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ㅁ'을 존중하지만 안타깝게도 첫댓글에서 잘 모른다고 한 시점에서 내 질문에 대한 너의 대답 가능성을 좀 낮추어 보게 됐음. 부디 여기 댓 달지 말고 너가 단 댓글에 달아주기를 부탁드림.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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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서?, 먼데?
익명(221.159)2022-03-1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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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잠깐 제 3자는 신경쓰지말고.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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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고 오겠음
익명(221.159)2022-03-13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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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달
익명(221.159)2022-03-13 02:46
답글
오키 그럼 난 질문 잇고 있겠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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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2:47
답글
되게 이 안에서는 역설적인 네이밍이네. 어쨌든.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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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의 처음댓글: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개념화 되지 않은 채로 이미 실존주의는 존재했다. 4. 하이데거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 5.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6. 실존주의의 주 특이점은 형이상학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51
답글
7. 형이상학의 구체적인 의미 자체에 대한 기술이 필요함.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 인간의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전적인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53
답글
ㅇㅇ, 무너뜨린다는 것보다 본질의 부정이 가까움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2:54
답글
귀찮겠지만 정확한 상호 간 언어 소통의 사용을 위해서 너가 언급한 '본질'의 개념을 정의 부탁함.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56
답글
이데아나 물자체, 국가와 정치(2차 세계대전에서의 파시즘이라 이해 바람) 이성적인 본질과 같은 객관이성임 실존주의는 이런 객관에서의 탈피임 인간 개개인의 주관을 살리면서 앞서 말한 이러한 가치가 인류에게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들을 해체하고 비판했음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01
답글
이해함?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02
답글
오키 ㄱㄷ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02
답글
"인간 모두가 행복과 이상적인 삶을 위해서 지향해야할 관념"
이라 정리하자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03
답글
중요한건 이것이 객관, 하나란 사실임, 실존주의는 이것이 복수이고 인간 개인들 마다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말함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04
답글
8. 너가 재정의한 현재 상황의 언어로써의 '본질'이란 이데아나 물자체, 파시즘 등을 위시함. 9. 이것은 형이상학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분류하자면 절대적 가치관이라고 재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0. 절대적 가치관이란 '집단 및 가치관적 관점에서 명백하게 옳은 것:진리 (예시:쟤는 적 우리는 아군)는 있다는 사고체계로 재정의하겠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06
답글
(있다:존재한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06
답글
끝남?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07
답글
이해함?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07
답글
맞음 그런식으로 정리해도 될 듯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09
답글
그러면 한번 더 달리겠음 미안하고 고마움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09
답글
네~~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10
답글
ㅇㅇ, 앞서 말한 세계대전은 실존주의가 본격적으로 탄생하게된 계기이기도함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14
답글
11. 그렇다면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사용되어지는 문장-(실존이 본질에~)은 정확히 서술할 때에, 개인적 자아에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집단 및 형이상학의 절대적 가치관과 실제적 현실과의 괴리(예시:세계 2차대전-기존 가치 개념의 전복이 일어난 사건)에서 기인한다고 서술할 수 있음. (번호 수정)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17
답글
이것이 뭐임?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17
답글
12. 이것(11.)은 아직 '실존주의'라는 개념이 명명되지 않은 과거에 존재했던 실존주의적 사상 및 예술에 대해 상호 근거가 될 수 있음. (번호 수정) - dc App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18
답글
이해했다면. 혹시 질문이 있다면 답변 후 이제 비판으로 달리겠음 - dc App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21
답글
일단 이런 절대적 실체는 인간 개인이 태어나기전에 사회에 이미 존재해 있었던 가치임 엄밀히 따지자면 방금 태어난 자가 만들어 낸 것이라 하기는 어렵고 상호근거는 이전에 실존주의와 이후는 조금씩 다름 학문적 체계라 할까 그런데 그렇게 볼수도 있는듯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23
답글
1분만 타임.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24
답글
비판?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24
답글
잠온다, 3시 넘어서 갤질할 줄은 몰랐음
익명(seinundzeit9723)2022-03-13 03:25
답글
ㅇㅇ. 비판이 아닐 수도 있고. 애초에 실존주의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은 이유이기도 함.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25
답글
빠르게 작성하겠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26
답글
13. 실존주의는 사상(철학)보다는 정서(감정)에 가깝다. 14. 실존주의는 기존의 절대적 가치관과 현실적 사건의 단절과 괴리에서 느끼는 개인의 정서적 충격에서 기반하기 때문이다. 15. 그러므로 하이데거가 자신을 실존주의자라고 명명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옳다. 계속 달림.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28
답글
16.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것은 네가 재정의한 본질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따져본다면 그릇된 명제이다. 17.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데, 진화론적 관점에서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31
답글
18. 개인의 가치관의 책임과 주체성이 그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실존주의의 메세지는 1)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사회적 인지의 관점 4)사회 문화적 관점에 의해서 논박당한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34
답글
19. 개인의 자아-(가치관)은 이러한 4가지의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 자체적(혹은 내부적)으로 '창조'될 수 없기 때문이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36
