끌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고 더 넓은 이해를 위해서는 여러 학술저작들을 보는 게 좋다고 보지만(한국어 자료의 경우는 특히 이화여대의 노경덕 교수님의 저작들을 추천해 드립니다), 돕스의 책은 흡사 잘 만든 드라마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해 주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대의 상황에 이 있다면 필히 읽어봐야 할 도서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