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수상님께,
다시 톨스토이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육십 주 전에 저는 수상님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작가가 3년 후인 1889년에 발표한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선택했습니다.
아주 다른 작품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문학의 보석으로 그 안에는 사실주의가 자연스럽게 숨쉬고, 등장인물들이 무척 구체적이지만 보편성을 띠며,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되고, 서정성이 소박하면서도 심원하며, 삶의 무상함이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그려져서, 한마디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완벽하지만,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불완전합니다.
예컨대 소설의 거의 전부가 주인공 포즈드니셰프의 끝없는 말로 채워져서, 배경-두 승객이 기차로 여행하며 나누는 대화-이 거의 부각되지 않습니다.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화자는 멍청히 앉아 듣기만 하며, 자신에게 쏟아진 칠십오 쪽의 장광설을 머릿속에 심어 넣습니다. 플라톤의 대화들 중 하나만큼이나 무겁기만 합니다.
더구나 마음에 새길 만한 지혜도 거의 없습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사랑과 섹스와 결혼에 대한 긴 푸념입니다.
간혹 주제에서 벗어나 의사와 아이들에게 퍼붓는 비판도 있지만, 아내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의 제정신이 아닌 질투심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수상님,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승객이 "내가 집사람을 죽였습니다. 밤새 여행 해야 하니 그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저라도 그 사람의 말을 끊지 못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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