답글
20.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그릇된 명제이며, 부분적으로라도 옳은 부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조차도 <옳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자아는 어떻게 성장하였는가?>라는 모순성을 지니게 된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41
답글
21. 그러므로 다시 한번, 실존주의는 '사상'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감정'또는 '정서'에 가깝다. 22. '개인의 가치관을 개인의 주체에 맡겼다는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실존주의의 영향력은 단지 문화적인 '사조'에 불과하다. [이것은 근거가 희박하나,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명제]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45
답글
23. 일단락: 실존주의는 사상이 아니며, 가치관과 현실의 단절에서 발생하는 감정 혹은 정서이다. 24. 이러한 관점에서 실존주의를 관찰했을 때: 실존주의의 사상적 의미를 부정함으로서 실존주의의 가치가 퇴락하는 것은 아니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50
답글
25. 오히려 철학(논리적 추론에 기반한 가설 혹은 진리-)가 광범위한 발전을 바탕으로 한 과학에 잡아먹히는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 혹은 생명에게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은 '정서'이기 때문이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53
답글
26. 그러므로 실존주의가 '사상으로 인식되어지는 허위'를 벗고 나면, 오히려 실존주의는 개인 간 정서의 교감 및 공감, 혹은 이해와 앎을 목표점으로 지향하는 정서적 사고관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바른 마음'에서 언급된 논리적 소통의 한계점을 돌파할 수 있는 지향점이 될 수 있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3:58
답글
22.의 후설; 22-1: 실존주의의 대두가 실제적으로 사상으로서의 실존주의가 직면하는 사회적 문제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현시대의 문제점들을 볼 때 사상적 실존주의의 영향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거나 극히 미미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4:03
답글
22-2: 이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애초에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성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6~20 참조)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4:04
답글
27. 이것은 정서로서의 실존주의라는 실존주의 개념의 재정의이며, 사상으로서의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4:06
답글
28. 정서적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4:09
답글
끝.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4:09
답글
글쓴이가 본질이라 말하고 있는 것들은 경향성이나 구조 정도의 의미같고, 실존주의가 공격하는 본질은 그것의 표현으로써의 본질임. 인간이 사물을 유사성에 의해 구분하거나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다면, 혹은 그러한 구조를 지닌다면, 그것이 표현되었을때의 사물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 본질임
익명(182.222)2022-03-13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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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명확하지 않아서 잘 정리되지 않지만 뉘앙스 해석으로 보자면 사물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본질;가치관을 공격;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사회적 구조성 자체에 의해서 논박당한다는 게 내 생각에 가까운데 일단 애초에 지금 뉘앙스해석이라 큰 의미는 없는 것 같기도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8:22
답글
이게 디시식 댓글 논의의 맹점인데, 1)사용하는 단어의 정확한 상황적 의미를 정의하지 않았고 2) 그 단어를 사용하는 근거를 들지 않았고 3)자신의 생각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통한 주장이 없어서 그냥 인상적인 상호해석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아무튼 틀렸다'라는 명제 밖에 없음 ㅇㅇ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8:54
답글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문득 빠르게 떠올린 거라서 틀린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소통으로는 아예 대화에 남는 게 없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8:55
답글
여튼 모두 좋은 일요일 되셈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8:56
답글
인간이 판단을 행할때, 대상과 이성의 관계를 선험적인 형상인(이성)에 대해 질료인(대상)이 수동적으로 관계, 매개하여 본질로 물화한다고 이해한다면 님 논변은 정당할 수 있음. 가령 인간의 본질의 집합에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 현존하는 사회는 그 경향을 매개로 변양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쉽게 말해 현실 사회가 '사회에 대한 이데아'의 복제품으로써의 사회라면, 그러한 공동체 구성으로의 의지는 그 자체로 실존적 개별자에 대한 논박이 될 수 있음.
익명(182.222)2022-03-13 10:51
답글
근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 우리의 사물에 대한 판단은 주어진 대상에 대해 단순히 본질적인 형식 속에 대상에 대한 이해의 형식을 매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대상을 통해 역으로 우리가 변화를 겪기도 하고 그 변화를 바탕으로 이해를 하기도 하는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함을 통해 이뤄짐. 가령 생물들의 종種에 대한 관념은 개별 종에 대한 형식이 우리 안에 내재돼있다가 해당 종의 생물에 대한 경험으로 현현하는게 아니라 유사한 이미지의 것들이 반복적으로 주어짐을 통해서 유비라는 인간의 이해의 형식, 즉 우리가 유일하게 본질이라 부를 수 있는 구조를 통해서 이해됨.
익명(182.222)2022-03-13 11:52
답글
가능하면 번호로 부탁함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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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실은 이런 본질 개념은 스피노자의 본질 개념의 인용에 불과하고, 다시 실존주의가 비판하는 본질 개념으로 돌아가면, 위에서의 유기적인 관계함 속에서 이뤄지게 되는 사물에 대한 관념은 그것의 발생 방식으로 인해 자의적인 것으로밖에 생각될 수 없고, 그러한 자의적인 관념들 중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정당화시키는, 다시말해 자신을 본질화 하는 차이는 권력관계를 통해서만 나타남. 그리고 이러한 권력관계는 권력이란 단어의 사용으로부터 실존적으로만 이해는 것임을 알 수 있음. (왕의 권력은 왕의 본질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약관계의 실존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고, 국가의 권력은 국민의 실존을 통해서 이뤄지듯)
익명(182.222)2022-03-13 11:55
답글
16~20은 이해가 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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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18. 19. 20. 등에서 언급하는 개인의 가치관이 내부로부터 창발할 수 없다는 점은 이러한 관계(권력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본질의 정의의 관계)를 통해 이해될 수 있음. 그러니까 1)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사회적 인지의 관점 4)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관념 간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해질 수 있는거임.
마지막으로 이 모든 논변은 너의 비판 속 자기모순을 내 이해방식대로 드러냈을 뿐이고, 실존주의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담고 있지 않음을 밝힘.
