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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많은 작가들 중 지속적으로 롱런하는 작가는 드물다.


대다수의 작가는 뜨지도 못하고 망하고 몇몇 작가들은 겨우 먹고살 히트작을 내놓지만 그게 끝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특히 여장와 뒷담화 전문작가 상남자(풋) 헤밍웨이는 이거때문에 멘붕해서 자살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최고의 소설가를 다룬 최고의 만화'에서는 "난 작품을 다시 안내는 작가는 죽은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미친놈.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겠는가.















작가 특 : 걸작 쓰고 7개월 후에 뒈짐.















다행히 이번 문학은 페미니스트 천재 소설가 이야기는 아니다. 프랑스인 이야기다.


아시다시피 프랑스에는 좋은 문학이 많다. 다만 좋은 소설= 재밌는 소설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그렇다.


독갤에서 누군가 30p만 읽으면 그럭저럭 적응된다고 하지만 명작은 세 문장만 읽어도 흡입력이 개쩐다.


뭣보다 30p를 읽을 수있다면 라이트노벨도 좋은 작품처럼 보이게 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무튼 이번에는 '로맹 가리'라는 쓰레기 퇴물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라노벨 작가가 그렇듯 이 작가는 명작 하나 쓴 이후에 퇴물이 된 쓰레기였다.


꼬우십니까? 난 3대 문학상중 하나인 콩쿠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꼬우면 니도 잘 쓰세요.














그런 와중에 에밀 아자르라는 진정한 명작 작가가 탄생했다. 그의 처녀작은 이번에 리뷰할 '자기 앞의 생'이다.


처녀작이 곧바로 콩쿠르상이다. 우오옷! 전 프랑스에서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에밀 아자르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콩쿠르상 안받겠단다. 그 상의 제한은 1인당 1회 수상뿐인데 아ㅋㅋㅋㅋ


하지만 우리의 퇴물작가 로맹 가리는 반성할 줄을 모른다. 오히려 에밀 아자르의 글을 베끼기 시작한다.


퇴물새끼의 표절극에 분노한 에밀 아자르는 결국 로맹가리를 사살하고 만다..


퇴물작가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제대로 평가받지못한게 아니라 다만 무명이었을뿐이다."









(2018년 일러스트판본이 있지만 본인은 2003년판을 읽었다.)




우리의 주인공 아랍인 모모는 열 살이다. 그리고 창녀의 수양아들 비슷한 녀석이다. 즉 어머니=창녀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이름은 탈룰라가 아니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로자(Rosa)이다.


모모의 친어머니는 어떤지 모른다. 살아있을지도 있고, 이방인의 첫문장인 상황일수도 있다.


이방인의 첫문장은 말할수 없다. 말하는 순간 어느 독갤러를 저격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폴란드 출신 유대인.





내가 엄마를 찾기 시작하자, 로자 아줌마는 건방진 녀석이라고 욕하면서 아랍놈들은 다 그런 모양이라고, 손을 내밀어주면 팔까지 달란다고 푸념한다. 아줌마는 원래 그렇게 못된 여자는 아니었다. 편견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뿐이지 사실은 나를 제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악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 로자 아줌마는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일곱 아이들 사이에서 진짜 종합적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벌써 빠지기 시작해서 몇 오라기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아이들이 배은망덕하다고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자기 앞의 생, 20~21p




로자 씨는 물론 전직 창녀다. 한때는 프랑스와 북아프리카에서 창녀짓을 했지만 지금은 너무 늙었다.


특히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후로는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 없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본심은 그게 아니라도 보내는 돈이라고는 툭 끊기고는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빌어먹을 프랑스 놈들은 창녀는 애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친권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로자씨는 고아들을 돌봐야하는 셈이다.


다행히 로자씨는 인맥이 빵빵하다. 나이지리아인 포부, 그의 수양아들 출신 경찰서장 외 여럿이 그녀를 돌봐주고 있다.




나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이 아무런 대가없이 행동을 할 떄도 있으니까.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네고 희망을 일꺠우고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한숨지으며 떠났다. 나쁜 년


-자기 앞의 생, 109p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라. 주변 여럿이 달라붙어야할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말이 아니다.


모모의 관찰에 따르면 이미 뇌까지 맛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모모는 좋든 싫든 미래를 생각해야한다. 겨우 열 살인데!


물론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떠나지는 않는다. 그는 그냥 그녀와 같이 살 방법을 궁리할 뿐이다. 생각한다고 대안이 나올련지는 모르겠다.


집에 오니 이웃의 의사라는 작자는 병원에 입원시켜야한다고 난리다. 로자 아줌마는 불법체류자예요. 보험이 없다고요.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 가기 싫다는 것이다.


하긴 생각해보라. 이 빌어먹을 프랑스 놈들아. 수십년동안 죽으라고 꽥꽥거렸으면 최소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줘야 합당하지 않겠느냐.




로자 아줌마가 벌어먹고 살던 골목길을 두루 드라이브 한 것이 그녀에게 기적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과거가 그대로 살아났던 것이다. 그녀는 방 가운데서 벌거숭이가 된 채, 일하러 나가려고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마치 아직도 몸을 팔아 먹고 사는 여자처럼, 내 생애에 그런 꼴은 처음 보았다. 그 것이 끔찍하다더니 그보다 더 끔찍한 꼴은 본 적이 없다느니 말할 권리는 내게 없지만, 아무튼 로자 아줌마는 벌거벗은 몸에 가죽 장화를 신고, 스카프로 착각했는지 검정색 레이스 달린 속바지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성기까지 훤히 드러나 있어서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기괴한 장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로자 아줌마는 섹스숍에서처럼 엉덩이를 흔들었는데, 그녀의 엉덩이는 이제 인간의 엉덩이 같지는 않았다.


