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문장력이나, 작가의 의도, 소신에 대해서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논할 소양 자체가 없으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작하기에 앞서 한 마디 명확하게 해야만 할 것이 있다. '이 책은 대단하다.'


저자의 자전소설격인 책인데, 2권에서는 육아 문제와 부부 사이의 갈등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고뇌, 기억들이 담겨있다. 이 책의 스토리 라인은 그다지 색다르다거나, 경이로운 내용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잘 읽힌다.'


작중 저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환경, 가치관에 대해서는 나와 너무나 이질감을 느낀다. 나는 조금 구세대적인 발상에 갇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소 유교적인 가치관에 많은 의의를 두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그와 전혀 다르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장기간 동거하던 여자를 자연스럽게 이별하고 새로운 여자와 만나 결혼을 하는 점 부터가 그러하다. 20대 후반을 맞이하고 있는 나는 아직도 이성과의 관계가 전혀 없었고 연애 경험도 없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연애 관련 소식들은 대부분이 늘 불안과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있고,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절대 다수임을 대학에 다니면서 많이 보아왔던 점 역시 큰 비중을 차지했으리라 판단한다.


작가도 역시,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아내와의 갈등에 대해 스스로 끝없이 고뇌하고 있다. 이런 류의 장르는, 개인적으로 나와 정말 맞지 않아서 손을 대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은 출판사를 믿고 읽었다.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와 내가 좋아하는 우수한 서적들을 많이 발간해 온 출판사로써, 그 이름은 무게가 있고 신뢰를 가지게 하는 힘이 있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한길사의 오프라인 모임 회원이 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저자는 나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잘 생긴 외모, 아버지와의 갈등, 여자 문제로 삶의 상당 부분을 고뇌하는 부분,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고 디테일한 기억과 그에 대한 묘사.

나의 경우 상당히 유감스러운 외모, 부모님에 대한 존경, 여자 문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분, 어눌한 표현력.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척이나 재미있었다는 점은 확신한다. 놀라울 정도의 묘사와 표현력으로 독자를 잡아 끄는 흡입력이 있고 담백한 문체가 특징이다. 번역가 손화수 선생님께서 노르웨이어는 물론, 우리말에도 아주 조예가 깊으시다는 부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아내인 '린다'의 횡포와 정신분열 증상, 그에 따른 발작 부분들을 보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내 주변 친구들이 가끔 겪기도 하는 이상한 여자들과의 문제로 인한 고민... 작가는 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는 점에서, 나와 또 다르다. 한 편으로는, 나와 거의 정 반대의 조건과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깊이있고 사실적으로 들여다보며 감상하고, 간접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했다. 실제로, 연애나 가정사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세밀하게 다 이야기 해 주는 지인이 주변에 많은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더구나 이 책의 분량만큼이나 이야기 할 수 있고, 이처럼 정확한 기억과 표현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장 생각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책의 저자가 끝없는 투쟁을 이어간 것 처럼, 나에게도 나 나름의 투쟁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와는 전혀 다른 문제일 가능성이 크지만. 방향은 달라도,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투쟁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작가의 정신을 일부는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후 직접 행동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이다. 첫째가 일기. 작가의 이처럼 사실적인 기억과 고찰은 아마 단기간에 꾸며내거나 생각해내기 어려운 일들이라 판단되며, 나는 그가 일기를 평소에 매우 성실하게 써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 매우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둘째는 독신.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신으로 살 나의 계획을 거의 굳히게 되었다. 특별한 반전이 있지 않은 한에서는. 문학을 읽는 독자는 자신마다 느끼는 부분이 분명히 다를 것이고, 나의 견해가 깊고 고상한 통찰은 아닐지라도 나 자신이 스스로 느낀 점이라는 점이 분명하기에,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71p

린다의 불안과 걱정은 내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금의 갈등이라도 생기면 나는 아무 일도 못 해내는 사람이다. ...(중략)... 그건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일이다. 그런 상황이 눈앞에 닥치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 구토를 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린다.


#118p

나는 이 나라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1p

린다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시기에 자기 한 몸도 간수할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안좋았다.


#402p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뿐이다. ...(중략)... 하지만 린다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니, 어쩌면 린다는 그러길 원하지만 아이 둘을 보는 일이 힘에 부쳐 감당해낼 수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말다툼과 갈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만약 린다 때문에, 린다의 요구 때문에 내가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린다를 떠날 수도 있다. 간단한 일이다. 린다도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며 나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있다.


특히 402 페이지의 이 부분은 나도 지극히 공감했다. 때때로 피해망상이나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는 매우 많다. 나의 경우도, 내가 추구하는 직업적 가치가 훨씬 우선이기에 이 부분은 공감했다. 더불어, 작중 담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점 역시 공감이 크다. 나는 담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 개인의 리뷰가 분명히 누군가에게 반발을 일으킬 수 있고, 다른 리뷰들이나 수준 높은 서평들에 비해 보는 각도도 많이 다르고, 글의 수준도 낮다는 점 역시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다양한 견해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나는 출판사나 나와 반대되는 성향의 독자들에게 내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