익명(182.222)2022-03-13 11:56
답글
ㄱㄷㄱㄷ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11:57
답글
그냥 유희라고 생각하고 접근해보겠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11:58
답글
1. 인간이 판단을 행할 때, 대상과 이성의 관계를 객체와 주체로 놓고 보면 글쓴이의 논변은 정당할 수 있다.
2. 인간의 본질 집합에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 (너무 ‘철학적’인 말은 쉽게 풀어서 쓰겠음) 현대 사회가 그러한 경향을 매개로 하여 구성 되었다면, 그러한 공동체 구성 의지는 그 자체로 실존주의적 개인 자아에 대한 논박이 될 수 있다.
3. 그러나 2.는 현실 사회가 사회에 대한 이상적 이데아의 복제품일 때 성립한다.
4.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16
답글
5. 우리의 사물에 대한 판단은 대상에 대해 단순히 본질적인 형식-(사회적 공동체 구성을 위미하는 것으로 추정됌)으로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상호 작용하며 유기적으로 관계함.
6. 우리-(자아)와 대상 간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돌아가면, 사물에 대한 관념-(사고)는 는 그것의 발생 방식으로 인해 자의적인 것으로밖에 생각될 수 없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17
답글
7. 그러한 자의적인 관념에서 자신을 본질화 시키는 자아는 권력관계를 통해서 나타난다.
8. 이러한 권력관계는 권력이란 단어적 사용으로부터 실존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10. 18~20에서 언급된 개인의 가치관이 개인 자아 내부로부터 창발될 수 없다는 점은 이러한 권력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본질의 정의의 관계: 이해 불가능한 문장 구조 ㅈㅅ;;>를 통해 이해된다.
11. 그러므로, 1) 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 사회적 인지의 관점 4)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관념 간에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18
답글
이게 순차적으로 접근한 님의 논리입니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19
답글
이제 반박 들어가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그냥 유희로 생각하기로 해요.
설야(clairinside)2022-03-13 13:19
답글
1.에 대한 반박- 사회심리학 입문 총론서만 읽어본 입장으로써 말하자면, 1) 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 사회적 인지의 관점 4) 사회 문화적 관점
이 4가지 관점은 대상과 자아를 일방적인 관계로 놓지 않습니다.
책 내용을 다시금 ‘인출-떠올리기’할 겸 설명하자면, 진화론적 관점은 진화에서 비롯된 본성적인 성질에 집중하는 것이구요. (이기성, 이집단성을 예시로 들 수 있어요.)
사회적 학습은 ‘보상과 처벌에 따른 과거의 학습 경험에서 사회적 행동이 비롯된다고 봐요,
사회적 인지는 특정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경험과 사회적 상황의 상호작용에서 사회적 행동이 비롯된다고 보지요. 사회 문화적 관점이란 말 그대로 사회의 구성원이 사회의 문화에 사회적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1
답글
이로써. 님의 1.-전제부터가 성립하지 않음, 혹은 사회 심리학의 기본 4가지 관점을 알지 못하고 게셨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2
답글
2.에 대한 반박- 공동체 구성의지-공동체 구성 만으로 인간의 이기적, 이집단적인 본성을 뭉뚱그러뜨리면 안됩니다. 본문에는 제가 17에서 가볍게 한가지 만을 논한 후, 18에서 사회심리학적인 4가지 관점을 들어 총체적인 의미를 드러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마 1.에대한 반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사회 심리학적 관점에 익숙하지 않으셔서 공동체 구성의지에만 의미를 한정하셔서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류이며, 저 만을 독자로 상정하고 댓글을 단 저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2
답글
3,4,5에 대한 반박-2.가 <현실 사회가 사회에 대한 이상적 이데아의 복제품일 때 성립한다>는 명제에 대하여 근거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5.는 이미 1.에 의해 논박되어져서 논점에서 이미 멀어지게 된 논변이지만, 대상과 자아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립하지 않을뿐더러 성립하지 않는 사례로 3.의 근거를 드는 것은 ‘반증 불가능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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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의반박- 그것의 발생방식으로 인해 그렇게 생각된다는 것은 설명이 충분치 않으므로 ‘순환 논증의 오류’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의적인 성격을 논하는 것은 논점에서 벗어난 'shoehorning' 아닌가요?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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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의 반박- 권력 관계에 대한 언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관계라는 개념은 지금 명백히 논점을 벗어나 있어요. ‘shoehorning'입니다. 그리고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논점을 근거없이 참으로 가정하는 오류에서 시작된 추론이에요.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3
답글
8.의 반박-마찬가지로 ‘shoehorning'입니다. 그리고 근거가 언급되지 않음으로 ’논점을 근거없이 참으로 가정하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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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의 반박-‘shoehorning' 입니다. 권력 관계라는 개념이 지금 논점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11.의 반박-마찬가지로 ‘shoehorning'입니다. 그리고 권력관계가 형성된다는 ‘shoehorning'이 제 주장의 자기 모순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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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렇게 님의 논리를 오류의 유형을 들어 반박하기는 했습니다만은, 어차피 제가 생각하는 정서적 실존주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표현되어서도 안되며, 말이 많을 필요도 없는 개념이에요. 아무래도 제 생각이다보니 독서갤러리의 취지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다른 분들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분량의 독서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으니.
설야(clairinside)2022-03-13 13:36
답글
반박을 나눈다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야(clairinside)2022-03-13 13:39
답글
본질의 자의성에 대한 언급은 곧 본질이 본질 그 자체가 함의하는 절대성을 상대성으로 격하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음.
