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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참 이상한 나라이다. 일을 하나 추진하려 하면 이권이 조금이라도 얽혀있는 모든 파벌집단과 1:1로 막후 조율을 해야하고 담합을 화합인 줄 안다. 국제 외교에 있어선 강자에겐 비굴할 정도로 엎드리고 약자에겐 거칠게 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입신양명하여 세상을 바꾸기 보단 자기 위치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걸 더 좋은 가치로 여기고 세계대전 중에는 온갖 기행을 선보였다. 추신구라에 나오는 47로닌 이야기를 보자면 유교 문치주의와 현대 법치주의에만 익숙한 한국인 눈에는 복수를 시행한 가신들과 이를 칭송한 여론의 모습이 광기로밖에 안보인다. 하지만 가장 특이한 점은 이럼에도 잘 굴러간다는 것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탐구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분야의 고전 국화와 칼을 꺼내들었다. 보통 이 책을 소개할 때 국화(평화)와 칼(전쟁)의 이중성으로 제목을 해석하지만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내용은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볼 때 다테마에, 예의와 규칙, 식민통치와 전쟁범죄 등을 보고 이중적이고 간사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관점이 감상에 개입하면서 생긴 해석이 아닌가 싶다. 정작 책 본문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고 다테마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 있을까.


우선 저자는 책 집필의 동기가 된 2차대전중 일본인의 행동 양상을 서술하고 시작한다. 반자이 어택이라 흔히 불리는 무항복주의와 학대로 비화된 포로 멸시 같이 밀덕계에서 일본군 관련해서 유명세를 떨치는 행위들 말이다. 그 후 다음 장 부터 일본의 사회 체계와 도덕률에서 중요시하는 개념들을 분석하면서 일본을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한반도와 중국에선 과거제와 유교적 입신양명이 매우 친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과거제는 고대에 잠깐 시행되었을 뿐 무사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회적 변혁기의 신분 상승을 제외하면 부모의 신분과 직업을 물려받고 이것이 변하지 않는 카스트적 신분질서가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로 인해 생긴 도뎍률이 '각자의 알맞은 위치'이다. 어릴 적부터 입신양명에 힘을 써 출세를 통해 학문을 발전시키고 백성 교화에 힘쓰기보단 물려받은 자기 위치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어!" 보단 "해적왕이 되겠어!"가 익숙한 문화란 것이다. 이런 관념은 정치적 무관심과 사회적 역할 강요(직장인은 직장인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라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회 주류에서 벗어난 (부품산업과 비주류 예술같은) 마이너 분야의 발전과 한중에 비해 교육열로 인한 사회문제가 적은 면모로 나타나기도 한다. 유행 한가지, 가치 한가지만을 추구하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과 비교해보면 재밌을 주제이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메이지 유신과 2차 세계대전 또한 각자의 알맞은 위치라는 사고방식 하에서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계층 구조가 흔들리는 혼란기에 가급적 높은 위치를 차지해 안주하자고 여겼다는 것이다. 또, 식민지와 점령국민들이 차별에 반발하자 의아해했다는 사례도 덧붙인다. 무질서와 혼란에서 구원해 2등국민이라는 지위를 줬는데 왜 반발하냐는 것이었다. 국내에는 현재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방식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자신보다 국력상 낮은 계층의 국가가 시끄럽게 굴고 반발하며 국제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일본인들의 도덕 관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은혜라는 개념을 뽑아내고 거기서 은혜와 관련있는 의무와 의리, 또 의무에서는 충과 효, 의리에서는 세상에 대한 의리(은혜갚기)와 이름에 대한 의리(명예)를 세분화 시킨다. 우선 일본인들은 은혜 갚는 것을 굉장히 중시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이 과하다 못해 은혜 갚기를 부담스러워해 은혜 입기 또한 부담스러워한다고 말이다. 의무란 태어났을 때부터 입은 은혜를 평생에 걸쳐 갚는 것이고 의리란 살면서 중간중간 입은 은혜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이다. 충은 국가와 천황의 은혜에 보답, 효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고 세상에 대한 의리는 주군, 가족, 친구, 주변인에게 입은 은혜를 갚는 행위, 이름에 대한 의리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의무에 속하는 충이랑 효는 유교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관념이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 느껴진다. 유교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일본스럽게 해석한 것 처럼 보인다. 한국인들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서로 민폐와 은혜를 주고받는 것을 친밀함의 징표로 삼고 이를 통해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은혜란 칼같이 갚지 않으면 사회에서 얼굴을 들고다니지 못할 정도로 치욕스러운 것이고 갚고 나서는 신경을 꺼도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같은 집단주의 경향을 보이는 한일간 집단 행태의 차이를 불러오지 않았나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한국은 하나의 끈끈하고 정서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되 공동체 내부의 다른 의견 표출이 힘들어지고 일본은 개개인간의 게층 구조 안에서의 은혜 갚기로 나타나 내부 구성원을 존중하는 대신 개개인간 인간관계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도 파벌이 갈리고 또 의견을 '싸우지 않고'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네마와시가 발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름에 대한 의리라는 개념은 한국보단 명예에 익숙한 서양에서 더 친숙히 바라볼 개념이지 않을까 싶다. 무사가 치욕감을 느끼면 칼을 뽑아드는것이 도덕적으로 옳다 여기는 추신구라의 이야기가 한국에선 야만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서양에선 이에 감명받은 와패니즈를 양성한 것이 이와 관련있지 않을까.


