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대상은 세가지 구성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
(1) 분리된 자료들 : 우리 경험의 모든 질료적 요소
(2) 공간적 시간적 연속체 : 우리 경험을 구조화시키는 형식
(3) 순수 개념 혹은 범주 : 그런 구조화를 가능케하는/이해하는 능력 (aka 오성)
우리는 (2)가 있기에 (1)을 감각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사물없이 공간을 사유할 수 있지만 공간없이 사물을 사유할 수는 없다(인간의 정신은 공간과 시간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공간과 시간은 사물 혹은 현상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의 필연적 전제조건(선험적 형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공간과 시간은 단지 감각지각의 형식들, 우리가 사물들을 지각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간과 시각은 지각된 사물들, 현상들 속에서만/함께 할때만 의미와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1)과 (2)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3)이 필요하다.
인간이 형식(2)에 따라 감관(2+1)된 사물들은 연관되거나 연결되거나 파악되거나 사유되어야 한다(3).
오성 자체는 무엇을 직관하거나 지각할 수 없다. 감관 자체로는 무엇을 사유할 수 없다. 인식은 둘의 결합에서만 가능하다.
오성은 지각들을 파악하거나 결합하거나 연관짓는 여러가지 형식(범주)를 가지고 있다. : 칸트는 이를 12개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에 대한 칸트의 증명은 범주 없이 가지적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즉 인간은 이러한 범주들을 가지고 작용하는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성적 정신)이 없이는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인식은 범주들을 감관이 우리에게 제공하여 시공간적인 것으로 지각된 대상에 적용함이다.
범주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것이 바로 범주의 유일한 정당조건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경험론자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예지 형식들이 현상적 질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현상적 질서가 우리의 예지 형식에 의존한다.
이게 바로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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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이야 쩐다 했는데 직접 글로 다시 풀어써볼려니까 조낸 어렵누.....
·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 필론 : 고대에서 중세로
· 아우구스티누스 : 악의 문제
· 솔즈베리의 존
· 토마스 아퀴나스 : 정치학
· 프란시스 베이컨 : 신기관
· 베네딕트 스피노자 : 방법
· 흄 : 원인과 결과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은요, 칸트의 도식에서 오고요 (시간을 통해서) 님이 말한 통각은요 범주가 지각된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타당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현상에서의 질서는 예지 형식이라는 말보다 오성의 형식이라고 하는게 맞아요. 괜히 칸트가 오성은 자연의 입법자 라고 말한게 아니니까요
그렇네요 예지 형식보단 오성의 형식이라고 말하는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네요... 지적 감사합니당
말투 킹받네
칸트 읽기는 해야하는데 머리가 쪼개질것 같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