그리고 내 논변은 일정부분 철학체계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 없이 논리학을 들이밀면서 오류 취급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임. 그리고 내가 사회 심리학에 익숙치 않은 정도를 떠나 완전 무지한건 사실이지만 님이 설정한 몇가지
익명(182.222)2022-03-13 13:40
답글
키워드 속에서 나는 분명히 권력관계들이 보임. 가령 진화론의 기본 원리인 생존경쟁은 필연적으로 자연상태에서 권력관계가 형성됨을 전제함. 이집단성, 이기성 등은 말할 필요도 없음.
사회적 어쩌고들에 대해선 전부 사회-개인의 권력관계가 전제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음. 이러한 구조 속에서 권력은 권력의 의미를 마냥 추상적으로 넓혀야지만 찾아지는게 아니라
익명(182.222)2022-03-13 13:45
답글
권력을 하나의 형식으로 보았을때 비로소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것임. 그리고 공동체 구성에 대한 나의 비유는 정말 사과나 의자에 대한 비유와 같은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비유를 위한 비유의 하나일 뿐임. 나는 이 비유로 님이 전제하는 철학적 기반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이데아같은 개념적인 단어 외엔 줄기를 못잡은듯 보임.
익명(182.222)2022-03-13 13:50
답글
님의 주장은 존중합니다만, 논리 없는 철학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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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요약한 1.에 대해 수정을 가하자면 단순히 대상-이성을 객체-주체로 봤을때 논변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속에 이미 모든 사물에 대한 참인 관념의 형식이 내재되어있고 사물과 마주침으로 그 관념이 현현한다는, 대상이 그저 스위치를 킬 뿐인 수동적인 역할만을 일임받을때 글쓴이의 논변이 정당화된다는 의미였음
익명(182.222)2022-03-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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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논리적으로 발생한다는 생각 자체가 논리와 철학 둘에 대한 이해를 모두 벗어남. 님이 지시하는 논리는 실증성에 가까울거임. 철학을 비롯한 모든 기초학문은 내재적으로 발생하지, 논리적으로 발생하지 않음. 아니, 논리적이란 말 자체가 내재성을 전제함. 고전적인 비유를 들자면, 기하학의 논리성은 내재적인 선결성을 통해 발생하는 것처럼 말임.
익명(182.222)2022-03-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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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의미로 기하학의 정의, 공리에 대해 실증을 요구할 수도 없음
익명(182.222)2022-03-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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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이런 사소한 가치관의 차이는 삶이라는 개념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큰 갈등의 소지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 -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14:10
아니 슈발 존재는 본질에 우선하는데 내 채면때문에 내 존재를 지웠다고? 내 댓글의 우연성의 타자화하지마 새디스트자식아
ㅁㅁ(martysouth)2022-03-13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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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댓글은 존재한다
ㅁㅁ(martysouth)2022-03-13 02:25
답글
잘 모르는데 답글 달았다길래.. 혹시 너의 의도를 벗어나 게시글 작성자의 권한으로 너의 기록을 타의적으로 통제한 나의 행동이 너의 정서적인 충격을 의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양해와 이해를 구함 - dc App
실존주의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책을 못 봤고, 요즘 나무위키 퀄리티가 괜찮으니 참조해서 묻자면, 1. '실존주의'라는 명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생성되었다. 2. 실존주의자로 스스로를 지칭하는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작가나 철학자들'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맞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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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2026-07-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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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신의 체면을 위해..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22
모가?
익명(221.159)2022-03-13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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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으니까 자유롭게 답글 달아주면 댐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21
답글
여기에 ㄱ.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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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먼일 있냐? 아랫댓이 왜저럼?
일단 본격적인 용어 사용은 전후 사용하는 것은 맞으나 그것이 개념화 되지 않은 채 의미상으로서의 사용은 그 이전에도 있었음 유명한 도스토옙스키나 셰스토프와 우나무노 카프카등 기존에 작가나 예술가들이 이런 기원의 역할을 했음은 분명 그렇다고 용어사용 이전에 실존적 사고는 실존주의가 아닌것은 아님, 실존주의자라는 명칭은 본래
익명(221.159)2022-03-13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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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 모른다길래 혹시나 체면을 위해서 삭제해줌 지금 '실존주의적'이라고 불릴 만한 고통과 반응을 쟤를 통해 관찰하는 중임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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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내용이 길다면 천천히 답글 달아도 됌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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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긍정적인 지칭은 아님 초기에 사르트르도 싫어 했음, 카뮈는 더 그랬고 심지어는 실존철학의 밑 바탕이 된 존재철학의 하이데거는 자신을 존재주의자라고 칭함 이것은 아랫댓이 말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내용과는 결이 다름 하이데거는 사르트르의 글을 읽고 자신의 철학을 오해했다고 깠음, 현존재와 자아의 관계도 그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의 예비고찰에서도 드
익명(221.159)2022-03-1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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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ㄱㄱ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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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번호 붙여서 서술 부탁함. 아무래도 댓글 체계가 정보를 교환하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조금 불편한 감이 있어서 - dc App
설야(clairinside)2022-03-1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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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차이는 형이상학을 무너뜨리냐 염두해두냐의 차이임 하이데거가 니체를 재발굴할때도 그를 유럽 최후의 형이상학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함 이에 반해 사르트르는 형이상학적 본질을 부정함 앞에서 언급한 본질에 앞선다 라는 내용이 포인트임, 아무튼 그렇게 정리해도 됨 실존주의의 갈래에 들어가 있는 얘들은 자기 스스로 실존주의 자라고 지칭하기도 싫어했음
익명(221.159)2022-03-1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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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튼 다 맞는 말
익명(221.159)2022-03-13 02:40
답글
일단 질문 1. 2. 에 대해서 대충 맞는 말이라고 결론 지어준 것? - dc App - dc App
'ㅁㅁ'을 존중하지만 안타깝게도 첫댓글에서 잘 모른다고 한 시점에서 내 질문에 대한 너의 대답 가능성을 좀 낮추어 보게 됐음. 부디 여기 댓 달지 말고 너가 단 댓글에 달아주기를 부탁드림. - dc App
해설서?, 먼데?
