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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에서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하나 꼽으라면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선택하겠지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위대한 개츠비」를 선택할 거임. 딸랑 3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인데 4회독, 5회독 해가면서 독서노트를 2주 동안 썼다. 필사를 해도 이거보단 덜 걸렸을 것 같은데 ㅋㅋ
책을 알게 된 계기는 다들 그렇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소설 초반부에 이 책 언급만 몇 번이 나왔는지, 아마 「노르웨이의 숲」을 재밌게 읽은 사람은 한 번쯤은 이 책을 찾아봤을 것이다. 작중에서 나가사와가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마침 군대 안이라서 읽을 시간도 넉넉하겠다 나가사와 친구 조건이나 맞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즉흥적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 군 생활 통틀어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애매했다. 그렇게 유명할 만한 소설인지는 모르겠는데 재밌긴 했고, 무엇보다 문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안 읽을 수가 없었다. 묘사 하나하나가 너무 예술적이어서, 사건이 진행되지 않는 초반부는 그렇게 흥미로울 내용이 없었는데 다음엔 어떤 표현이 나올까 계속해서 읽게 되더라.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읽다가 특히 문체가 아름다운 부분을 보면 연신 감탄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정신없이 문장에 집중하며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책이 끝나 있었다. 사건이 진행되는 후반부에선 내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초독을 마치고 마지막 문장의 여운에 갇힌 채 꼬박 하루를 개츠비 생각만 하며 지냈다. 생각이 꽉 들어차 머리가 터질려 하길래 못 버티겠어서 다음 날 바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내가 읽은 책 중 재독과 초독의 느낌이 가장 다른 소설이었다. 문체는 초독 때 너무 신경 써서 봤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해 보였던 스토리 플롯에 주목하게 되었다. 결말이 어떤지, 내용이 언제 진행될지 알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각각의 구성요소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점차 바뀌었다.
생각나는 게 너무 많아 노트에 인상 깊은 구절과 함께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는 속도가 책 읽는 속도를 못 따라오더라. 한 번 더 읽었다. 이상하게 세 번째 읽어도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또 생각이 바뀌었고, 또다시 읽었고, 또다시 정리했다. 그렇게 2주 동안 책 한 권에 미쳐 살았다.
다섯 번 읽었다. 사실 세 번째부터는 책에 대한 생각도 별로 안 변한 것 같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게 많이 읽을만한 책은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저 2주 동안은 진심이었으니까.
닉 캐러웨이에 관해: 서술자? 주인공?
당시에는 새로웠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엔 하도 자극적인 작품이 많아서 그런가 스토리 자체는 딱히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인생역전한 졸부 제이 개츠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흙수저 주인공 개츠비는 금수저 데이지를 사랑했으나 신분 차이 때문에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럼에도 첫사랑을 못 잊어 온갖 불법적인 일을 다 하면서 돈을 당겨와 금의환향하고, 이미 유부녀가 되어버린 데이지를 꼬시다가 몰락하는 이야기다.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로 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닉 캐러웨이라는 화자를 사용해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피츠제럴드는 왜 주인공의 내면묘사를 할 수 있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닌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사용했을까? 작가가 이 책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개츠비의 일대기만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192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1920년대 고도성장기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대던 미국인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전쟁을 겪으며 그 내면에는 공허함이 깊게 자리 잡게 되었고, 도덕적 가치와 희망을 배척하며 환락과 사치만을 추구하게 된다. 전쟁이 불러온 이상에 대한 회의감이 아메리칸 드림을 박살 내버린 것이다.
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개츠비가 여는 파티이다. 개츠비는 토요일마다 파티를 여는데, 개츠비가 여는 화려한 파티에서 왠지 모를 지독한 공허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파티에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파티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그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애초에 다음 날이 되면 바로 잊어버릴 사람들. 그저 파티에 왔기 때문에 의무감에 대화하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다 보면, 이들은 소통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쓰레기 골짜기라는 배경을 서술한다. '땅과 그 위를 끝없이 떠도는 황량한 먼지의 소용돌이.'로 표현되는 이곳,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이곳에 산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불륜, 살인, 자살은 모두 이곳과 관련되어 있다. 미국이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던 그 물질적 풍요의 시대, 그 뒤편에 가려진 패악들을 저자는 이 쓰레기 매립지로 상징화한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와 쾌락에 도취되어 도덕성과 꿈을 내던져둔 채 나와서는 깨끗하게 발을 털고 누가 고상한지 대결하는 기만적인 사회를, 시시각각 발전하는 대도시와 빈민들이 방치되어 있는 쓰레기 매립지의 대비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뉴욕의 분위기와 개츠비의 서사라는 이 두 가지를 객관적으로 가까이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외지인, 외지인 중에서도 특히 도시물이 아직 묻지 않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외지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닉 캐러웨이를 창조했다. 닉은 어릴 적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람과 상황을 판단할 줄 알았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몹쓸 짓을 해도 속으로 경멸감을 드러낼지언정 결코 크게 화내는 법이 없다. 화자로서 최고의 조건과 성격이다.
