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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적으로 나는 마블/디씨의 그래픽 노블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는 이북으로만 몇 권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통합적인 의미로서의 작품성에 감명을 받은 작품은 없었다. 그 이유는 아래 (3)에서 서술한다.

2. 얼마 전에 나는 하우스 오브 M과 월드 워 헐크를 중고서로 구매해서 읽었고, 아주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알고 있던 히어로 장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들이었다.

3. 히어로 장르는 내가 생각하기에 흥미로운 특징 혹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1_ 몇십 년 전에 창작된 캐릭터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심지어 이 고전적 캐릭터들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창작해내는 것은 현재까지도 드문 일이 되었다.
2_ 그러므로 이 캐릭터들은 끊임없이 리젠된다. (regeneration의 약어:몬스터들이 필드에서 죽고 다시 나타나는 것을 이르는 말)
3_ 나무위키로 읽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읽어본 결과, 마블 혹은 디시의 히어로 서사는 고전적 캐릭터들의 수십년 전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캐릭터가 품고 있는 담론을 간직한 채로 장르 내부에서의 담론을 탐구했다. (예를 들어 시빌 워나 a vs x 시크릿워즈 등)

-장르 내부에서의 담론이란, 캐릭터들이 지닌 본질적 담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동안 장르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서사를 탐구하는 것이다.

4. 하우스 오브 X는 기본적으로 이 점에서 완전한 장르의 혁신이자 장르 바깥으로 벗어나는 탈출이다.

5. 나는 영화 X맨의 팬이고, 대충 나무위키에 기술된 에피소드는 메시아까지는 전부 꿰고 있었다.

6. 뮤턴트는 기본적으로 소수자를 상징하며,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의 모티브를 말콤X와 마틴 루터 킹에서 따온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일이다.
-처음부터 매그니토가 말콤 X의 상징성을 띄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7. 그러한 소수자 담론은 사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굉장히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게 내가 굳이 X맨을 종이책 형태의 그래픽 노블로 어제까지 구매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한데, 어떠한 서사가 진행되건 간에 그 담론은 이미 케케묵은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얘네들은 맨날 리젠된다.
(올드맨 로건 정도는 영화로도, 이북으로 봤는데 만화는 스토리적인 아이디어가 신선하긴 하지만 담론적으로 전혀 신선함을 주지 못했고, 영화는 그 완성도를 떠나 얘기하자면 고전적 서부 로드 무비를 X맨의 틀 안에서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8. 하우스 오브 X는 이런 소수자 담론을 철거하고, 그 토대 위에 다른 것들, 이를테면 최신의 미래 과학적 담론을 건설했다. (이미 여기서 장르적 혁신은 시작된다.)

9. 이러한 비교적 최신의 SF적 담론은 다른 매체에서 분명히 시도되어졌을 만한 형태인데, 최소한 매트릭스, 아이로봇 등의 단순한 AI 공포증을 벗어난, 최신 SF 소설을 읽지 않은 나에게는 이렇게 서사로써 다루어지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담론들이었다. (스포일러가 되니 하얗게 표시하자면: 소수자 담론에서 탈피하여, 인류의 과학적 진화와 자연적 진화의 대결과 전망, 그러한 과학적 진화의 한계와 종말은 어떤 형태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미래인들 그들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오고,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정도.)

10. 이것은 이 자체만으로도 혁신이자 탈출인데, 이 책의 스토리 작가 조나단 힉맨은 서사적으로도 담론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 아주 아름답고 효율적인 플롯을 구성했다. 아마도 이런 대형 코믹스에서 시도되어지는 것으로서는 아마 꽤 참신한 형태일 것이다.

11. 결론적으로 하우스 오브 X는 주의 깊게 받아들일 만한 높은 작품성과 현대적 수용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며, 이러한 장르적 혁신과 탈피(혹은 탈출)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 이것이 앞으로의 미디어의 주된 담론이 될 것이기 때문에-(나는 듄 영화를 대충 보았고 나무위키는 몇 번 읽었지만 듄의 담론 자체는 이미 고리타분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적어도 최신의 담론을 장르 내부에서 수용하고, 그럼으로써 장르를 장르 외부로 돌파시키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13. 하우스 오브 X는 통합적인 작품성을 따져보아도 아주 아주 아주 양질의 '도서' 라고 할 수 있다.

14. 자그마한 불만점이 있다면, 나는 이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그림 취향은 하우스 오브 M에 더 가깝다. 신화적이고 원초적인 형태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동시에 지닌.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표현되어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15. '높은 완성도'와 '장르적 혁신성', '현대적 수용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은 만나기 어렵기도 하지만, 이 놀라운 선구적 성취의 결과물은 관련 컨텐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아마도 다른 예술 매체들이 공유하고 있을 공통의 딜레마인) 이 3가지 요소에 대한 신선한 질문과 새로운 사고 방식을 제공하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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