미안하지만 잠깐 제 3자는 신경쓰지말고.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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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고 오겠음
기달
오키 그럼 난 질문 잇고 있겠음. - dc App
왔다
되게 이 안에서는 역설적인 네이밍이네. 어쨌든. - dc App
3. 너의 처음댓글: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개념화 되지 않은 채로 이미 실존주의는 존재했다. 4. 하이데거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 5.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6. 실존주의의 주 특이점은 형이상학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 dc App
7. 형이상학의 구체적인 의미 자체에 대한 기술이 필요함.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 인간의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전적인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 dc App
ㅇㅇ, 무너뜨린다는 것보다 본질의 부정이 가까움
귀찮겠지만 정확한 상호 간 언어 소통의 사용을 위해서 너가 언급한 '본질'의 개념을 정의 부탁함. - dc App
이데아나 물자체, 국가와 정치(2차 세계대전에서의 파시즘이라 이해 바람) 이성적인 본질과 같은 객관이성임 실존주의는 이런 객관에서의 탈피임 인간 개개인의 주관을 살리면서 앞서 말한 이러한 가치가 인류에게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들을 해체하고 비판했음
이해함?
오키 ㄱㄷ - dc App
"인간 모두가 행복과 이상적인 삶을 위해서 지향해야할 관념" 이라 정리하자
중요한건 이것이 객관, 하나란 사실임, 실존주의는 이것이 복수이고 인간 개인들 마다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말함
8. 너가 재정의한 현재 상황의 언어로써의 '본질'이란 이데아나 물자체, 파시즘 등을 위시함. 9. 이것은 형이상학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분류하자면 절대적 가치관이라고 재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0. 절대적 가치관이란 '집단 및 가치관적 관점에서 명백하게 옳은 것:진리 (예시:쟤는 적 우리는 아군)는 있다는 사고체계로 재정의하겠음. - dc App
(있다:존재한다) - dc App
끝남?
이해함? - dc App
맞음 그런식으로 정리해도 될 듯
그러면 한번 더 달리겠음 미안하고 고마움 - dc App
네~~
ㅇㅇ, 앞서 말한 세계대전은 실존주의가 본격적으로 탄생하게된 계기이기도함
11. 그렇다면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사용되어지는 문장-(실존이 본질에~)은 정확히 서술할 때에, 개인적 자아에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집단 및 형이상학의 절대적 가치관과 실제적 현실과의 괴리(예시:세계 2차대전-기존 가치 개념의 전복이 일어난 사건)에서 기인한다고 서술할 수 있음. (번호 수정) - dc App
이것이 뭐임?
12. 이것(11.)은 아직 '실존주의'라는 개념이 명명되지 않은 과거에 존재했던 실존주의적 사상 및 예술에 대해 상호 근거가 될 수 있음. (번호 수정) - dc App - dc App
이해했다면. 혹시 질문이 있다면 답변 후 이제 비판으로 달리겠음 - dc App - dc App
일단 이런 절대적 실체는 인간 개인이 태어나기전에 사회에 이미 존재해 있었던 가치임 엄밀히 따지자면 방금 태어난 자가 만들어 낸 것이라 하기는 어렵고 상호근거는 이전에 실존주의와 이후는 조금씩 다름 학문적 체계라 할까 그런데 그렇게 볼수도 있는듯
1분만 타임. - dc App
비판?
잠온다, 3시 넘어서 갤질할 줄은 몰랐음
ㅇㅇ. 비판이 아닐 수도 있고. 애초에 실존주의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은 이유이기도 함. - dc App
빠르게 작성하겠음. - dc App
13. 실존주의는 사상(철학)보다는 정서(감정)에 가깝다. 14. 실존주의는 기존의 절대적 가치관과 현실적 사건의 단절과 괴리에서 느끼는 개인의 정서적 충격에서 기반하기 때문이다. 15. 그러므로 하이데거가 자신을 실존주의자라고 명명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옳다. 계속 달림. - dc App
16.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것은 네가 재정의한 본질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따져본다면 그릇된 명제이다. 17.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데, 진화론적 관점에서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 dc App
18. 개인의 가치관의 책임과 주체성이 그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실존주의의 메세지는 1)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사회적 인지의 관점 4)사회 문화적 관점에 의해서 논박당한다. - dc App
19. 개인의 자아-(가치관)은 이러한 4가지의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 자체적(혹은 내부적)으로 '창조'될 수 없기 때문이다. - dc App
20.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그릇된 명제이며, 부분적으로라도 옳은 부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조차도 <옳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자아는 어떻게 성장하였는가?>라는 모순성을 지니게 된다. - dc App
21. 그러므로 다시 한번, 실존주의는 '사상'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감정'또는 '정서'에 가깝다. 22. '개인의 가치관을 개인의 주체에 맡겼다는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실존주의의 영향력은 단지 문화적인 '사조'에 불과하다. [이것은 근거가 희박하나,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명제] - dc App
23. 일단락: 실존주의는 사상이 아니며, 가치관과 현실의 단절에서 발생하는 감정 혹은 정서이다. 24. 이러한 관점에서 실존주의를 관찰했을 때: 실존주의의 사상적 의미를 부정함으로서 실존주의의 가치가 퇴락하는 것은 아니다. - dc App
