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연한 거라 여길 수도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작가 중심으로 취향을 형성하는 건가’ 스스로 질문을 던졌더니 갑자기 좀 괴이하게 느껴졌음.
“무슨 책 좋아해?”라는 질문에, 당연히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책이름을 말하기도 하고 작가 이름을 말하기도 한다. 미시마 유키오 좋아해. 도끼 좋아해. 우다영 제일 좋아. 이런 식으로 말하고, 또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전작주의가 미덕으로 여겨져서 나는 내가 어느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대표작은 물론이고 단편도 빠짐없이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감에 항상 죄책감이 든다(이런 감정이 병적인 건 안다 ㅠ)
그런데 이런 작가, 아니 인물 중심으로 콘텐츠가 소비되는 현상은 다른 예술과 문화, 정치도 마찬가지임. 칸예 웨스트, 톰 요크(라디오헤드), 존 레논(비틀즈), 테일러 스위프트 등의 이름을 외치며 그들의 음악뿐 아니라 그들과 관련된 상품과 사생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고, 또 폴 토마스 앤더슨, 홍상수, 쿠엔틴 타란티노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 악명 높은 케이팝 아이돌의 팬들과 ‘우리 ㅇㅇ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로 대표되는 수많은 정치인 팬덤도 있음. 당연히 세부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세상이 특정인 중심의 팬덤으로 돌아가는 것 같음. 사람 이름을 팔아야 돈이 벌리는 게 자본주의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왜 사람들은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열광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투여할 어떤 인격화된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덕질의 대상은 왜 대부분 사람일까??
인터넷 커뮤니티의 구획이 이런 현상을 더 강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듦. 과거엔 “ㅇㅇㅇ 팬클럽”식의 다음과 네이버 카페들이 많있고, 덕질에 최적화된 디시 갤러리들도 사람 이름 갤러리명이 제일 많음. 그리고 이런 갤러리들은 ‘갤주’인 그 사람을 제외한 것들의 언급을 배제하고 차단함. ‘우리 ㅇㅇㅇ’ 소식과 그 사람에 대한 찬양은 되지만, 다른 인물들에 대한 언급과 그 사람이 속한 예술계와 사회에 대한 언급을 허용하지 않음. 갤 주제에 충실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이런 규칙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고방식에 물들게 되고 그 폐해는 끔찍하다고 봄. (취미 커뮤니티로 시작해 젠더와 정치 떡밥으로 엉망이 된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국내야구갤러리 역시 다른 의미로 끔찍하지만, 이들은 분명히 팬덤의 함정에선 빠져나왔음. 인물 숭배를 척살했다는 건 이들의 유일한 공로라 봄)
그런데 이런 현상이 팬덤과 덕질이란 이름으로 논해지긴 하지만, 비단 요즘 자본주의 시장과 관련된 문제도 아닌 것 같음. 문학과 예술과 관련된 전공에서는 특정 인물에 대한 집착이 작가 연구로 제도화되어 있고 그걸로 학위를 주고 교수를 시킴. 카프카나 프루스트가 쓴 미공개 일기와 메모와 편지까지 다 찾아내는 변태적 광기가 연구 업적이 되고, 비평계에서도 작가주의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음. 특히 철학계는 소크라테스 연구의 권위자, 칸트, 루소, 니체, 바디우 연구자 이런 식의 인물 덕질이 평생 지속되고 가장 만연한 곳 같은데, 또 이런 제도화된 인물 덕질은 문사철 중 하나인 역사학에서는 잘 안 하고, 그 외 다른 학문인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 사회학, 생물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같은 데서도 잘 하지 않는 일들임. 정말 이상함…
그래서 이건 아무래도 종교 및 신학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엉성한 가설을 세워봤음. 신학자들이 신의 말씀을 탐구하고 신을 덕질했던 전통이 문학과 철학과 예술 연구에 스며들어 한몸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임. (그런데 왜 고대부터 내려왔던 문사철 전통 중 역사학은 예외일까?) 그리고 신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작가나 아이돌로 이름을 바꾼 신을 섬기고 덕질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이런 내 생각에 대해, 그리고 동시대 문화 전반에 만연한 작가 숭배와 팬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한 사람이 비슷한 작품을 계속 쓰니까 작품 하나를 연구했으면 연구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그런식으로 누구를 전공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사람 한명이 너무 빨리 죽어버리니까 사람을 덕질 못하는 것 뿐이지 특정 사조나 특정 시대를 전공하는것도 같은 현상인 거 같은데
인문학의 객체가 인간의 사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뿐이지 생물학도 유전자 전공한 교수는 평생 유전자 관련분야만 하고 동물 생태학엔 별 관심없고 이런 거랑 비슷하다고 봄
그냥 단순하게 사람의 감정은 공유되니까. 모든 사람이 같은 감정의 공감대를 가진 건 아니지만, 어느 일부분에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의 감정과 맞는 작가는 자연스레 나의 말이 되고, 나의 취향이 되는거지. 그러다 보니 그 작가 위주의 작품들을 우선시해서 읽게 되고.
