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인들 대부분은 하루 전까지도 전쟁이 정말 일어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급히 대피한 한국인 취재원의 증언입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24일 오전 5시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민들은 이른 새벽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걸 목격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의 안전을 우려해서 익명을 요구한 한국인 취재원에 따르면, 키예프 시민들은 바로 전날밤까지도 다음날 아침 출근과 등교 준비를 했습니다.
2월 24일 이른 새벽 러시아군은 키예프를 겨냥해 160발 이상의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러시아가 이스칸데르 순항미사일로 발사했다는 건 사실상 키예프 주요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을 시도했다는 의미입니다. 순항미사일은 간단히 말하면 탄두가 달린 무인기입니다. 속도가 느린 대신 저고도 비행과 정밀 타격이 가능해서 침묵의 암살자라고 불리죠. 24일 아침 눈을 뜬 키예프 시민들이 목격한 건 자객 러시아가 조국 우크라이나를 암살하려는 장면이었습니다.
취재원은 말합니다. “침공 하루 전인 2월 23일에도 우크라이나는 평화로웠다. 일단 사재기가 없었다. 러시아가 설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냐는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증언입니다. 지난 2월 12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2월 16일에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때 이미 자국민 대피도 본격화했죠. 러시아군 20만 명이 진작에 우크라이나를 3면에서 포위한 상태였습니다. 전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려하고 있었죠. 취재원에 따르면, 적어도 당시 시점에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원인은 우크라이나 정치입니다. 우크라이나 정치는 21세기 내내 친서방과 친러로 갈라져서 내전에 가까운 정쟁을 벌여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국과 서방에서의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고 있는 현직 젤렌스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닙니다. 볼리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집권 한 달 만인 2019년 6월 5일 TV채널 〈1+1〉과의 인터뷰에서 “EU와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노선이며 이는 헌법에 명시돼 있다”고 선언합니다. 젤렌스키 정권 스스로 사실상 반러친서방 정부라고 선언한 셈이었죠.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사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임자인 페트로 포로센코 전 대통령이나 라이벌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처럼 노골적인 반러친서방 노선까진 아니었습니다. 정치경력이 전무한 희극 배우 출신이었으니까요. 젤렌스키 대통령이 문제의 인터뷰를 한 TV채널 〈1+1〉이 사실상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는 평가를 받는 드라마 〈인민의 종〉을 제작한 방송사입니다. 코미디언 출신인건 상관 없습니다. 정치경력이 없는 것도 상관 없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은 외교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반면에 국민이 원하는 걸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는 이상적인 신념만큼은 투철한 순수한 정치인이었죠.
어쩌면 TV모니터에서 걸어나와서 현실 정치에 투신하기로 결심했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말 인민의 종의 되겠다 결심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포위한 상태에서도 미국의 탈출 제안을 뿌리치고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 있는 행동만으로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웅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죠. “나는 평생 동안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그렇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울지 않게 만들려면 정치지도자가 때론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정치의 역설을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서유럽의 일부가 되기를 정말 간절히 원합니다. 또 다른 익명을 요구한 우크라이나 취재원은 이렇게까지 설명했습니다. “우크라이나 2030세대의 꿈은 우크라이나를 떠나 유럽에서 사는 것이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에선 절망 뿐인 청년들에겐 하나의 꿈이자 희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유럽의 일부이고 싶어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열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민의 종으로서 국민의 염원을 실현시켜주겠노라 약속했던 겁니다.
“2020년 무렵부터 우크라이나 사회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 시작했다. 일단 일상생활에서 러시아어를 배격했다. 우크라이나인들 상당수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두 나라 언어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러시아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취재원의 증언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은 다들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반면에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해야 한다는 의견은 묵살당하기 일쑤였다. 사석에서도 친러 성향 의견은 절대 밝혀선 안 됐다. 무언가 사회가 균형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유로마이단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유로마이단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2014년 친러정권이었던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했던 정치 혁명을 말합니다. 유럽광장이라는 뜻의 유로마이단이라는 이름부터가 혁명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유로마이단 혁명은 내전에 가까운 유혈 혁명이었습니다. 이때도 혁명의 발단은 친러냐 친서방이냐였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래부터 바닥을 쳤던 경제가 지하실까지 추락하자 우크라이나는 차관이 절실해졌습니다. 선택지는 2개였죠. 하나는 IMF였습니다. 하나는 러시아였습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 차관을 선택합니다. 야누코비치의 지지기반은 러시아계가 다수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였습니다. 그런데 야누코비치가 러시아 차관을 선택한 건 꼭 그것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IMF는 우크라이나에 신자유주의를 요구했습니다. IMF가 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어떤 것인지 우리도 압니다. 반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별다른 요구를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전략적 균형을 유지해주길 원했습니다. 야누코비치가 러시아 차관을 지렛대로 우크라이나 국민의 친서방반러 여론을 다독일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죠. 야누코비치는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외교적 지원을 등에 업고 국내정치에서 반대파 숙청에만 열을 올렸죠. 친서방 외교노선을 주장하는 정적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를 부패 혐의로 투옥시킵니다. 나중엔 살인 교사 혐의까지 덧씌우죠. 파렴치한 정치 보복이었습니다. 정치적 상징에 대한 정치적 보복은 반드시 정치적 분노와 정치적 분열의 정치적 원인이 됩니다.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를 투옥시킨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반러친서방을 염원하는 대중정서와 만나서 대폭발합니다.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가 상호 작용을 하면서 국가 전체를 거대한 진동 상태로 몰아넣기 시작한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경제적 속국이 되고 유럽의 일부가 되는 길이 영영 막혀버릴 거라고 우려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봉기합니다. 키예프에선 정부군과 혁명군 사이의 시가전이 벌어집니다. 탄핵 당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망칩니다. 유로마이단 혁명은 우크라이나 국민들 스스로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일부가 되는 걸 가로 막는 국내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해버린 사건입니다.