닉이 개츠비와 같이 다닌 것은 9장 중 5장에 불과하다. 닉은 그저 개츠비의 플롯을 서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요 인물로써 주체적으로 상황에 참여하고 끊임없이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는 닉을 통해 객관적이고 아직 양심이 남아 있는 닉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상황과 상류층에 대한 경멸을 작품 내내 표현할 수 있었고, 개츠비에게 우호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실제로 작중에서 개츠비에게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은 닉뿐이다.
1922년 판단을 미루고 '원만한 인간'을 목표로 동부에 발을 내디뎠던 닉은 한 해가 채 지나기도 전에 자신의 고향 중서부로 돌아간다. 꿈이 죽고 기만밖에 남지 않은 동부에 환멸을 느껴, 아직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았을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개츠비의 죽음은 사회에 순응하려 했던 닉에게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면에서 닉 캐러웨이는 이 소설의 두 번째 주인공, 성장형 주인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제이 개츠비에 관해: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책의 제목이었다. 개츠비의 어디가 위대한가?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벌고 유부녀에게 불륜을 강요하는 인생 말종이 대체 어디가?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혐오스러웠던 사람들은 책임은 죄다 하층민들에게 넘겨버리고 깨끗한 척 고상한 척하는 상류층들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기만적인 모습 자체는 거짓으로 삶을 꾸민 개츠비나 이스트에그의 속물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날 때부터 부자에 상류층 확정이었던 이스트에그의 사람들에겐 밀주로 돈을 벌어 기만으로 신분 상승을 꾀한 개츠비가 더더욱 근본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에서 온 경멸감은 소설 내내 닉과 교류하는 이스트에그의 사람들 입에서 은연중에, 혹은 대놓고 표현된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 나도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에 반발심이 들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몇 번 읽어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 개츠비는 달랐다. 그저 파티를 전전하며 돈과 인생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는 이스터에그의 버러지들과 다르게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명확한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해 인생 역전을 했다.
물론 노력하는 방법도 잘못됐고, 무엇보다 데이지는 그럴 가치가 없었다. 내 생각에 이 책이 단순한 소설로 끝나지 않고 미국 최고의 고전으로 극찬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개츠비가 꿈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다 바쳤던 데이지라는 여자가 개츠비가 미친 듯이 노력하며 갈구한 것만큼 대단한 여자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을까? 물론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닉이 지적했듯 개츠비가 원했던 것은 현재의 데이지가 아니라 과거의 데이지에 더 가깝다.
신분 역전을 위해 노력했던 5년 동안 미친 듯이 사랑해왔기 때문에, 다른 꿈은 전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개츠비는 아무리 현실의 데이지가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자신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 꿈을 꾸는 사람은 없고 꿈만이 남은 셈이다.
작중 내내 나타나는 개츠비의 과거에 대한 집착을 보면,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자신의 순수했던 잃어버린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욕망을 투영했으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단순한 사랑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개츠비의 데이지에 대한 과도한 집착 역시, 놓쳐버린 과거의 미련을 채움으로써 망가진 자신의 현실에 대한 보상심리를 충족하려는 생각에서 어느 정도 기인했을 것이다. 범죄자가 할 법한 멍청한 생각이고, 어지간히도 추하다.
그러나 이루는 방식부터 잘못된 꿈임에도, 꾸며낸 꿈임에도 개츠비의 꿈에게는 진실됨이 있었다. 개츠비는 끝까지 자기가 꾼 꿈을 고수했으며, 자신의 모든 꾸며낸 모습이 박살 나 패망할 때조차 꿈을 잃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야말로 낭만이다. 꿈을 꾸는 것이 인류사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결국 실패한 개츠비를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도, 꿈을 꾸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법을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꿈 자체를 폄하하면 안 된다. 특히 꿈꾸는 것이 두려워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처럼 시간을 태우고 있는 이스터에그의 상류층들은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보면 개츠비는 이 소설에 나온 등장인물들 중 가장 인간답고, 그런 의미에서 가장 근본 있다. 나는 이것이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라고 느꼈다.