추가로 책에는 일본의 도덕 관념에 존재하는 여러 개념을 더 제시한다. 인정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치외법권이다. 공적 세계에서의 딱딱함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가 허락한 공간인 것이다. 일본의 성문화와 오타쿠 문화를 생각하면 대충 들어맞지 않을까. 보수적 성관념과 딱딱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진국이라 불릴 정도의 일탈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또 일본인들은 육체적 쾌락을 (서양 플라톤 철학마냥) 옳지 않은 것으로 여기지 않아 인정에 세계에 한해서는 추구해도 되고 또 도덕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설명 또한 있다. 절대적인 도덕률 대신에 사회에 부끄럽게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수치의 문화이고 또 절대적으로 옳은 것 보단 자기가 맡은 것과 자기가 지금 추구하는 (의무,의리,인정 등의) 도덕률에 최선을 다해 성실한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수치의 문화라는 개념은 한국에서도 일본을 분석할 때 겉으로 보이는 친절과 이면의 뒷담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도덕을 타국보다 지키려 하지 않음, 자기 집단 밖에서는 잔혹한 모습을 보였던 세계대전기를 비판하며 많이들 끌어다 쓰는 개념이다. 또 이러한 수치의 문화는 자신의 신념보단 타인의 평가를 중점으로 두고 행동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도덕의 상대성과 성실의 영역을 보자면 일본 소년만화 감성에서 많이 나올 법 해 개인적으론 상당히 재미있었다. 소위 '이 녀석도 사실 좋은 녀석이었어'류 모호한 선악관념과 잇쇼켄메이란 단어로 대표되는 성실과 극기에 가까운 자기수양 (책 본문에서도 따로 장을 할애해 설명한다) 같은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일본의 성문화와 육아문화를 통해 이러한 관념들이 어떻게 교육받고 전수되는지랑 패전 후의 당대 일본 현황과 일본의 발전 방향을 조언하며 글을 마친다. 일본의 성문화 하면 작금의 한국의 넷상 남녀갈등과 엮어서 성차별적 문화니 뭐니 하는 것이 나올 것 같지만 이 장 역시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담담히 서술되어있다. 개인적으론 옛 일본의 성과 양육문화가 꽤나 흥미로웠다. 출산도 성관계만큼 은밀히 다루고 모유수유를 여성의 성적 쾌락의 일환으로 여겨 국가에서 캠페인으로 젖 빨리 떼기를 했다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여러모로 두서없으면서도 생각난 것들을 다 적지도 못한 것만 같다. 그만큼 이 책을 읽고 생각난 것이 많기도 하다는 걸 것이다. 현대에 들어선 낡았다던가 편향된 시각이라는 식으로 비난받기도 하는 책이지만 개인적 감상으론 색안경을 끼지 않고 제대로만 읽는다면 일본을 이해하는데에 이만한 책이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물론 근대화가 진행된 당대에도, 거기서 현대 민주 국가로 70년을 더 보낸 일본이 책과 완전히 같을 리는 없지만 일본이라는 사회 기층에 있는 사고방식과 관념의 기원(마치 한국을 알려면 유교 성리학을 알아야 하듯이)을 가장 정확히 파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