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44세때 심각한 뇌질환으로 쓰려졌고 죽을때까지 회복하지 못했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의 한 광장에서 채찍질을 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난동을 피우다가 체포당했다고 함


그 뒤로 완전히 미치기 전 며칠간 니체는 지인들에게 여러 장의 편지를 보냈음







친애하는 아리아드네 공주에게


내가 인간이란 것은 그저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난 인간들과 함께 살아왔었고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저속하고 고귀한 부분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인도에서는 붓다였고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였으며 알렉산더와 카이사르는 나의 현현이었고, 셰익스피어, 베이컨 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에는 볼테르이자 나폴레옹이었고 어쩌면 바그너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디오니소스이며, 지상에 축제를 불러오는 자입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천국이 나를 기다리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아직 출간하지 않은 두 권, 아니 여섯, 여덟권의 출간되지 않았고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나의 불멸하는 친구와 이솔리느의 시인인 사튀에르에게 선물하겠다. 그가 내 선물을 인류에게 전달해 주기를.


니체 카이사르 디오니소스





프랄렌 본 살리스에게


신이 지상에 강림했다. 천국이 환호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나는 내 왕국을 되찾았고, 교황을 옥에 강금했고, 윌헬름, 비스마르크, 스퇴커를 쏴 죽였다.


십자가에 매달린 자가





스트린드베리 선생에게


저런... 아직도 이혼을 안했다고? ....


십자가에 매달린 자가





내 친구 오버벡과 그의 아내에게


네가 여태껏 나의 재능에 대해 아주 적은 신뢰만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적어도 내가 내 말은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아줬으면 하네. 예시를 들자면, 나는 지금 반유대주의자들을 쏴 죽이고 있었어.


디오니소스가






편지를 받고 기겁한 오버벡 교수는 1월 8일 스위스에서 이탈리아의 투린까지 니체를 만나러 갔음. 니체는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로 소파에 앉아서 자기 작품을 해설하고 있었다고 함. 니체는 치료를 위해 독일로 옮겨졌고, 병원에서도 딱히 해줄 수 있는게 없었기 때문에 친가에 머물게 되었음. 니체는 의사를 비스마르크로 착각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며 소리를 지르는 등 정신 착란을 일으켰음. 니체는 '빛이 필요하다', '거의 죽었다' 등의 문장을 계속 중얼거렸고,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혹시 이름이 프란치스카인가요?'라 묻곤 했다고 함


니체가 쓰러졌다는 소식은 독일 학계에 널리 퍼졌고 니체의 철학이 광기를 찬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니체가 자신의 철학 때문에 미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음. 오버벡은 니체가 원래 출간할 계획이었던 '우상의 황혼'과 '니체 대 바그너'를 엮어서 출간했음. 독일의 출판업자 나우만은 1890년, 니체의 책들을 재출간해 서점에 진열했고, 니체는 제정신이였을때는 누리지 못했던 유명세를 얻게 되었음






구글 스콜라 'nietzsche' 단어 빈도




니체의 저작물을 관리했던 여동생은 반유대주의 성향이 있었으며, 나치가 니체를 자신들의 사상의 근원으로 보았기 때문에 니체는 독일 민족주의와 엮이곤 했음


하지만 니체 본인은 반유대주의자들을 증오했고, 독일의 문화 또한 경멸했었음. 니체는 유대교를 경멸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의 지성을 칭찬하기도 했음. 니체가 기독교, 민주주의, 평등주의, 페미니스트, 진화론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심지어는 무신론자까지 경멸했기 때문에 딱히 의미가 없기는 함. 니체의 경멸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은 니체의 철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음. 시오니스트들도 니체를 읽었고 1901년 시오니즘 신문에는 니체의 형식을 흉내낸 시가 실리기도 했음. 하지만 니체가 가장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곳은 러시아였음. 러시아의 볼세비키들은 니체의 반기독교적인 철학에서 혁명가를 읽어냈고, 러시아의 상징주의자들은 니체의 우버멘쉬를 바탕으로 러시아를 구원할 '초인'의 신화를 만들어냈음. 한편 젊은 니체를 알고 있었던 바젤 대학의 교수들은 니체의 '신사인 척을 하는 태도', '과장된 교양있는 말투'를 기억하고 있었고 니체의 유명세를 달가워하지 않았음


오버벡과 니체의 어머니는 니체를 산책에 데려가며 증세를 호전시키려고 노력했음. 하지만 니체의 병세는 몇년에 걸쳐 서서히 나빠졌고 마비증세가 옴과 함께 결국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음. 1897년 니체의 어머니가 죽었을때 니체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함. 1899년, 뇌졸증으로 인해 반신마비가 왔고 니체는 1900년 폐렴으로 사망함. 당시 의사들은 니체의 병을 매독균에 의한 뇌손상으로 진단했고, 니체가 군대에 있었던 당시 집창촌을 방문했다가 매독에 걸렸다는 추측까지 나왔었음. 한편 프로이트를 위시한 정신분석학회는 '니체가 여성을 가까이 한 적이 없었으므로' 동성애자였으며 매독은 동성애 집창촌에서 얻어온 것이라고 주장했음. 물론 니체가 매독 환자였다거나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현재는 뇌졸증이나 뇌종양이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음



니체는 사후, 프로이드, 융등의 정신분석학자들, 하이데거, 아렌트 등의 독일 실존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음. 히틀러 등의 나치주의자들은 니체의 우버멘쉬, 그리고 '힘에의 의지' 등의 개념을 차용하며 니체의 유명세를 더했음. 2차대전 이후에 니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원류로 추양받으며 이전보다 더 유명해졌고, 21세기에는 심리학적인 철학이 유행하며 니체는 다시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음. 니체의 철학은 3세기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게 반박되어왔지만 기독교에 대한 니체의 비판, 그리고 니체의 삶을 긍정하는 철학은 아직까지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