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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의 시간동안 내 이름은 빨강 1,2권을 모두 읽었다. 도합 700페이지 정도의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어마어마한 소설이었기에 이리 빨리 읽을 수 있었던 듯 하다. 터키 설화와 역사, 이슬람 배경 지식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도록 옮겨 준 이난아 번역가님의 공로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한 방송에서 원근법으로 인해 벌어지는 살인 사건이 있다며 이 소설을 언급 해서였다. 이야기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독자의 몫이지만 소재가 독특하거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평범함을 넘어서야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자 때문에 이 책을 샀으나 등장 인물의 1인칭 시점을 통해 정보를 제한적으로 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궁금증과 흥미를 유발하는 이러한 소설의 형식은 후자도 충족한다는 걸 읽으며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정유정 작가가 이런 형식의 소설을 많이 써서 정유정 작가도 생각이 남.


단순히 돈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 이야기였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손에 잡히는 돈은 인간의 욕망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재인지라 유리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실을 비틀어서 볼 수 있으려면 전형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손에 잡히지도,보이지도 않는 인간의 믿음, 신념으로 일어난 살인은 독자를 한 번 더 생각하도록 한다. '그토록 지키고 싶은것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죽이는가?’ 살해의 이유가 미술의 원근법과 초상화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이유가 터무니 없고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대에는 인간은 저 뒤편으로 배제되고 세상 만사가 신의 존엄을 위해 행해졌다. 이슬람 세밀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술 작품은 그 시대 인간의 시선을 반영하므로 이슬람의 세밀화 역시 신의 시선을 따랐다. 위에서 아래로 화폭에 모든 인물들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던 것이 이슬람 세밀화의 특징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가까운 것을 크게, 먼 것을 작게 그리는 원근법이 ‘발명’되었고 화폭의 중심에 귀족이나 성직자를 배치하는 초상화가 ’발명’된다. 신의 시선으로만 신의 권능을 드높여야 했던 예술이 인간 자신을 주목하고, 신의 시선 역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인간의 시선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베네치아에서 유행되어 아직도 신의 시선대로 살아가던 이슬람 사회에도 전파가 된다. 그중 누군가(에니시테와 술탄)는 예술을 통해 신의 시점이 아닌 인간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시작한다. 그림의 화폭의 중심에 인간을 그려넣고 싶은 욕망이 일기 시작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사람을 죽여서라도 저지하고 싶을 정도의 위험한 발상이다. 저 멀리있는 위대한 소피아 성당보다 길거리의 개가 더 커 보인다? 그것은 신성 모독 이다. 결국 영원 불멸한 존재를 믿었던 시대에 ‘보는 방식’을 달리 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기존의 믿음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신념으로 살해한 소설 중 내가 읽은 몇 권의 책이 생각나는데 첫째로, 이정명의 장편소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의 한글 창제와 관련되어 성균관 유생들이 연쇄살인 당하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또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는 중세시대 이탈리아 수도사들이 ‘웃음’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연쇄 살인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자를 만드는 것, 웃음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왜 살해의 이유가 될까. 그것 역시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빨강 역시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엘레강스와 에니시테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신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인간을 그림의 중심에 세운 이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변화를 저지하는 세력들을 읽을 수 있다. 변화를 저지하는 세력들을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당대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 집단적으로 공유된 가치관 역시 기득권으로 읽혔다.  단지 물질 권력을 가진 사회의 소수 지배 계층만이 기득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뿌리 박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막아서는 기존의 사회의 집단 정신 역시 기득권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존의 관습과 관념 모든 것을 해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21세기의 지배적인 정신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우리의 변화를 가로막는 생각은 무엇인가? 그 장애물로 인해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새로운 파도는 무엇일까? 이 책은 내게 그것을 상상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이 책에 삽입된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이슬람 문화라는 낯선 세계와 결합되어 굉장한 흥미를 가져다 준다. 평생 그림을 그리다 장님이 된 비흐자드의 이야기, 카라와 세큐레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휘스레브와 쉬린의 설화 등 등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소설 곳곳에 삽입되어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고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