25. 오히려 철학(논리적 추론에 기반한 가설 혹은 진리-)가 광범위한 발전을 바탕으로 한 과학에 잡아먹히는 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 혹은 생명에게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은 '정서'이기 때문이다. - dc App
26. 그러므로 실존주의가 '사상으로 인식되어지는 허위'를 벗고 나면, 오히려 실존주의는 개인 간 정서의 교감 및 공감, 혹은 이해와 앎을 목표점으로 지향하는 정서적 사고관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바른 마음'에서 언급된 논리적 소통의 한계점을 돌파할 수 있는 지향점이 될 수 있다. - dc App
22.의 후설; 22-1: 실존주의의 대두가 실제적으로 사상으로서의 실존주의가 직면하는 사회적 문제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현시대의 문제점들을 볼 때 사상적 실존주의의 영향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거나 극히 미미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 dc App
22-2: 이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애초에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성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6~20 참조) - dc App
27. 이것은 정서로서의 실존주의라는 실존주의 개념의 재정의이며, 사상으로서의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 dc App
28. 정서적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 dc App
끝. - dc App
글쓴이가 본질이라 말하고 있는 것들은 경향성이나 구조 정도의 의미같고, 실존주의가 공격하는 본질은 그것의 표현으로써의 본질임. 인간이 사물을 유사성에 의해 구분하거나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다면, 혹은 그러한 구조를 지닌다면, 그것이 표현되었을때의 사물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 본질임
단어가 명확하지 않아서 잘 정리되지 않지만 뉘앙스 해석으로 보자면 사물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본질;가치관을 공격;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사회적 구조성 자체에 의해서 논박당한다는 게 내 생각에 가까운데 일단 애초에 지금 뉘앙스해석이라 큰 의미는 없는 것 같기도 - dc App
이게 디시식 댓글 논의의 맹점인데, 1)사용하는 단어의 정확한 상황적 의미를 정의하지 않았고 2) 그 단어를 사용하는 근거를 들지 않았고 3)자신의 생각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통한 주장이 없어서 그냥 인상적인 상호해석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아무튼 틀렸다'라는 명제 밖에 없음 ㅇㅇ - dc App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문득 빠르게 떠올린 거라서 틀린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소통으로는 아예 대화에 남는 게 없음 - dc App
여튼 모두 좋은 일요일 되셈 - dc App
인간이 판단을 행할때, 대상과 이성의 관계를 선험적인 형상인(이성)에 대해 질료인(대상)이 수동적으로 관계, 매개하여 본질로 물화한다고 이해한다면 님 논변은 정당할 수 있음. 가령 인간의 본질의 집합에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 현존하는 사회는 그 경향을 매개로 변양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쉽게 말해 현실 사회가 '사회에 대한 이데아'의 복제품으로써의 사회라면, 그러한 공동체 구성으로의 의지는 그 자체로 실존적 개별자에 대한 논박이 될 수 있음.
근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 우리의 사물에 대한 판단은 주어진 대상에 대해 단순히 본질적인 형식 속에 대상에 대한 이해의 형식을 매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대상을 통해 역으로 우리가 변화를 겪기도 하고 그 변화를 바탕으로 이해를 하기도 하는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함을 통해 이뤄짐. 가령 생물들의 종種에 대한 관념은 개별 종에 대한 형식이 우리 안에 내재돼있다가 해당 종의 생물에 대한 경험으로 현현하는게 아니라 유사한 이미지의 것들이 반복적으로 주어짐을 통해서 유비라는 인간의 이해의 형식, 즉 우리가 유일하게 본질이라 부를 수 있는 구조를 통해서 이해됨.
가능하면 번호로 부탁함 - dc App
근데 실은 이런 본질 개념은 스피노자의 본질 개념의 인용에 불과하고, 다시 실존주의가 비판하는 본질 개념으로 돌아가면, 위에서의 유기적인 관계함 속에서 이뤄지게 되는 사물에 대한 관념은 그것의 발생 방식으로 인해 자의적인 것으로밖에 생각될 수 없고, 그러한 자의적인 관념들 중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정당화시키는, 다시말해 자신을 본질화 하는 차이는 권력관계를 통해서만 나타남. 그리고 이러한 권력관계는 권력이란 단어의 사용으로부터 실존적으로만 이해는 것임을 알 수 있음. (왕의 권력은 왕의 본질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약관계의 실존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고, 국가의 권력은 국민의 실존을 통해서 이뤄지듯)
16~20은 이해가 됌? - dc App
님이 18. 19. 20. 등에서 언급하는 개인의 가치관이 내부로부터 창발할 수 없다는 점은 이러한 관계(권력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본질의 정의의 관계)를 통해 이해될 수 있음. 그러니까 1)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사회적 인지의 관점 4)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관념 간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해질 수 있는거임. 마지막으로 이 모든 논변은 너의 비판 속 자기모순을 내 이해방식대로 드러냈을 뿐이고, 실존주의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담고 있지 않음을 밝힘.