시이드! 내 입에서 기도문이 절로 흘러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불을 위한 기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눈뜨고 못 볼 웃음을 흘리며 교태스럽게 몸을 뒤틀어댔다.


-자기 앞의 생, 177-178p




도데체 이런 정신나간 부분을 왜 정성스럽게 베끼냐고? 그것이 이 소설의 역설이다.


빌어먹을 이 소설의 스토리는 굳이 스포일러를 하지 않아도 결말이 눈에 훤하게 보인다. 보호자는 망해가고 대안은 안보인다.


문제는 그걸 묘사하는게 빌어먹을 정도로 해학스럽다. 마치 늙어가는 노인을 화장으로 감출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지간에.....


띵동!




"부인, 저는 유태인은 아니지만 학대를 받았습니다. 학대가 당신네 유태인들의 독점물은 아닙니다, 부인. 다른 사람들도 유태인처럼 학대받을 권리가 있는 겁니다. 저는 부인에게 영수증을 받고 맡겼던 회교도인 모하메드 카디르를 원합니다."


-자기 앞의 생, 219p





오, 맙소사. 갑자기 아버지가 생겼다. 근데 알고보니 정신에 문제가 있다. 어쩐지 로자가 모모에게 정신병 검사를 자주 의뢰하더니만.


아버지는 지 어머니를 죽이고 11년동안 병원에 있다가 외출허가를 받고 나왔다.


더 충격적이게도 모모의 나이는 열살이 아니라 열네살이란다. 그래놓고 이제 자기는 오래 못살거같으니까 애보고 자기에게 기도해달라고 한다.


쾌락도 없는데 책임을 지라는 소리는 애비한테는 들어봤지만 자식보고 지라는 소리는 채무승계 말고는 못들어봤는데.


댁이 왜 얘 애비입니까? 빡친 로자 아줌마는 유대인 애를 보고 쟤가 당신 애니까 인사하라고 한다.


무슬림이 갑자기 유대인이 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보고 멘탈이 터져버린 그는 심장마비로 돌아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미 돌아버렸으니까 돌아버릴수는 없겠군. '돌아가시고 말았다.' 진짜 몸이 안좋아서 충격으로 쇼크사해버리고 말았다.




"로자 아줌마, 왜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녀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열네살인데 왜 열살이냐고 하셨나고요."

믿기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게 싫었던거야, 미안하구나."


-자기 앞의 생, 256-257p




좋은건 좋은거고. 로자 아줌마의 몸은 갈수록 개판이다. 이쯤되면 몇날며칠을 혼수상태에 빠져있기 일쑤다.


다른 애들은 다 입양보내고 이제 모모 혼자 남았다. 그리고 또다시 왕진을 온 선생님은 말한다.


이제 안되곘어. 병원 불러. 지금 당장!


아니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병원에서 꾸역꾸역 사는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병원에 보내겠다는게 말이 되냐고.


무슨 수를 써야만 한다........




"카츠 선생님, 아줌마를 병원에 보낼 수 없어요. 오늘은 안되요. 오늘, 아줌마네 친척이 찾아온다고 했어요."

그는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뭐라고 친척? 부인에게는 친척이 없어."

"이스라엘에 아줌마 친척이 있는데요...."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분들이 오늘 오신데요."


-자기 앞의 생, 281p





(결말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생략)












좀 줄거리 설명이 개떡같지만 양해해주길 바란다. 어차피 이 소설은 줄거리가 중요한게 아니라 부분 부분의 날카로운 일침이 매력이다.


사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은 주변인물은 몇몇 알고 있었다고 한다." "로맹 이 퇴물놈아, 소설 안에 있는 설명들 다 니가 예전에 썼던 부분들 재탕이잖아. 이거 어쩔껴." 멘붕한 로맹 가리. 하지만 그런 멘붕과는 별도로 그의 작품은 유일무이의 콩쿠르 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전에 그의 소설에 혹평을 가했던 비평가들은 다시 일본의 택시를 보듯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열광과는 다르게 그는 더욱더 비탄에 빠진다. 똑같은 소설인데 에밀 아자르는 칭송받고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파렴치한 표절범이 되고 만다. 결국 그런 멘붕이 부분적으로 겹친결과 로맹 가리는 1980년 자살을 하고 그 6개월 후에서야 수필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공개함으로서 진실이 밝혀지고 만다.


로맹가리는 참으로 복합적인 삶을 산 인물이었다. 리투아니아-유대계 러시아인 출신의 망명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소설가, 변호사, 공군 조종사, 외교관 등등을 모두 역임하면서 살아갔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삶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실제로도 소설은 20대부터 꾸준히 써왔지만 나머지는 몇년씩 잠깐 하다가 말았으니까.


문제는 본인이 그나마 삶에 열의를 느꼈던 소설마저도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비평가들은 그의 시대가 이미 지났다면서 잔인하게 깎아내리기 그지 없었으며 불행하게도(?) 본인은 이제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물질적 안락함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이제 새로운 가능성을 평가받을 일이 없어보였다.


가당찮은 일이다. 작중에서 모모는 서른 살밖에 안된 젊은이가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냐고 생각하는 장면대로 그들은 로맹 가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가능성이 있었으며 그는 실제로 그걸 표현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음, 길게 쓰지 못함이 유감이다. 안타깝게도 본인은 로맹 가리의 소설은 이거 말고는 안읽었기 때문이다. 더 읽고 다음에는 좀 더 멀쩡하게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