작품이 작가니까.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작가를 이해하는 것임
사람이 어떤 특정 작가나 음악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데, 그건 별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임.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게 욕망일수도 있고) 그렇지만 이미 내 생각과 같은 내용을 벌써 다른 사람이 (예술가, 작가나 아티스트가_) 하고 있는 거임. 그럼 그 사람을 덕질하게 되는 거지.
그런 면에서 개인적인 덕질 수준은 단독자로서 단지 자신과 공명하는 (통하는) 예술가를 소박하게 좋아하는데서 그치지만 , 확실히 일정 수준 이상 팬덤이 커지면 개인의 애정을 훨씬 넘어선 수준의 욕망 덩어리가 기거하는 듯함. 그 팬덤 속에 님이 말한 경배나 종교적인 성향이 깃드는 듯함.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바로 네가 말한 그 이유 때문에 작가를 덕질하게 되는 것 같음. 그냥 ‘이 작가 흥미롭네’일 수도 있지만, 자기와 비슷한 점 때문에 파고드는 건 나이가 어릴수록 너무 흔한 일 같고. 덕질이 유사연애라고 하는데, 연애가 타인을 통해 자신과 또 다른 타인과 인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일이라면 그런 덕질에 무슨 문제가 있겠냐 싶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인간은 개념이나 추상화 말고도 다른 인격을 거쳐야 사유(이 말이 적절한 것 같진 않은데)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함. 그리고 팬덤은 몰라 무서워 누가 연구 좀 해’줘’
그 사람만의 개성에 흠뻑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해. 음악으로 치면 나는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들이 아닌 타인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이 있거든. 문학으로 치면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작가를 가장 좋아해. 사람들에게 최고의 작가냐고 물으면 긍정보단 부정의 답을 많이 받겠지. 하지만 최고의 작가들도 겐지로처럼 글을 쓸 수는 없어.
물론 그에따른 폐혜는 어쩔 수 없겠지. 집단이 형성되면 힘도 생길거고 광기에 휩쓸리는 일도 있겠지만 그건 경험의 한계 때문이라고 봐.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을 다읽었어도 셜록홈즈는 안읽어봤을 수가 있겠지. 경험해보지 못한 작품을 평가할 수는 없고, 읽어본 작품 중 나름의 최고를 꼽겠지. 하지만 평생을 바쳐도 세상의 모든책을 다 읽을 순 없잖아?
굉장히 그럴듯 한데. 이게 구분짓기 편가르기 파벌 같은 인간의 본성 아닌가 생각한다. 사상이나 학파도 그렇고. 내가 노력해도 이 문제에선 자유로울 수 없겠다. 잘 썼다. - dc App
네 말대로 독립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게 인간이라고 하지만, 이상화한 다른 존재에 의지하고 믿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인가 싶기도 하다. 주변에서 작가주의 비판하는 평론가들 보면 하나같이 다른 분야에서 팬보이질하고 있어서 너무 웃기더라
https://youtu.be/vR2P5vW-n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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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창조성 좋지. 우리 시대의 가장 굳건한 신화 중 하나잖아. 예외성과 특이성을 지닌 위대한 예술가 개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특이한 개인이 당대와 그 분야의 예술과 기타 등등을 더 깊이 연구할 수 있는 렌즈가 될 수 있는 것도 인정하는데, 학파도 아니고 예술가 이름으로 학회 있는 건 좀 이상하다고 느낌.
이 글 되게 좋다
오 생각나는 거 두서없이 써갈긴 건데 좋게 읽어줘서 고마워. 문장도 근거도 논리도 엉망인데 뭐가 좋은 것임? 사람들이 잘 연결 짓지 않는 현상들을 한데 모아놓은 게 재밌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