ㄱㄷㄱㄷ - dc App
그냥 유희라고 생각하고 접근해보겠음 - dc App
1. 인간이 판단을 행할 때, 대상과 이성의 관계를 객체와 주체로 놓고 보면 글쓴이의 논변은 정당할 수 있다. 2. 인간의 본질 집합에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 (너무 ‘철학적’인 말은 쉽게 풀어서 쓰겠음) 현대 사회가 그러한 경향을 매개로 하여 구성 되었다면, 그러한 공동체 구성 의지는 그 자체로 실존주의적 개인 자아에 대한 논박이 될 수 있다. 3. 그러나 2.는 현실 사회가 사회에 대한 이상적 이데아의 복제품일 때 성립한다. 4.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5. 우리의 사물에 대한 판단은 대상에 대해 단순히 본질적인 형식-(사회적 공동체 구성을 위미하는 것으로 추정됌)으로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상호 작용하며 유기적으로 관계함. 6. 우리-(자아)와 대상 간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돌아가면, 사물에 대한 관념-(사고)는 는 그것의 발생 방식으로 인해 자의적인 것으로밖에 생각될 수 없다.
7. 그러한 자의적인 관념에서 자신을 본질화 시키는 자아는 권력관계를 통해서 나타난다. 8. 이러한 권력관계는 권력이란 단어적 사용으로부터 실존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10. 18~20에서 언급된 개인의 가치관이 개인 자아 내부로부터 창발될 수 없다는 점은 이러한 권력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본질의 정의의 관계: 이해 불가능한 문장 구조 ㅈㅅ;;>를 통해 이해된다. 11. 그러므로, 1) 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 사회적 인지의 관점 4)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관념 간에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이게 순차적으로 접근한 님의 논리입니다.
이제 반박 들어가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그냥 유희로 생각하기로 해요.
1.에 대한 반박- 사회심리학 입문 총론서만 읽어본 입장으로써 말하자면, 1) 진화론적 관점, 2) 사회적 학습의 관점. 3) 사회적 인지의 관점 4) 사회 문화적 관점 이 4가지 관점은 대상과 자아를 일방적인 관계로 놓지 않습니다. 책 내용을 다시금 ‘인출-떠올리기’할 겸 설명하자면, 진화론적 관점은 진화에서 비롯된 본성적인 성질에 집중하는 것이구요. (이기성, 이집단성을 예시로 들 수 있어요.) 사회적 학습은 ‘보상과 처벌에 따른 과거의 학습 경험에서 사회적 행동이 비롯된다고 봐요, 사회적 인지는 특정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경험과 사회적 상황의 상호작용에서 사회적 행동이 비롯된다고 보지요. 사회 문화적 관점이란 말 그대로 사회의 구성원이 사회의 문화에 사회적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이로써. 님의 1.-전제부터가 성립하지 않음, 혹은 사회 심리학의 기본 4가지 관점을 알지 못하고 게셨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에 대한 반박- 공동체 구성의지-공동체 구성 만으로 인간의 이기적, 이집단적인 본성을 뭉뚱그러뜨리면 안됩니다. 본문에는 제가 17에서 가볍게 한가지 만을 논한 후, 18에서 사회심리학적인 4가지 관점을 들어 총체적인 의미를 드러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마 1.에대한 반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사회 심리학적 관점에 익숙하지 않으셔서 공동체 구성의지에만 의미를 한정하셔서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류이며, 저 만을 독자로 상정하고 댓글을 단 저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3,4,5에 대한 반박-2.가 <현실 사회가 사회에 대한 이상적 이데아의 복제품일 때 성립한다>는 명제에 대하여 근거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5.는 이미 1.에 의해 논박되어져서 논점에서 이미 멀어지게 된 논변이지만, 대상과 자아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립하지 않을뿐더러 성립하지 않는 사례로 3.의 근거를 드는 것은 ‘반증 불가능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6.의반박- 그것의 발생방식으로 인해 그렇게 생각된다는 것은 설명이 충분치 않으므로 ‘순환 논증의 오류’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의적인 성격을 논하는 것은 논점에서 벗어난 'shoehorning' 아닌가요?
7.의 반박- 권력 관계에 대한 언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관계라는 개념은 지금 명백히 논점을 벗어나 있어요. ‘shoehorning'입니다. 그리고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논점을 근거없이 참으로 가정하는 오류에서 시작된 추론이에요.
8.의 반박-마찬가지로 ‘shoehorning'입니다. 그리고 근거가 언급되지 않음으로 ’논점을 근거없이 참으로 가정하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10.의 반박-‘shoehorning' 입니다. 권력 관계라는 개념이 지금 논점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11.의 반박-마찬가지로 ‘shoehorning'입니다. 그리고 권력관계가 형성된다는 ‘shoehorning'이 제 주장의 자기 모순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렇게 님의 논리를 오류의 유형을 들어 반박하기는 했습니다만은, 어차피 제가 생각하는 정서적 실존주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표현되어서도 안되며, 말이 많을 필요도 없는 개념이에요. 아무래도 제 생각이다보니 독서갤러리의 취지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다른 분들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분량의 독서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으니.
반박을 나눈다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본질의 자의성에 대한 언급은 곧 본질이 본질 그 자체가 함의하는 절대성을 상대성으로 격하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음. 그리고 내 논변은 일정부분 철학체계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 없이 논리학을 들이밀면서 오류 취급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임. 그리고 내가 사회 심리학에 익숙치 않은 정도를 떠나 완전 무지한건 사실이지만 님이 설정한 몇가지
키워드 속에서 나는 분명히 권력관계들이 보임. 가령 진화론의 기본 원리인 생존경쟁은 필연적으로 자연상태에서 권력관계가 형성됨을 전제함. 이집단성, 이기성 등은 말할 필요도 없음. 사회적 어쩌고들에 대해선 전부 사회-개인의 권력관계가 전제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음. 이러한 구조 속에서 권력은 권력의 의미를 마냥 추상적으로 넓혀야지만 찾아지는게 아니라
권력을 하나의 형식으로 보았을때 비로소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것임. 그리고 공동체 구성에 대한 나의 비유는 정말 사과나 의자에 대한 비유와 같은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비유를 위한 비유의 하나일 뿐임. 나는 이 비유로 님이 전제하는 철학적 기반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이데아같은 개념적인 단어 외엔 줄기를 못잡은듯 보임.
