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ceb8473b5836bf43cee98a518d60403f8ce683d8b2afa7b


이걸 단순히 반전소설이라고 말할 수 는 없을거 같다.

작중에서 전쟁에 대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오히려 책에서 얻었던 것은 어떤 아이러니와 우스꽝스러움이었다.

소설속 인물들 각자가 푹 빠져 있는 그들의 이야기, 삼총사의 용감한 이야기나, 발렌시아의 전쟁영웅에 대한 로망이나, 머레이의 대의를 품은 영웅적인 일화까지,

책에서 결국 그것들의 결말을 봤을때 그것들은 그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대의도, 로망도, 영웅적인 일화들도 전부.

그리고 그들이 그것이 그저 이야기일 뿐임을 모른 채 너무도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부터 그 감정이 피어나는 것 같다.


지구인의 이야기란 것은 일차원적이다.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의미들을 한개씩 차례로 들으며 과거에 들었던 것들로 미래에 나올 이야기를 예측한다.

그리고 그런 일차원적인 이야기에서만 해석이 존재하고 예측이 존재하고 의도가 존재하고 오해와 부작용이 있고 드라마가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이것이 일어나서 저것이 일어난다. 이런 인과론적 시각은 지구인의 시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와 드라마에 푹 빠져서 여기서 서로 오해를 하고 죄를 저지른다.


어린이는 시작과 끝을 다 알고 있는 동화를 계속 읽어달라고 조른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왜 계속 읽어달라고 물어보면 그냥 재밌으니까, 이런다.

어린아이는 그 속에서 영웅이 되기도 전사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는 시작과 끝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읽을 때는 자기의 역할을 즐길 뿐이다.


1장에서 드레스덴 대학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군인들은 어린애들일 뿐이었다고. 거기서 피해자나 가해자를 찾아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어린아이인 것을 잊어버린 어린아이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두했고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됐다.

그리고 이야기 안에서 예측을 하고 의도를 담은 행동들을 하고 오해와 부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폭행하고, 독가스실에 넣고, 대학살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구인의 방식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의 관점은 그 반대인 목적론적인 관점이다.

그들은 시작과 끝을 알고 있고 그들의 이차원적인 그림에서는 어떤 오해도, 드라마도 없다.

대학살이나 새의 지저김이나 모든 사건들은 동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들은 이야기속에 빠지는 것이 아닌, 그저 관찰자일 뿐이다.

이것은 역사속에서 소위 '깨달은 자'들의 사고방식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트랄파마도어인들의 시각과 지구인들의 시각을 동시에 경험한 빌리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풀어진다.

작중에서 누가 죽거나, 비극적인 대학살이 일어남을 서술하며 독자가 이야기에 빠지려고 할 때 '뭐 그런거지'라는 말을 통해 독자를 거기에서 건져낸다.

그러면 우리는 인과론적, 목적론적 두 관점이 존재하는 시각에서 글을 읽을 수 있다.

1장에서 시작과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이런 관점을 독자에게 부여해주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특별한 서술방식을 통해 우리의 관습과 새로운 관점과의 충돌을 경험한다.

인간의 방식이 오해와 대학살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편한 것에 눈감아버리는 트랄파마도어인의 행동에 뭔가 잘못됨을 느낀다.

'뭐 그런거지'라는 발화를 통해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면서도 대학살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낀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흔들리고 시각이 확장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