정작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건 율리아 티모센코 전 총리가 아니라 페트로 포로센코 대통령이었습니다. 유로마이단 혁명을 통해 국민이 표출한 요구는 반러와 친서방이었습니다. 반러는 야누코비치를 축출해서 러시아로 쫓아내는 것으로 어느 정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야누코비치한테 정치 보복을 당했던 율리아 티모센코는 대선에서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주장하고 나섰죠. 국내 정치에서 당한 앙갚음을 국제 정치로 하겠다는 소리였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반러를 상징하는 율리아 티모센코 대신 친서방을 상징하는 페트로 포로센코를 선택합니다. 유로마이단 혁명이 촉발한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진자 운동이 확실히 서방쪽으로 쏠리는 순간이었죠. 포로센코 전 대통령은 키예프 시가전에서 직접 총을 들고 민병대를 이끌면서 국내외 언론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그 인물입니다. 별명이 초콜렛왕입니다. 대형 과자 회사를 소유한 기업인이거든요. 정치에 입문하고 나선 외교부 장관과 경제부 장관과 중앙은행장을 두루 거쳤습니다. 처음엔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가 교차하면서 발생한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진동을 멈출 수 있는 인물 같았습니다.
포로센코는 극우민족주의자였습니다. 하필 스테판 반데라를 공공연하게 지지했죠. 스테판 반데라는 우크라이나 국내에선 독립 영웅일지 몰라도 우크라이나 바깥에선 인종 학살자로 평가 받는 인물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협력해서 우크라이나에서만 2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죠. 대신 나치 독일의 힘을 이용해서 소련을 우크라이나에서 몰아냈습니다. 포로센코는 국내 정치에선 반데라를 추앙해서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제 정치에선 러시아와 서방 양쪽 모두로부터 고립을 자초했죠. 나토 가입을 추진해서 러시아와 갈등을 빚었고 인종학살자를 영웅시해서 서방의 공분을 샀죠. 한국인 취재원이 “우크라이나가 균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느끼게 만든 사회 분위기는 포로센코 집권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전 대통령이 소총을 들고 나선 장면만 보고 용감하다고 칭찬하기엔 무언가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포로센코 대통령은 2019년 2월 급기야 EU와 나토 가입을 명문화한 개헌안까지 통과시킵니다. 국내 정치용으론 민족주의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이슈였습니다. 국제 정치용으론 외교 협상에서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워버리는 일이었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좌절된 건 러시아의 반대 탓이 크지만 포로센코 대통령의 극우민족주의 탓도 있습니다. 나토는 한 나라가 침공 당하면 다른 나라들이 자동으로 전쟁에 뛰어드는 상호방위조약입니다. 우리 민족이 우월하다고 내심 믿는 나라를 위해 함께 싸워주고 싶어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힘이 없는 나라의 민족주의가 주변국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현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은 보여줍니다. 국제 정치에서 애국주의는 한낱 정신 승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젤렌스키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택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선택은 외통수에 가까웠습니다. 젤렌스키는 유대계입니다. 대통령을 극우민족주의자에서 유대계 코미디언으로 바꿔서라도 서방으로의 전진도 러시아로의 후진도 안 되는 진퇴양난 상황을 타계해보려고 했던 겁니다. 젤렌스키의 배후에 역시 유대계인 금융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가 있다는 게 큰 문제가 안 된 이유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투표하면서 바실 페트로비치 홀로보로드코를 뽑는다고 착각했다는 겁니다. 바실 페트로비치 홀로보로드코는 젤렌스키를 국민영웅으로 만든 드라마 〈인민의 종〉의 주인공입니다. 한국인 취재원은 〈인민의 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1편만 봐도 판타지라는 걸 모를 수 없을만큼 유치했다. 그런데 주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과몰입했다.”
민주주의는 거대한 환상체일지도 모릅니다. 이상적인 정치인과 그런 정치인을 알아볼 수 있는 이상적인 유권자가 있는 민주정치는 민주주의가 발명된 아테네에서도 불가능했습니다. 민주정치의 최선은 본질적으로 최악에서 차악을 고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는 2004년 오렌지 혁명부터 거의 20년 동안 차악과 차악의 싸움이었습니다. 오렌지 혁명은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열망이 처음으로 분출된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친서방 성향의 야당 정치인 빅토르 유셴코가 처음 대통령으로 당선됐죠. 정작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등장했던 대통령들은 하나 같이 실망과 절망만 안겨주고 차례차례 몰락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선은 외교 노선과 권력 다툼이 교차편집된 진영 대결이 됐고 네거티브만 난무하는 비호감 선거가 됐죠. 끝내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는 현실보단 환상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젤렌스키 대통령이 탄생했죠.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임식날 집에서 대통령궁까지 걸어갑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민의 종〉 속 바실 대통령의 현신이었죠.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나도 우크라 대통령이 좀 더 외교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했어야한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