님의 주장은 존중합니다만, 논리 없는 철학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 dc App
님이 요약한 1.에 대해 수정을 가하자면 단순히 대상-이성을 객체-주체로 봤을때 논변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속에 이미 모든 사물에 대한 참인 관념의 형식이 내재되어있고 사물과 마주침으로 그 관념이 현현한다는, 대상이 그저 스위치를 킬 뿐인 수동적인 역할만을 일임받을때 글쓴이의 논변이 정당화된다는 의미였음
철학이 논리적으로 발생한다는 생각 자체가 논리와 철학 둘에 대한 이해를 모두 벗어남. 님이 지시하는 논리는 실증성에 가까울거임. 철학을 비롯한 모든 기초학문은 내재적으로 발생하지, 논리적으로 발생하지 않음. 아니, 논리적이란 말 자체가 내재성을 전제함. 고전적인 비유를 들자면, 기하학의 논리성은 내재적인 선결성을 통해 발생하는 것처럼 말임.
같은 의미로 기하학의 정의, 공리에 대해 실증을 요구할 수도 없음
그렇군요.. 이런 사소한 가치관의 차이는 삶이라는 개념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큰 갈등의 소지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 - - dc App
아니 슈발 존재는 본질에 우선하는데 내 채면때문에 내 존재를 지웠다고? 내 댓글의 우연성의 타자화하지마 새디스트자식아
내 댓글은 존재한다
잘 모르는데 답글 달았다길래.. 혹시 너의 의도를 벗어나 게시글 작성자의 권한으로 너의 기록을 타의적으로 통제한 나의 행동이 너의 정서적인 충격을 의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양해와 이해를 구함 - dc App
즐 타인은 지옥임이 만천하에 드러낫다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에 의해 실존주의적 고통을 겪고 있느냐고 질문. - dc App
너의 주체성에 나의 자유가 제약받고있음을 느껴
'자유'라는 것은 어떤 개념이지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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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을 위해.. - dc App
존중은 개뿔 ㅋ
ㄴㄴ 미안합니다. 좋은 밤 되시기를. - dc App
병신 지름길 백날봐라 이차서적도 아니고 요약한거 읽어서 퍽이나 이해하겟다 기껏해야 줄거리지 자세부터가 이런데
잠깐 차단했다가 대화 끝나고 풀겠습니다. - dc App
보통 질문 통해 접근한 후 흥미가 생기면 서적으로 읽어보는 편이에요.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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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책을 못 봤고, 요즘 나무위키 퀄리티가 괜찮으니 참조해서 묻자면, 1. '실존주의'라는 명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생성되었다. 2. 실존주의자로 스스로를 지칭하는 '실존주의자로 분류되는 작가나 철학자들'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맞음?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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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신의 체면을 위해.. - dc App
모가?
위에 있으니까 자유롭게 답글 달아주면 댐 - dc App
여기에 ㄱ. - dc App
위에 먼일 있냐? 아랫댓이 왜저럼? 일단 본격적인 용어 사용은 전후 사용하는 것은 맞으나 그것이 개념화 되지 않은 채 의미상으로서의 사용은 그 이전에도 있었음 유명한 도스토옙스키나 셰스토프와 우나무노 카프카등 기존에 작가나 예술가들이 이런 기원의 역할을 했음은 분명 그렇다고 용어사용 이전에 실존적 사고는 실존주의가 아닌것은 아님, 실존주의자라는 명칭은 본래
아.. 잘 모른다길래 혹시나 체면을 위해서 삭제해줌 지금 '실존주의적'이라고 불릴 만한 고통과 반응을 쟤를 통해 관찰하는 중임 - dc App
댓글 내용이 길다면 천천히 답글 달아도 됌 - dc App
그리 긍정적인 지칭은 아님 초기에 사르트르도 싫어 했음, 카뮈는 더 그랬고 심지어는 실존철학의 밑 바탕이 된 존재철학의 하이데거는 자신을 존재주의자라고 칭함 이것은 아랫댓이 말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내용과는 결이 다름 하이데거는 사르트르의 글을 읽고 자신의 철학을 오해했다고 깠음, 현존재와 자아의 관계도 그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의 예비고찰에서도 드
쭉쭉ㄱㄱ - dc App
가능하면 번호 붙여서 서술 부탁함. 아무래도 댓글 체계가 정보를 교환하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조금 불편한 감이 있어서 - dc App
큰차이는 형이상학을 무너뜨리냐 염두해두냐의 차이임 하이데거가 니체를 재발굴할때도 그를 유럽 최후의 형이상학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 함 이에 반해 사르트르는 형이상학적 본질을 부정함 앞에서 언급한 본질에 앞선다 라는 내용이 포인트임, 아무튼 그렇게 정리해도 됨 실존주의의 갈래에 들어가 있는 얘들은 자기 스스로 실존주의 자라고 지칭하기도 싫어했음
무튼 다 맞는 말
일단 질문 1. 2. 에 대해서 대충 맞는 말이라고 결론 지어준 것? - dc App - dc App
드->드러남,으로 진짜 끝
ㅇㅇ 다 맞음
그러면 이제 진짜 질문을 시작할건데 ㄱㅊ?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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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하삼 근데 여기서하기에는 지저분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