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똑같은 평론가들이 던지는 똑같은 비난을 나 혼자만이 받는 것은 아니다.
칭찬하는 귀절 가운데서도 나는 같은 필치로 쓴 다음과 같은 것을 항상 찾아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결점은 말하자면 소설다운 소설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같은 논조로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비평하여 주는 그 작가의 가장 큰 결점은 그가 평론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론가는 편견을 가지지 않고 선입감도 없이 어떠한 유파나 어떠한 예술가들의 단체에도 소속하지 않고서, 가장 대립적인 경향과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여러 기질들을 이해하고 식별하고 설명해야 하며, 그리고 또 가지각색의 예술적 추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소설을 만드는데 규칙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규칙을 무시하고 쓰인 이야기는 소설이라는 이름 이외의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져야 할 것인가?
총명한 평론가라면 이미 만들어진 소설과 가장 닮지않은 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가능한 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도록 자극해야할 것이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결국 독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부당하게 우리를 꾸짖거나 지나치게 우리들을 칭찬하는 그러한 결과가 생긴다.
독자는 한 책에서 자기의 천성적인 정신적 기호를 만족시켜 주는 것만을 찾기 때문에 작가에게 자기 자신의 취미에 맞는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서는 그는 이상주의적인 혹은 유쾌하고 방종한 슬픈, 공상적인, 혹은 실종적인 자기의 상상력을 즐겁게 하는 작품이나 귀절을 훌륭하다거나 「잘됐다」하고서 일률적으로 품질을 정해버리는 것이다.
재지를 가진 몇몇 선량들만이 예술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당신에게 가장 알맞는 형식으로, 당신의 기질에 따라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주시오」
예술가는 시도해본다.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평론가는 예술가의 노력의 본질에 의해서 작품의 성과를 평가해야만 하고 예술가들의 경향에 골몰할 권리는 없다.
한국 영화 평론계를 독점하는 한겨레 소속 씨네21 떠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