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악명 높은 '태양신의 황소' 챕터는 익히 알려진대로 출산을 다루는 챕터랍시고 영문학의 잉태를 표현한다고
앵글로색슨 시절 문체부터 시작해서 점점 각 영문학 대표 작가들 문체로 흉내내고, 심지어 말러리 아서 왕의 죽음 문체 패러디할 때엔 블룸이든 등장인물이든 죄다 기사처럼 묘사하는 것처럼 내용까지도 그 시절 스타일 따라하면서 독자들 대가리 쪼개지만
율리시스 예찬하는 작가들이 꼭 언급하는 챕터지.
당장 안소니 버제스가 자기 조이스 관련 논픽션에서도 읽을 때 미친 놈인 줄 알았다고 극찬하는 것처럼.
작가들은 이 챕터를 읽을 때마다 다른 작가 문체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솜씨 보면서 절망할 거라고도 했고.
이 장의 의의 중 하나는 흔히 작가=고유 문체(스타일)의 문체론 자체를 나처럼 잘 쓰는 놈은 남의 문체도 완벽하게 흉내낸다면서 타배깅하는 용도도 적잖아 있으니.
조이스빠긴 하지만 가끔 이 인간이 지 재능을 좀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도 얼핏 드는 게 나는 언어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냥 원래 그냥 글 잘 쓰는 놈이지만, 피카소가 더 이상 할 거 없어서 입체파 만들고 그러듯 이상한 짓도 많이 했지.
그래도 조이스의 악명 때문에 이야기 자체도 감동적이란 걸 간혹 모르거나,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건 슬픈 현실이야
율리시스만 하더라도
우리는 유대인 놈들을 애초에 들여놓은 적도 없기에 유대인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광신도에게 저 잼민이들의 함성이 네가 말하는 신이라고 조롱하면서도
정작 임종 때 엄마 앞에서 고해성사 거절한 걸로 죄책감을 느끼는 스티븐
유대인이라서 은근히 차별받고, 심지어 사이클롭스 챕터에선 열렬 아일랜드 내셔널리스트에게 유대인이라고 비난받는 와중에도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라고 항변하면서 사해동포주의를 강조하고,
하필이면 동료의 장례에 참석하면서 죽은 어린 아들의 환영에 내내 사로잡히고, 아내가 바람 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 블룸 등 이야기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특히 키르케 장에선 이런 컴플렉스 지닌 블룸이 환상 속에서나마 사람들의 예찬을 받으며 블룸 왕국의 왕으로 추대되고, 예루살렘 대신 블룸살렘을 선포하면서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술에 취해서 사고 친 생판 남 스티븐을 도우면서 죽은 아들의 부재를 느끼고, 죽은 아들의 환영을 뒤쫓고
그러면서 몰리 챕터에선 막타로 독자 머리를 부수지만, 그래도 이 모든 갈등의 희망적인 암시까지
모든 문학이 그렇듯 사실 반드시 읽어야할 필요는 없으나 즐기고자 한다면 즐거울 수 있다.
정말로 율리시스는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 감동적인 피네간의 경야 읽으쉴?
ㄴㄴ 베케트 소설이 차력쇼 그자체지 율리시스는 극도의 정밀함이쟤
Deshil Holles Eamus. Just you try it on.
Yes - dc App
마사 편지에서 word를 world로 바꿔 표기한 게 좋았음
왜 결론이 그거예요
바보는 영어못해 그런거몰라 영길리들이나 읽어
시발 차력쇼 비유 겁나 적절하네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