왜 재업?
모바일로 보니까 글이 이상하게 나와서,,
좋은 리뷰 잘읽었어. '아메리칸 드림은 꿈 속에서나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드림이라 불린다.' 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위대한 개츠비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봤어. 데이지는 그냥 여자라기 보다는 개츠비가 잡으려는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러번 읽어 본 사람은 역시 다르네.
나는 오히려 몇 번을 읽어도 개츠비와 데이지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감을 못 잡았음. 독서록 쓰면서 생각 정리를 하면서야 겨우 인물들이 뭘 의미하는지 개인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더라. 내가 당시 미국 시대상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 것 같아서 배경지식이 중요하단 걸 실감함..
글쎄 난 개츠비의 위대함은 조롱의 의미로 느껴짐. 피츠제럴드가 정말 개츠비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great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면, 왜 개츠비의 최후를 허무한 죽음으로 끝냈을까. 난 개츠비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이자 허황된 목적을 꿈꾼 사람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짐. 개츠비의 순수한 꿈에 대해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평가한다면, 그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것임. 개츠비의 순수함이 뭐가 됐든 그의 민낯은 범죄자에 불과함
여담으로 잃어버린 세대에 대해 어이없는 것이 유럽계 국가도 아니고 미국이 '잃어버린 세대'라는 표현을 쓰는 건 ㄹㅇ 도둑맞은 가난임.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공장 다 부서지고, 그 파급효과로 꿀빤 게 미국임 1920년대는 미국 최대의 경제호황기지. 심지어 전쟁에 오래 참여한 것도 아님
피츠제럴드가 개츠비를 좋아한다기엔 죽음이 너무 허무하긴 했어. 그래서 나도 고민을 좀 해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에서 개츠비의 죽음은 희생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죽은 거니까,, 위대함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개츠비의 죽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함,,ㅇㅇ
나도 조롱의 의미로 봤어. '아메리칸 드림을 잡겠다고? 범법행위를 불사하고라도 잡겠다고? 아이고 위대하시네 그려' 뭐 이런 느낌?
피츠제럴드는 그 자신이 낭만적인 사람이었고 낭만 이면의 환멸도 이해하는 작가였음. 위대한 개츠비가 조롱조라는건 저자의 의도는 아닐거 같다. 애당초 그 제목 자체가 편집자가 붙인거긴 하다만... ~는 범죄자에 불과함 / 결말에 허무하게 죽었으니까 작가가 비판적인 것이다 이건 너무 평면적인 독해고
글쎄 이미 작품의 초반부나 극후반에 보면 개츠비의 낭만성을 긍정하는 듯한 언급을 하는걸 그리고 개츠비를 보며 고작 범죄자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로쟈는 도끼 살인마에 험버트는 아동성범죄자 정도로만 평가할 수 있겠네.. 이건 문학이야 실제 사건도 아닌데 무슨 냉정한 판단임; ㅋㅋㅋ
위대한이란 수식어에 대해 말하는데 로쟈가 왜 나옴. 죄와 벌 제목이 위대한 라스콜니코프냐?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것임. 개츠비의 순수함이 뭐가 됐든 그의 민낯은 범죄자에 불과함" 라고 말했길래 로쟈랑 험버트가 나온거임
개추. 진짜 공감됐음ㅋㅋ 개츠비의 마지막 부분 묘사가 진짜 모든 낭만을 집약시킨 부분이라고 생각함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톰을 좋아했던 과거 부정하라는 장면이 생각나네. 현재 데이지에게 과거 데이지를 계속 찾은듯..마치 순수한 열정이 가득차 있던 중위 개츠비를 찾듯이.. 아무튼 개추 - dc App
그 부분이 ㄹㅇ 진짜 닉이랑 개츠비랑 '과거를 돌릴 수 없다구요? 전혀요!'하면서 말싸움한게 오버랩돼서 역대급으로 인상깊었음
이게 핵심이지. 위대하다는 말을 개츠비에 대한 조롱으로 읽으면 그 유명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설명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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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이거 방금 다읽었는데ㅋㅋㅋ 재밌게봣다
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