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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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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장소, 이를테면 락 페스티벌 등에 참석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느껴본 적이 있을 텐데, 사람들 속에서 이 군중은 일종의 도취를 불러 일으키고 스스로와 스스로의 지금 이 순간에 무언가 특별한 감각을 부여해준다. 동시에, 그 군중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상태로 군중을 보면, 세상에서 이만큼 더럽고 추잡스러운 사람들이 또 따로 없다. 광신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할 예술적 황홀에 한정하더라도 이런데, 그 이상은 어떨까. 비슷한 경험을 일전 촛불 집회 때 겪어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친구들과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역사속 한 장면에 있는 것만 같다." 아마 딱 그 정도의 의미였을 테다.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은 그 이상으로 이런 집회, 무언가 숭고하고 의미 있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분석하는 책이지만, 저자가 어느 정도 배제한 일반적 중간층에게도 그 진단이 부분적으로 들어맞는다고 본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로부터 작든 크든 뭔가 장애물을 만날 때 무언가 훨씬 거대하고 거창한 것에 눈이 돌아가곤 한다. 내 개인적인 체험이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느낀 점이기도 하지만, 현재만 하더라도 우-러 전쟁과 그로 인해 시작될 끔찍한 경기 침체에 대해 계속 신경을 쓰는 건......



(사실 그보다도 얕게 현재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질 만한 시기다보니 더더욱 그렇다. 이 난장판 속에서 구태여 더 큰 것을 미친듯이 바라보는 사람들은, 학술적인 의미가 아니라면, 그 내다봄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걸까?)



물론, <맹신자들>에서 지적하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매우 과격한 주석을 내세운다. "이 책에서 '좌절한'이라는 말은 임상학적 용어로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생을 낭비하거나 망쳤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의 뜻이다. 인터넷에 익숙하다면 한두 번쯤 봤을 소위 '디시 문학'의 '엠생론'의 서두나 다를 것이 없다. 실제로 호퍼라는 사람 자체가 어느 정도 현대 디시의 일용직 노동자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유사성이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호퍼라는 사람의 말들이 어찌나 그리 그럴듯하고 자극적인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호퍼는 책의 한 장을 할애해 이 '엠생'들을 '팩트폭행'하는 시간을 가진다. 언어 구사 방식이 다를 뿐이지, 사실 이 내용을 그대로 현재 디시 문법에 맞게 고칠 수도 있을 테다. 물론 어느 정도 허수아비 치기가 함께 곁들여진 건 어쩔 수 없다만, 사실 이런 서술에 어디 그런 것이 필요했던가? 움찔대거나 반발하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비겁하지만 효과적인 반박 틀어막기다.



애석하게도 대중운동과 그 이념에 대해 논하는 사상보다는 호퍼의 분석이 더 들어맞을 듯하기는 하다. 이론이 어떠하든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는 방식과 수단이 늘 비슷한 대중운동인 이상, 이 운동은 역사적으로 늘 반복된 궤도에 약간의 흔들림과 함께 안착하고 그대로 같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어떤 방향으로든 좌절한 지식인들이 운을 떼고, 달 대신 손가락을 보는 좌절한 광신자들이 몰려들어 지금 현실 대신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을 역사 속의 인물, 그러기 위해 희생해야 할 인물로 바라보고, 이 유용한 노동력을 써먹을 행동가가 그 위에 올라타 새로운 권위주의적 체계를 만든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행동의 원리가 아닌 결과에 대한 역학으로 보면 크게 다를 곳이 있을까?



일전 칠레 아옌데 정권을 다룬 <아옌데 그리고 칠레의 경험>에서도 비슷한 논조로 말했지만, 결국 대중운동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봤자 의미가 없다. 사상 없는 대중운동이 광신자들을 끌어모으지 못해 무의미하다지만, 그 다음에는 사상의 힘이 아닌 무력의 힘으로 돌아가는 운동인 만큼 오히려 사상에 따른 긍정적 결과를 원한다면 그 힘을 억누르고 온건한 질서로 나머지 정상적인 사람들을 설득할 과정이 필요하다. 대중운동의 끝은 더 큰 무질서와 그로 인해 오히려 구체제보다도 안 좋은 새로운 종착지를 만들어낼 뿐이다. 이 광신자들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부수기 위해 모였는데, 도대체 이들을 벽돌로 삼아 무엇을 만들겠다는 말인가? 무력집단이 그 한계다.



<맹신자들> 같은 책의 가장 애석한 부분은,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사람들이야말로 이 책을 평생 한 번도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사실 그렇기에 이런 결과가 역사 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이겠지만.